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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ự Trở Lại Của Một Thần Tượng Đã Mất Đi Lý Tưởng Ban Đầu RAW - C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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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87화(8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87화
우리 중 제일 먼저 단독 스케줄이 잡힌 건 예나 지금이나 역시 레브의 비주얼 멤버, 서예현이었다.
무려 화장품 립틴트 광고였다.
그 광고에서 서예현이 친 멘트인 ‘일상에 러블리함을 더하고 싶다면 OO 틴트’는 레브에서 밈으로 전락했다.
“일상에 포만감을 더하고 싶다면 너구리라면!”
“일상에 고요함을 더하고 싶다면 김도빈 입 다물기.”
“일상에 상큼함과 비타민 C를 더하고 싶다면 천혜향 먹어요, 형들.”
“일상에 천혜향을 더하고 싶다면 말 꺼낸 사람이 가져와서 껍질 까기.”
“하…… 광고 괜히 찍었나…….”
“일상에 후회를 더 하고 싶다면 OO 틴트 광고!”
바로 이렇게 말이다.
처음 몇 번이야 발광하던 서예현은 이제 해탈했는지 자기도 그 밈을 쓰고 있었다.
아니, 쓰고 나서 입을 틀어막는 걸 보아하니 하도 많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입에 붙었을지도.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단독으로 예능 섭외가 들어왔다.
음악 관련이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내가 나갈 곳은 연애 상담 프로그램 의 패널이었다.
보내 준 사연을 재연 배우들이 연기하면, 그 영상을 보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충고를 해 주는 역할이었다.
“왜 하필 콕 집어서 나지? 내가 그렇게 연애에 빠삭해 보이는 상인가?”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지만 난 10대 때는 남중-남고 테크를 탔고, 회귀 전 3년은 망돌 생활 스트레스로, 4년은 아이돌 겸 프로듀서로 투잡 뛰느라 바빠서 연애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연애하면 바로 나를 데뷔 날로 다시 회귀시킬 시스템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초심도 90점 이상은 깎일 것이다. 겨우 열애 루머로도 회귀 페널티를 턱턱 거는 데 말이다.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자 옆에서 너튜브로 영상을 찾아보던 류재희가 대꾸했다.
“원래 그런 건 연애 박사보다는 모솔 리액션 보는 게 더 재밌거든요.”
가볍게 헤드록 같은 목 마사지를 선사해 주자 류재희가 시원한지 탄성을 내질렀다.
“악! 왜요! 형은 음악이랑 연애한다면서요!”
“왜긴 왜야. 맞는 말 했으니까 그렇지.”
처맞는 말.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도착해 꾸벅 인사를 하던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나 말고 다른 특별 게스트인 알테어의 차연호였다.
나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온 차연호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분홍 머리 잘 어울리네요, 이든 씨. 색깔 엄청 화사하네.”
“아, 예…….”
[성의 없는 대꾸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
그러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아이고, 하늘 같은 선배님께서 이 미천한 후배의 머리 색을 칭찬해 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답하기라도 해야 성의 있는 거냐? 어?
[최소한 다섯 글자 이상으로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음, 딱 다섯 글자군.
“노래 잘 들었어요. 이번 신곡도 좋더라고요.”
“아, 감사합니다.”
시스템의 충고에 따라 다섯 글자 이상으로 대꾸하자 여전히 눈웃음 짓고 있던 차연호가 툭 말했다.
“그 노래는 처음 들어 보는데.”
“? 리메이크 곡이 아니라 신곡이니까 당연히 처음 들어 보시겠죠?”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맞받아치자 헛웃음을 내뱉은 차연호가 말에 은근한 가시를 담고 물었다.
“이든 씨, 혹시 이전부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예?”
지금 말대꾸했다고 꼽주는 건가?
하여간 성격 여전해, 차연호.
그러니까 회귀 전에도 밑바닥까지 추락해서도 정신 못 차리고 알량한 자존심이나 세우고 있었지.
아무리 음색이 내 마음에 들었다지만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아무튼, 이런 꼰대 자식 앞에서는 꼽주는 걸 못 알아들은 척, 멀뚱멀뚱 있는 게 최고의 대처법이다.
우리를 지독하게도 괴롭히던 깜빵돌 둘을 상대하며 알아낸 인생의 진리였다.
아직 알테어는 추락하지 않았고, 레브보다 연차 높은 선배였기에 예전처럼 들이받을 수는 없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제가 일방적으로 나쁜 놈이 되는 그림이 만들어지는 걸 느꼈는지 차연호는 더는 나를 상대하지 않고 물러났다. 눈동자에는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갑자기 남의 노래 가지고 시비 걸고 난리야. 즈그 알테어 작곡멤이 그렇게 산다고 나도 그놈처럼 사는 줄 아나.
속으로 투덜거리며 스태프에게서 대본을 받아 들어 훑었다. 내 대사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적당히 리액션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연애 상담 프로그램 게스트는 회귀 전후를 통틀어 처음이기도 했고, 평소에 보지도 않았으므로 스케줄 전에 시간을 짬짬이 내서 몇 화를 시청하고 왔다.
사연에 공감해 주면서 관계 개선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게 패널의 역할이었다.
우리 같은 게스트의 역할은 그냥 신선함과 시청률을 더해 주는 역할이고.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가사 소재로도 못 써먹을 막장 사연들의 재연을 보며 겨우 표정을 관리했다.
남자 친구가 여사친을 여동생이라 속이고 꾸역꾸역 만났다는데 여자 친구가 여사친 만나는 게 신경 쓰일까 봐 여동생이라 구라 쳤다는 이야기를 진짜 믿어?
자기도 의심되니까 여기 제보한 거 아니야? 왜 굳이 ‘진짜 여사친이겠죠……? ㅠㅠ’라는 말을 덧붙여서 사람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 거지?
그러니까…… 저런 사연에 해결책과 충고를 해 주란 소리지?
“헤어지는 게 제일 베스트인 거 같은데요. 신뢰가 이미 깨졌는데 왜 굳이 계속 만나려고 하시는지?”
“당연히 헤어져야죠. 이건 기만 아닙니까. 여자 친구가 아프다는데 클럽을 왜 가.”
“헤어지세요. 뭔 요리를 해 주는 게 당연한 거예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한 번 바람피우면 두 번, 세 번도 핍니다. 처음 한 번이 제일 어려운 거지. 그러니까 헤어지세요.”
그렇게 나는 촬영 내내 헤어져무새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이것밖에 없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래도 어떻게 저런 놈이랑 계속 사귀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저런 연애사의 해결책은 오직 이별뿐이다. 시발, 쓰레기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마지막 사연처럼 바람피운 게 아닌 이상 다른 패널들처럼 관계를 개선하는 측으로만 솔루션을 내놓던 차연호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이든 씨는 계속 헤어지라는 소리만 하시네요.”
“다른 패널분들이 제시하시는 선택지에 이별은 없길래요. 선택지가 다양해야 사연자분께서 고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아이돌 7년 차 짬밥으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능글맞게 맞받아치며 넘어갔다.
에휴, 이걸로 또 알테어 팬들이 성의 없음, 태도 불량으로 몰아가겠구먼.
그럴 줄 알고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길게 붙였다. 덕분에 내가 방송에 성의 없이 임했다고는 못할 거다.
태도 불량은 뭐…… 입 꾹 닫고 있는 것보다는 헤어지라고 충고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나저나, 더 일찍 바닥에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하는 게 좋을 텐데, 차연호.
왜 계속 깔짝깔짝 사람 신경을 건드리지? 거슬리게.
* * *
HIT! [오늘 자 연애백서에서 시청자 영혼 빙의한 남돌.jpg] [412]
익명 85 드디어 시청자에게 꾸역꾸역 고구마만 처먹이던 연애백서가 사이다 수혈을
익명 86 처음으로 이 프로 보면서 고구마 안 느꼈어 패널들 맨날 쓰레기한테도 서사 부여해 주면서 이해하고 양보하라 하는 거 개빡쳤는데 이든이 사이다 부어줌
익명 87 얘 반응 진심 연애백서 보는 내 반응이랑 존똑이라 개웃기더라ㅋㅋㅋ
익명 88 연호는 다른 패널들처럼 최대한 헤어지라는 말 피하고 해결책 제시하던데 쟤는 ㅈㄴ 단호하게 헤어지라고 하더라ㅋㅋㅋ 왜 잘못은 남친이 했는데 시간과 노력은 사연자분이 쏟아야 하냐는 말 듣고 띵했음
익명 89 “혹시 헤어지면 연애 초로 회귀하시는 건가. 그래서 고쳐 쓰려 하시는 거예요?”ㅋㅋㅋㅋㅋㅋ 제발 고정패널 해 줘
익명 90 저 답답해하는 표정이랑 이해 못하는 얼굴 찐이야ㅋㅋㅋㅋ
익명 91 보다가 옆 돌아봤는데 동생이랑 화면에 나오는 쟤랑 똑같은 표정 하고 있어서 한참 웃음ㅋㅎㅋㅎㅋ
익명 92 ㅈㄴ 속 시원하던데 차연호 왜 중간에 쟤한테 꼽줌? ㅋㅋ
익명 93 ☞익명 92 계속 헤어져무새짓만 하던데 자중하라고 그 정도 말도 못해?
익명 94 ☞익명 92 속시원하긴 성의 없이 방송 임하는 거 같아 보여서 보는 내가 더 기분 나쁘던데~ 선배로서 한마디 할 수도 있지
익명 95 ☞익명 92 저게 꼽주는걸로 보이나 봐? 세상을 평소에 얼마나 삐딱하게 보고 살길래
익명 96 아퀼라들 몰려 왔네 ㅉㅉ 누가 봐도 성의 있게 대답하던 놈 꼽주는 거더만
익명 97 아퀼라들 벌써 라이징 견제 시작함?ㅎ
* * *
“또 새로운 보이그룹이 등장하시는구먼.”
중견 소속사에서 신인 보이그룹을 출격시킨다는 연애뉴스 기사를 보며 혀를 찼다.
사진을 보니 익숙한 면면들은 아니었다. 1군 길의 라이벌도 못 된다는 소리.
얘들은 어쩌다가 중견 소속사에서 데뷔했는데도 망했대냐.
이 바닥이 그렇지, 뭐. 운 따라 주면 실력 없어도 뜨고, 운 없으면 실력 있어도 묻히고, 운과 실력 모두 있어도 업보 쌓으면 언젠간 무너지고.
그렇게 치면 나도 업보 쌓아서 무너진 건가?
사라져 버린 내 청담동 새집과 적금통장과 페라리, 작업실을 떠올리며 실소를 내뱉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서치 퀘스트를 하다가 우연히 본 학폭 폭로글에서 신인 보이그룹 이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이 업보 쌓고 살면 안 된다니까, 쯧쯧.’
멤버 중 하나가 제 패거리와 함께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혀댔던 모양이었다.
글을 쭉 읽어 보니까 열아홉밖에 안 먹은 애새끼가 아주 악질이었다, 악질.
이렇게 살았으면서 데뷔를 강행한 정신머리와 자신감에 아주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과거가 묻힐 거라 생각했나? 대체 뭘 믿고 데뷔한 거야?
교묘하게 안무를 베껴 피해자를 표절한 놈으로 몰아갔다거나, 실기시험 전날 발목을 세게 차 절뚝거리게 만들었다는 부분은 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게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름이 익숙하다 싶었더니…….
‘김도빈이랑 같은 학교네? 나이도 같고, 실용무용과.’
설마 김도빈이 여기에 연관되어 있지는 않겠지. 녀석의 전공은 얼반이었고 폭로자와 학폭 가해자의 전공은 브레이킹이었다.
전공이 다르기도 했고 일단 이 폭로글에서 가해자로 함께 언급되지 않았기에 마음을 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김도빈이 누구 괴롭히고 그럴 놈은 아니지.”
나는 우리 집 도비를 굳게 믿고 있었다.
일단 걔는 누가 봐도 괴롭힘당할 상이지 누구를 괴롭힐 상은 아니었다. 낯가리는 성격도 그렇고 말이다.
회귀 전에도 레브에는 학폭으로 구설수에 오른 멤버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안심했던 거일지도 몰랐다.
다음 날,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은 안심과 평화를 와장창 깨뜨리는 서막이었다.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87화(87/476)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87화

우리 중 제일 먼저 단독 스케줄이 잡힌 건 예나 지금이나 역시 레브의 비주얼 멤버, 서예현이었다.

무려 화장품 립틴트 광고였다.

그 광고에서 서예현이 친 멘트인 ‘일상에 러블리함을 더하고 싶다면 OO 틴트’는 레브에서 밈으로 전락했다.

“일상에 포만감을 더하고 싶다면 너구리라면!”

“일상에 고요함을 더하고 싶다면 김도빈 입 다물기.”

“일상에 상큼함과 비타민 C를 더하고 싶다면 천혜향 먹어요, 형들.”

“일상에 천혜향을 더하고 싶다면 말 꺼낸 사람이 가져와서 껍질 까기.”

“하…… 광고 괜히 찍었나…….”

“일상에 후회를 더 하고 싶다면 OO 틴트 광고!”

바로 이렇게 말이다.

처음 몇 번이야 발광하던 서예현은 이제 해탈했는지 자기도 그 밈을 쓰고 있었다.

아니, 쓰고 나서 입을 틀어막는 걸 보아하니 하도 많이 들어 무의식적으로 입에 붙었을지도.

그리고 드디어 내게도 단독으로 예능 섭외가 들어왔다.

음악 관련이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내가 나갈 곳은 연애 상담 프로그램 의 패널이었다.

보내 준 사연을 재연 배우들이 연기하면, 그 영상을 보면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충고를 해 주는 역할이었다.

“왜 하필 콕 집어서 나지? 내가 그렇게 연애에 빠삭해 보이는 상인가?”

그렇게 보였다면 유감이지만 난 10대 때는 남중-남고 테크를 탔고, 회귀 전 3년은 망돌 생활 스트레스로, 4년은 아이돌 겸 프로듀서로 투잡 뛰느라 바빠서 연애할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지금? 연애하면 바로 나를 데뷔 날로 다시 회귀시킬 시스템이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초심도 90점 이상은 깎일 것이다. 겨우 열애 루머로도 회귀 페널티를 턱턱 거는 데 말이다.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자 옆에서 너튜브로 영상을 찾아보던 류재희가 대꾸했다.

“원래 그런 건 연애 박사보다는 모솔 리액션 보는 게 더 재밌거든요.”

가볍게 헤드록 같은 목 마사지를 선사해 주자 류재희가 시원한지 탄성을 내질렀다.

“악! 왜요! 형은 음악이랑 연애한다면서요!”

“왜긴 왜야. 맞는 말 했으니까 그렇지.”

처맞는 말.

촬영 당일, 스튜디오에 도착해 꾸벅 인사를 하던 나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나 말고 다른 특별 게스트인 알테어의 차연호였다.

나를 보자마자 성큼성큼 다가온 차연호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분홍 머리 잘 어울리네요, 이든 씨. 색깔 엄청 화사하네.”

“아, 예…….”

그러면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데?

아이고, 하늘 같은 선배님께서 이 미천한 후배의 머리 색을 칭찬해 주셔서 영광입니다-라고 답하기라도 해야 성의 있는 거냐? 어?

감사합니다. 음, 딱 다섯 글자군.

“노래 잘 들었어요. 이번 신곡도 좋더라고요.”

“아, 감사합니다.”

시스템의 충고에 따라 다섯 글자 이상으로 대꾸하자 여전히 눈웃음 짓고 있던 차연호가 툭 말했다.

“그 노래는 처음 들어 보는데.”

“? 리메이크 곡이 아니라 신곡이니까 당연히 처음 들어 보시겠죠?”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 맞받아치자 헛웃음을 내뱉은 차연호가 말에 은근한 가시를 담고 물었다.

“이든 씨, 혹시 이전부터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예?”

지금 말대꾸했다고 꼽주는 건가?

하여간 성격 여전해, 차연호.

그러니까 회귀 전에도 밑바닥까지 추락해서도 정신 못 차리고 알량한 자존심이나 세우고 있었지.

아무리 음색이 내 마음에 들었다지만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아무튼, 이런 꼰대 자식 앞에서는 꼽주는 걸 못 알아들은 척, 멀뚱멀뚱 있는 게 최고의 대처법이다.

우리를 지독하게도 괴롭히던 깜빵돌 둘을 상대하며 알아낸 인생의 진리였다.

아직 알테어는 추락하지 않았고, 레브보다 연차 높은 선배였기에 예전처럼 들이받을 수는 없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제가 일방적으로 나쁜 놈이 되는 그림이 만들어지는 걸 느꼈는지 차연호는 더는 나를 상대하지 않고 물러났다. 눈동자에는 약간의 혼란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갑자기 남의 노래 가지고 시비 걸고 난리야. 즈그 알테어 작곡멤이 그렇게 산다고 나도 그놈처럼 사는 줄 아나.

속으로 투덜거리며 스태프에게서 대본을 받아 들어 훑었다. 내 대사는 딱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적당히 리액션이나 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연애 상담 프로그램 게스트는 회귀 전후를 통틀어 처음이기도 했고, 평소에 보지도 않았으므로 스케줄 전에 시간을 짬짬이 내서 몇 화를 시청하고 왔다.

사연에 공감해 주면서 관계 개선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게 패널의 역할이었다.

우리 같은 게스트의 역할은 그냥 신선함과 시청률을 더해 주는 역할이고.

곧, 촬영이 시작되었다.

가사 소재로도 못 써먹을 막장 사연들의 재연을 보며 겨우 표정을 관리했다.

남자 친구가 여사친을 여동생이라 속이고 꾸역꾸역 만났다는데 여자 친구가 여사친 만나는 게 신경 쓰일까 봐 여동생이라 구라 쳤다는 이야기를 진짜 믿어?

자기도 의심되니까 여기 제보한 거 아니야? 왜 굳이 ‘진짜 여사친이겠죠……? ㅠㅠ’라는 말을 덧붙여서 사람 복장을 터지게 만드는 거지?

그러니까…… 저런 사연에 해결책과 충고를 해 주란 소리지?

“헤어지는 게 제일 베스트인 거 같은데요. 신뢰가 이미 깨졌는데 왜 굳이 계속 만나려고 하시는지?”

“당연히 헤어져야죠. 이건 기만 아닙니까. 여자 친구가 아프다는데 클럽을 왜 가.”

“헤어지세요. 뭔 요리를 해 주는 게 당연한 거예요?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한 번 바람피우면 두 번, 세 번도 핍니다. 처음 한 번이 제일 어려운 거지. 그러니까 헤어지세요.”

그렇게 나는 촬영 내내 헤어져무새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충고는 이것밖에 없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래도 어떻게 저런 놈이랑 계속 사귀라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저런 연애사의 해결책은 오직 이별뿐이다. 시발, 쓰레기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마지막 사연처럼 바람피운 게 아닌 이상 다른 패널들처럼 관계를 개선하는 측으로만 솔루션을 내놓던 차연호가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이든 씨는 계속 헤어지라는 소리만 하시네요.”

“다른 패널분들이 제시하시는 선택지에 이별은 없길래요. 선택지가 다양해야 사연자분께서 고를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아이돌 7년 차 짬밥으로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능글맞게 맞받아치며 넘어갔다.

에휴, 이걸로 또 알테어 팬들이 성의 없음, 태도 불량으로 몰아가겠구먼.

그럴 줄 알고 헤어져야 하는 이유를 길게 붙였다. 덕분에 내가 방송에 성의 없이 임했다고는 못할 거다.

태도 불량은 뭐…… 입 꾹 닫고 있는 것보다는 헤어지라고 충고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나저나, 더 일찍 바닥에 처박히고 싶지 않으면 적당히 하는 게 좋을 텐데, 차연호.

왜 계속 깔짝깔짝 사람 신경을 건드리지? 거슬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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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 [오늘 자 연애백서에서 시청자 영혼 빙의한 남돌.jpg] [412]

익명 85 드디어 시청자에게 꾸역꾸역 고구마만 처먹이던 연애백서가 사이다 수혈을

익명 86 처음으로 이 프로 보면서 고구마 안 느꼈어 패널들 맨날 쓰레기한테도 서사 부여해 주면서 이해하고 양보하라 하는 거 개빡쳤는데 이든이 사이다 부어줌

익명 87 얘 반응 진심 연애백서 보는 내 반응이랑 존똑이라 개웃기더라ㅋㅋㅋ

익명 88 연호는 다른 패널들처럼 최대한 헤어지라는 말 피하고 해결책 제시하던데 쟤는 ㅈㄴ 단호하게 헤어지라고 하더라ㅋㅋㅋ 왜 잘못은 남친이 했는데 시간과 노력은 사연자분이 쏟아야 하냐는 말 듣고 띵했음

익명 89 “혹시 헤어지면 연애 초로 회귀하시는 건가. 그래서 고쳐 쓰려 하시는 거예요?”ㅋㅋㅋㅋㅋㅋ 제발 고정패널 해 줘

익명 90 저 답답해하는 표정이랑 이해 못하는 얼굴 찐이야ㅋㅋㅋㅋ

익명 91 보다가 옆 돌아봤는데 동생이랑 화면에 나오는 쟤랑 똑같은 표정 하고 있어서 한참 웃음ㅋㅎㅋㅎㅋ

익명 92 ㅈㄴ 속 시원하던데 차연호 왜 중간에 쟤한테 꼽줌? ㅋㅋ

익명 93 ☞익명 92 계속 헤어져무새짓만 하던데 자중하라고 그 정도 말도 못해?

익명 94 ☞익명 92 속시원하긴 성의 없이 방송 임하는 거 같아 보여서 보는 내가 더 기분 나쁘던데~ 선배로서 한마디 할 수도 있지

익명 95 ☞익명 92 저게 꼽주는걸로 보이나 봐? 세상을 평소에 얼마나 삐딱하게 보고 살길래

익명 96 아퀼라들 몰려 왔네 ㅉㅉ 누가 봐도 성의 있게 대답하던 놈 꼽주는 거더만

익명 97 아퀼라들 벌써 라이징 견제 시작함?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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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새로운 보이그룹이 등장하시는구먼.”

중견 소속사에서 신인 보이그룹을 출격시킨다는 연애뉴스 기사를 보며 혀를 찼다.

사진을 보니 익숙한 면면들은 아니었다. 1군 길의 라이벌도 못 된다는 소리.

얘들은 어쩌다가 중견 소속사에서 데뷔했는데도 망했대냐.

이 바닥이 그렇지, 뭐. 운 따라 주면 실력 없어도 뜨고, 운 없으면 실력 있어도 묻히고, 운과 실력 모두 있어도 업보 쌓으면 언젠간 무너지고.

그렇게 치면 나도 업보 쌓아서 무너진 건가?

사라져 버린 내 청담동 새집과 적금통장과 페라리, 작업실을 떠올리며 실소를 내뱉었다.

그리고 며칠 후, 서치 퀘스트를 하다가 우연히 본 학폭 폭로글에서 신인 보이그룹 이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래서 사람이 업보 쌓고 살면 안 된다니까, 쯧쯧.’

멤버 중 하나가 제 패거리와 함께 지독하게 사람을 괴롭혀댔던 모양이었다.

글을 쭉 읽어 보니까 열아홉밖에 안 먹은 애새끼가 아주 악질이었다, 악질.

이렇게 살았으면서 데뷔를 강행한 정신머리와 자신감에 아주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 과거가 묻힐 거라 생각했나? 대체 뭘 믿고 데뷔한 거야?

교묘하게 안무를 베껴 피해자를 표절한 놈으로 몰아갔다거나, 실기시험 전날 발목을 세게 차 절뚝거리게 만들었다는 부분은 절로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지게 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이름이 익숙하다 싶었더니…….

‘김도빈이랑 같은 학교네? 나이도 같고, 실용무용과.’

설마 김도빈이 여기에 연관되어 있지는 않겠지. 녀석의 전공은 얼반이었고 폭로자와 학폭 가해자의 전공은 브레이킹이었다.

전공이 다르기도 했고 일단 이 폭로글에서 가해자로 함께 언급되지 않았기에 마음을 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김도빈이 누구 괴롭히고 그럴 놈은 아니지.”

나는 우리 집 도비를 굳게 믿고 있었다.

일단 걔는 누가 봐도 괴롭힘당할 상이지 누구를 괴롭힐 상은 아니었다. 낯가리는 성격도 그렇고 말이다.

회귀 전에도 레브에는 학폭으로 구설수에 오른 멤버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안심했던 거일지도 몰랐다.

다음 날, 한 장의 사진과 함께 올라온 글은 안심과 평화를 와장창 깨뜨리는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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