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4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42화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들을 거 다 듣고 제일 최후에 제일 주저하고 꺼려지던 질문을 물어보고는 그 대답에 충격 먹고 마지막 질의응답을 마무리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솔직하게 까는 게 나았다.
잠시간의 짙은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내려앉았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괜히 목이 다 타서 마른침만 티 나지 않게 삼켰다. 내가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이기 1초 전에 드디어 견하준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원망하겠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느릿하게 울렸다.
“네가 힘들어할 때 내가 너를 외면했는데, 네가 죽어 가는 모습을 매번 보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흠, 원망 안 한다는 소리군.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
“바닥 밑에 지하가 있더라고. 나는, 나는 그냥 마지막 모습을 장례식장에서만 봤으니까, 네가 그렇게 힘들어했을 거라고 생각을… 6회차에 만났던 네가 너무 담담해서 그 정도였는지 몰랐어, 나는…”
이럴 수가. 내가 덤덤충이 됐다니.
여섯 번째 리셋된 세상을 겪으니까 그냥 기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었다. 기억을 넘긴 것도 기력을 재충전하기 위한 일종의 리프레쉬인거지.
하긴, 내 기억을 넘겨받기 전의 6회차 견하준은 나랑 절연한 기억과 내 장례식장에서 가장 쌩쌩할 때 찍은 네X버 프로필사진 영정사진으로 재회한 기억밖에 없으니, 마음의 준비 없이 갑자기 마주한 담배꽁초트리와 담배빵 이불과 빈 술병 오브제와 슬럼프로 인한 키보드빠따와 C형 간염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해타투에 충격받을 만도 했다.
이걸 다 감당해야 할 거라곤 생각조차 못 했겠지. 기껏해야 1회차 숙소 생활했을 때 밖에서 담배 태우고 들어오는 정도나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게 견하준 상상의 한계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견하준이 만약 그때 절연하지 않고 우리가 계속 친구로 남아 있었으면 내가 그 지랄까지 가진 않았을까, 짧은 생각을 해 봤다.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적어도 슬럼프가 왔다고 키보드로 모니터를 박살 내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깟 곡이, 정이서가 뭐라고…”
내가 생각 없이 낙하산에게 곡을 줘서 의도치 않게 견하준의 트리거를 당겨 버린 것과 달리, 견하준은 의도된 절연과 외면이었으니 과오의 크기와 관계 없이 그게 견하준에게 더 크게 작용할 만도 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지 말걸. 말이라도, 대화라도 해볼걸. 대체 뭐가 무서워서….”
“내가 괜히 물어본 거냐?”
이불을 꾹 말아쥐며 중얼거리는 견하준을 향해 제법 많이 길어 목을 다 덮은 뒷머리를 쓸어올리며 물었다. 이렇게까지 자책하는 꼴을 보고 싶어서 물은 게 아니었다.
그 말에 견하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면 좋지. 괜히 서로 마음 지레짐작하고 대화 안 하고 있다가 사이 서먹해지는 것보단.”
그 낙하산 일이 나뿐만 아니라 6회차 견하준에게도 제법 큰 교훈을 심어 준 모양이었다.
서로 잘 알고 있다고 오만 떨고 지레짐작만 하다가 결국은 화해하지 못하고 절교한 게 결국은 지금의 너와 나였으니까. 6회차에서는 화해했을까.
“그리고 네가 너를 원망하지 않겠냐고 물어봤을 때, 내 선택이니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했어. 너는 기억 못 하겠지만.”
견하준이 미약하게 웃었다.
“내가 강요했다고 들었는데.”
“강요까진 아니고, 부탁이었지. 내가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부탁.”
흠, 어쨌든 나는 강요를 안 했다는 소리군. 그거 참 다행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제 상황 역전이네.”
조곤조곤 말하던 견하준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현재 견하준이랑 자기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말한 줄 알고 잠깐 식겁할 뻔했다.
그래, 우리 6회차 준이는 그렇게 속 시커먼 놈이 아니라고.
“뭐가?”
“내가 너보다 더 많은 걸 기억하고 있잖아.”
6회차의 내가 기억 빈부 격차로 견하준에게 갑질하기라도 했나. 아니면 견하준이 과거 기억 꺼내면서 뭐 하려고 하면 내가 기억하는 게 더 많다고 말끝마다 붙이기라도 했나.
활짝 피었다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없는 견하준의 얼굴을 보니 제법 신빙성이 높은 추론이었다.
과거의 내가 대체 어쨌길래 그러냐고 물어보려 입을 반쯤 열자마자 견하준이 선수 쳐서 먼저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끝.”
“네가 말 안 해도 오늘치 질문은 이걸로 끝내려고 했다, 준아.”
내가 더 물어보기라도 할까 봐 그런 건지 질문 타임을 바로 종결시키는 6회차 견하준을 향해 픽 웃으며 몸을 돌려 문가로 향했다.
견하준의 방에서 나가기 전, 무심코 잘 자라고 하려다가 그 흔한 저녁 인사도 6회차 견하준에겐 꺼지라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고쳤다.
“쉬어라.”
내 인사말에 견하준이 여상히 손을 흔들며 화답했다.
“내일 보자.”
휴대폰으로 확인한 시간은 자정이 훌쩍 넘어 새벽 두 시를 기록하고 있었다. 흠, 그러면 오늘 하루는 눈에 띄지 말라는 소린가?
* * *
6회차 견하준과 함께 하는 이틀 차.
다행히도 류재희와 서예현은 6회차 견하준이 튀어나온 상태의 현 견하준에게 별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6회차 견하준의 기막힌 연기 실력도 한몫했다. 확실히 현재 견하준보다 연기 경력이 많아서 그런지, 연기가 참 자연스러웠다.
무슨 연기나면, 빠그러진 적 없는 정상인 연기.
김도빈이야 이미 견하준이 악귀 들린 상태라고 굳게 믿고 있어서 그런가, 견하준이 본인을 보지 않을 때마다 틈틈이 견하준의 등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보듯 긴장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래도 저 견하준은 뜬금없이 타투를 몸에 박고 나타나진 않을 거란다, 도빈아.
“아니, 너는 무슨 식사를 혼자 거실에서 한다고 난리야? 소외되는 가장 코스프레라도 하게? 하준아, 얘한테 뭐라고 말 좀 해 봐!”
내일 보자는 견하준의 말을 착실하게 지켜 주기 위해 거실에서 홀로 밥을 먹으려는 나를 붙든 서예현이 견하준에게 SOS를 쳤다.
이렇게 화목한 우리 둘의 모습이 적응이 영 안 되는지 견하준이 잠시 연기하는 것도 잊고 멍하니 나랑 서예현을 번갈아 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아, 하준이가 오늘 보지 말자고 했다고.”
“너 또 하준이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그런 소리를 들어?”
내가 무슨 짓을 했으리라 확신하는 서예현에 이어 견하준도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나를 향해 물었다.
“내가 언제?”
“오늘 새벽 두 시에 내일 보자며.”
“당연히 아침에 보자는 소리잖아. 그렇게 지나치게 말 잘 듣지 말아 줄래. 이전에는 백 번을 말해도 안 듣더니, 왜 이렇게 사람이 극단적이야.”
견하준 잔소리를 씹고 살았던 그 기억은 나도 가지고 있었기에 양심이 좀 찔려왔다. 아, 탈퇴 전 1회차 기억으로 공격하는 건 반칙이지.
그래도 견하준이 왜인지 모를 감격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니 나름 감동인 모양이었다.
“누가 봐도 멕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야?”
“이든이 그런 애 아니에요, 형. 이든이가 너무 곧이곧대로 들었나 보죠.”
견하준의 입에서 나온 존댓말에 김도빈과 내가 동시에 입을 떡 벌렸다. 아차, 서예현이랑 말을 놨다는 걸 말 안 해 줬구나.
“왜 무섭게 존대까지 하면서 그래.”
서예현의 당황에 본인이 더 당황한 견하준을 향해 입 모양으로 전달해 줬다.
‘말 깜.’
6회차 견하준은 1회차에서도 끝까지 말을 놓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내 장례식에서도 꼬박꼬박 존댓말 썼을 정도면 말을 놓을 가능성이 아예 없었다고 봐야겠지.
“이든이 마음을 너무 곡해하지 말라는 차원에서?”
견하준이 기가 막힌 드리프트를 선보였다. 비윤이든 차별의 일종으로 받아들인 서예현은 딱히 의심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서예현은 그런 애 아니라는 말이 와닿지 않을 만도 했다. 내가 똑같은 행동을 서예현에게 했을 때는 멕이는 의도가 맞았기 때문이다.
꼬우면 견하준으로 태어나야지, 뭐.
밥그릇을 들고 식탁으로 돌아오자마자 류재희가 눈을 빛내며 나를 재촉했다.
“형형, 모과테스트인가 유자테스트인가 한번 더해요.”
“아이디어 떨어졌다, 막내야. 너 없으면 내 삶의 질이 수직낙하하는데 뭐가 무서워서 개념 멤버 테스트를 하려고 그러냐?”
여론 조작과 팬반응 서치와 두뇌 외주를 줄 류재희 없는 삶이 이제는 상상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런 찌질한 테스트를 하는 찌질한 놈으로 인식되는 건 한 번으로 족했다. 애초에 6회차 견하준 떠보려고 했던 거라고.
오늘은 팬사인회가 있는 날이었다. 6회차 견하준이 잘 대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딱히 걱정은 되지 않았다.
6회차 견하준이 무대에 서는 게 더 걱정이지. 아무래도 연습량 차이라는 게 있지 않나.
또 팬싸템 유행이 바뀌었는지 데이드림이 가져온 팬싸 소품들은 저번 팬싸와 달랐다.
레이싱 자켓과 헬멧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오빠, 너무 잘 어울려요! 다음 컨셉으로 f1 어때요, f1? 완전 찰떡인데!”
“아, f1 좋죠. 그 컨셉 패션이 확실히 제 스타일이긴 해요. f1 컨셉 자체는 저보다 예현이 형이 더 좋아할걸요. 예현이 형이 질주 본능이 좀 있어서.”
서예현의 TMI까지 남발해 주며 데이드림과 티키타카 대화를 하고 있는 내 옆자리에는 견하준이 초여름에 곰 대가리 털모자를 쓰고 앉아 있었다.
“하준아, 드라마 이번에도 진짜 잘 봤어. 촬영 힘들진 않았어?”
견하준은 <시간 너머의 봄> 애청자 팬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의 저도 1회차와 똑같이 <시간 너머의 봄> 이영언 역할을 맡아 국민 첫사랑으로 등극했으리라고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주 잠깐 침묵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그러면 배우 견하준이 더 좋았어요, 아니면 레브 견하준이 더 좋았어요?”
“에이, 무슨 그런 질문을 해. 다 좋지. 그래도 역시 무대에서 보는 하준이가 제일 좋은 것 같아. 네가 노래 그만두면 이든이 또 울걸?”
내가 울었다는 말에 놀랐는지 견하준이 나를 돌아보았다.
크흠-
아니, 뭐 생색내는 건 아니고, 내가 너를 백초크의 위협에서 구하고 무사히 불러내기 위해서 힘들게 눈물 좀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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