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38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37화
포기하고 있던 내게 갑작스럽게 훅 다가온 퀘스트 성공 알림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제 견하준에게 백초크를 안 걸어도 돼서 좋긴 한데, 대체 왜? 이게 왜 성공이야? 팬 반응만 봐도 쓰디쓴 실패였는데?
내가 또 뒷걸음질 치다가 어떤 쥐를 잡은 것인가.
[▶윤이든 님이 선보인 신선한 모습: 가오 떨어지는 귀여운 모습을 선보인 게 신선/억지 눈물이 아니라 진짜 눈물이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거 같아서 신선(반응 발췌)]
절대 시스템 자체 판단이 아니라는 걸 강조하듯 반응 발췌라고 박아 놓은 걸 보니 더 기가 막혔다.
젠장, 합성으로 묻어 가려고 했는데 가오가 떨어졌다니. 그냥 쿨하게 인정할 걸 그랬나.
하지만 내 잘못된 선택이 결국은 퀘스트를 성공의 길로 이끈 꼴이나 다름없었기에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모로 가도 어쨌든 서울로만 가면 될 거 아닌가.
친구의 편안한 기절을 위해서라면 가오를 잠시 내려놓는 것 정도야, 뭐….
물론 내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편안하게 기절시키려고 온갖 시도를 다 하고 눈물까지 흘렸다는 생색 정도는 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애교 3종 세트를 선보인 것도 아닌데 귀여운 모습은 또 뭐야? 내가 언제 귀여운 모습을 선보였다고? 눈물 흘린 게 귀여운 건 아닐 거 아니야.
[└(작성자)아무래도 잘못 보신 거 같습니다]
내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자 우리 집 시스템이 내가 쓴 답댓글을 보여 주었다.
이 정중하기 그지없는 댓글 어디에서 귀여움을 느낀 건지 참 미스테리였다.
서치퀘 6년이면 풍월을 좔좔 읊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아직은 택도 없는 모양이다.
일단은 다굴 당하지 않고 팬덤 넷상 싸움을 말리는 방법이 제일 간절하긴 했다.
왜 나는 무슨 말만 하면 여론을 바꾸기는커녕 공공의 적이 되어 처맞는지 그것도 참 미스테리였다.
내가 백날 고민해 봤자 답이 나올 리가 없다는 걸 스스로도 잘 알고 있기에 결국 류재희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아직 잠들지 않았기에 잠든 동생을 깨워 쓸데없는 걸 물어보는 모옷된 형 소리는 듣지 않아도 되었다.
“형이 올린 게시글 댓글에 답이 있어요.”
류재희는 졸려 죽겠다는 눈으로 설명 대신 딱 한 마디를 해 주고 나를 본인 방에서 쫓아냈다.
다시 내 방으로 돌아와 내가 올린 From 게시글의 댓글을 읽었다.
초반에 업로드했을 때 101개가 달렸던 댓글은 어느새 9천 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괜찮아 이든아 우리 믿고 마음껏 도전해 예술충이라고 빈정거리는 인간들 우리가 다 패줄게
-이렇게 덮고 싶어 하니까 진짜 자기도 모르게 나온 눈물 같고 더 놀리고 싶고 막 그래ㅋㅋㅋ
-이든아 우리도 눈이 있어
-내가 그 순간 먼지 들어갔다고만 했어도 믿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부정하는 건 진짜 울었다는 거지ㅋㅋㅋㅋㅋ
-레브 20주년 콘 열어도 가서 꿈봉 흔들고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나이 되면 관절 이슈로 스탠딩은 못 가겠지만….
└어떤 분 할아버지도 A구역 스탠딩 뛰셨는데 하실 수 있어요!
-어린애들이 딱 숨바꼭질에서 자기 눈만 가리고 있으면 숨은 줄 아는데ㅋㅋㅋㅋ 운 걸 부정하고 싶어서 가오를 어린애급으로 내려놓은 울 이드니ㅋㅋㅋ
-이든아 다음에 가장의 가오를 지키고 싶으면 뒤돌아서 우리한테 등만 보여 주고 눈물 훔쳐라 이렇게 모르쇠로 부정해 봤자 그냥 눈 가리고 숨었다고 우기는 귀요미 어린애밖에 안 됨
저 할아버지가 설마 우리 집 꼰대 영감님인가?
80대 영감님한테 스탠딩석을 잡아 주고 홀로 보낸 윤정아의 신개념 패륜은 아무래도 팬덤 내에 영영 박제되어 버린 것 같았다.
하나하나 댓글을 읽으며 내리다가 눈에 띈 데이드림의 친절한 코칭에 떨떠름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내가… 귀요미 어린애…?
아무튼, 과정은 길고도 복잡하고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쨌건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인간 수면제’ 아이템을 띄워 놓으며 이걸 언제 쓸지 각을 재 보았다.
6회차 견하준과의 대화 후에 얻게 될 키워드가 어떤 식으로 현재 견하준에게 작용하게 될지 도무지 예상이 안 가기에 한창 활동 중인 지금 선뜻 쓸 수가 없었다.
‘역시 활동 끝나고 나서 쓰는 게 나으려나….’
견하준이 이번 활동의 센터를 맡은 이상, 견하준의 컨디션도 꽤 중요했으니 말이다.
어차피 실패했으면 백초크도 활동이 끝난 후에 걸려고 했으니까 이 아이템을 당장 쓰지 않아도 딱히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신선함을 선보이라는 깜짝 퀘스트 기간이 활동 끝나기 전까지였지, 6회차의 견하준이랑 대화하라는 퀘스트 기간은 ‘위험도 시스템과 숙주의 내기가 끝나는 시점 전까지’니까 여유가 좀 있었다.
위험도 시스템의 현 숙주는 차연호였고, 차연호가 위험도 시스템과 걸었을 내기는 당연히 케이제이를 살리는 것이었을 테니. 아직 케이제이가 28살이니 활동이 끝나기 전에는 내기가 끝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만약 전 숙주인 나로 적용된다고 해도, 내가 위험도 시스템이랑 걸었을 내기 내용이 ‘성공’이었다는 건 기억의 파편만으로도 쉬이 짐작 가능했다.
그게 레브라는 그룹의 성공인지, 아니면 복수의 성공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이번 활동 끝나고 쓰자. 그래서 6회차 견하준이랑 대화하고 키워드 알아내서 기억 싹 되찾고 신월 무너뜨린 후에 10주년, 20주년, 30주년 콘서트까지 별일 없이 쭉 가면 되지.’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완벽한 계획이었다.
5회차에 화해했다는 기억을 보고 나니 6회차 견하준을 만나는 것도 막 긴장되진 않았다.
절교한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는데, 절교 안 하고 화해했다니까, 뭐!
그리고 나는 친구를 위해 가오를 포기한 대가를 아주 톡톡히 치렀다.
[용철이형- 야 이든아]
[용철이형- (사진)]
[용철이형- 이거 합성 아니라 진짜라며?]
[용철이형- (너튜브 링크)]
[세민이형- 뭐라고?]
[세민이형- 계단에서 굴러도 눈 부릅뜨고 안 울던 막내가 울었다고?]
[기정이형- 나 진짜 그때 이든이 미친놈인 줄 알았어]
[기정이형- 중삐리쉑이 머리에서 피 철철 나도 가오 잡아서 ㅅㅂㅋㅋㅋ]
[태훈이형- 원래 그 나이대가 가오 더럽게 잡는다이가]
[주성이형- 그런데 쟤는 나이 더 먹고도 가오 계속 잡았잖어]
[용철이형- 여기 있는 모두가 지금까지 그러고 있는데 뭘 새삼스럽게 막내한테만 그러쇼]
[형범이형- 이제 막내도 나이가 들었다는 거지]
[형범이형- 가오를 내려 두고 감성에 젖을 만큼…⭐]
눈물 살짝 맺힌 걸로도 건수 잡았다고 신나게 놀려 대던 크루 형들은 아주 물 만난 물고기처럼 과거 일화까지 꺼내면서 신나게 나를 놀려 대기 시작했다.
차라리 데이드림에게 귀요미 어린애 취급을 받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우리 데이드림은 어린애 취급이라도 해 주지, 형들은 나도 나이 들었다는 소리나 하고 있고.
[최형진- 너 진짜 왜 욺?]
[최형진- dtb 우승해도 안 울었던 놈이?] 오전 9:13
[오우 언제는 내 솔앨 말고는 관심 없다더니]
[이제 완전체 활동 음방까지 챙겨 보냐] 오전 9:24
[최형진- 뭐래]
[최형진- 너튜브 내리다 보니까 앵콜무대 보이더만] 오전 9:25
이 자식은 너튜브 알고리즘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싶었다.
네가 평소에도 레브 검색을 하고 레브 동영상을 봤으니까 네 알고리즘에도 뜨겠지, 인마.
크루 형들과 달리 놀릴 의도 하나 없이 진심으로 순수한 궁금증만 담겨 있는 문자를 보고 진실을 말해 줄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 그냥 숨기기로 결론을 내렸다.
꼬우면 레브로 데뷔하지 그랬냐. 그래도 서예현과 최형진 중에 서브래퍼 포지션을 고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서예현이었다. 우리 예현 형이 랩 실력은 딸려도, 어?
창작의 고통을 함께 나눠 지기까진 하지 않았고 찍먹 정도만 했던 지원이 형한테도 연락이 왔다.
[지원이형- 울 정도로 그렇게 기뻤냐ㅋㅋ]
[지원이형- 서바 우승을 해도 안 울던 녀석이ㅋㅋㅋ]
[지원이형- 하긴 그 곡 난도가 있었는데 그만큼 기쁠 만도 하겠다] 오전 11:20
대체 어쩌다가 저기까지 퍼진 거지. 이 형들이 음방을 챙겨 볼 리가 없지 않은가.
이제 부모님한테만 내 눈물 장면이 들어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바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는 눈물 꾹 참다가 이런 걸로 울면 내 이미지가 바둑이 한정 싸패밖에 더 되겠는가.
오직 이 눈물이 신선함을 선사하기 위해 연출된 눈물이라는 걸 알고 있는 멤버들만이 내 안식처였다. 이래서 가정을 꾸리는 건가 싶었다.
김도빈이 내 팔뚝을 소심하게 쿡쿡 찔러대며 말했다.
“일몽이들이 다들 오늘도 형이 울까 잔뜩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기대하시는데 한 번 더 울죠?”
“차라리 상의 탈의를 하라고 해라.”
사녹 준비하면서 팬석에서 본 팬분들의 기대감 가득했던 눈빛을 떠올리며 고개를 격하게 저었다.
이러다가 1위 할 때마다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눈물 흘려야 하면 나는 대체 태어나서 몇 번을 울게 되는 거냐고.
왼쪽 옆구리까지 멍이 드는 건 피하고 싶었다. 게다가 오늘은 바둑이의 기일도 아니었다.
음방 사녹을 마치고 음방 대기실에서 대기하며 점심을 먹으려 준비하는데, 서예현이 브로콜리와 블루베리가 가득 든 도시락통을 내게 내밀었다.
새벽같이 부엌에서 뭐를 막 준비하더니만, 이거였던 모양이었다.
멧돼지라는 단어를 달고 사는 이 형이 나를 토끼로 볼 리는 없고, 설마 나까지 근손실 프로아나의 길로 끌어들이려고 이러는 건가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예현을 바라보자 서예현이 머쓱한 얼굴로 설명했다.
“멍 빨리 빠지는 음식이래. 내가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논문으로 크로스체크까지 해 봤어. 이것만 먹으라는 게 아니라, 점심밥에 이거까지 곁들어 먹으라고.”
합의된 사항이긴 했지만 그래도 멍이 든 걸 보고 미안하긴 했던 모양이다. 도시락통을 받아 들어 블루베리 한 알을 입에 휙 던져넣고 투덜거렸다.
“아아니, 형. 브로콜리를 주려면 초장까지 주는 게 기본 아니냐?”
“초장 당 엄청 높은 건 알지?”
성불한 줄 알았던 칼로리 악귀는 여전히 서예현의 내면에 존재했다.
서예현과 브로콜리에 찍어 먹을 소스로 논쟁을 벌이다가, 심상치 않은 표정을 하고 있는 견하준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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