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3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32화
항상 반곱슬에서 곱슬을 유지하고 있던 머리는 전체적으로 곧게 펴진 채였다.
전체적인 머리 색은 흑발이었지만 앞머리에만 군데군데 애쉬그레이로 염색된 부분이 있었다.
‘이든이 생머리!’
길게 내려앉아 물에 축축이 젖어 속눈썹까지 내려온 곱슬기 없는 앞머리와 목을 완전히 덮을 만큼 긴 뒷머리는 퇴폐미를 더했다.
긴 머리도, 생머리도 지금까지 한 번도 선보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제법 신선한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반곱슬머리가 윤이든에게 찰떡이라고 생각했는데 생머리도 제법 나쁘지 않았다.
속눈썹을 반쯤 내리깐 채 죽은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욱 새까맸다.
눈물점이 있는 얼굴 측면이 클로즈업되며 귀에 박힌 피어싱들과, 드러난 굵은 목선을 따라 세로로 적힌 레터링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항상 오른쪽 손목 안쪽에 있던 그 문장이었다.
입에 문 사탕 막대를 담배처럼 두 손가락 사이에 쥐고 있는 손의 마디와 손등에도 핏줄을 교묘히 피해 타투가 덕지덕지 박혀 있었다. 막대사탕이 담배 같아 보이는 착시가 잠깐 일어날 정도였다.
하지만 김 모 양은 윤이든이 저 많은 타투를 진짜로 새겼으리라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C형 간염이 무서워서라도 하지 못 했으리란 걸 오랜 팬으로서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이든의 한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이 클로즈업되면서 난해한 그림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류재희, 서예현, 견하준의 단체 사진이 보였다.
짧은 실소를 흘린 윤이든이 옷을 툭툭 털며 몸을 일으켰다. 나시티를 입어 더욱 탄탄하게 드러난 윤이든의 상체를 한 번 잡고, 아슬아슬하게 틈을 내주며 닫힌 철문으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레브는 으로 노란 장판 예술가 ver.을 아주 제대로 말아 주었다.
은 짧게 나온 앞부분을 제외하곤 주로 견하준의 시선에서 전개되었다.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캔버스를 찢어 대는 걸 반복하는 피폐한 윤이든, 문틈으로 그런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우울한 견하준, 윤이든이 찢어서 버린 캔버스를 고이 모아 태우려다가 차마 태우지 못하고 라이터를 내리는 음울한 김도빈.
처연우울 견하준이나 피폐퇴폐 윤이든은 제법 잘 어울렸지만, 음울하고 차분한 김도빈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다는 게 제일 의외였다.
망가져 가는 윤이든을 보다 못해 견하준은 결국은 문틈으로 열쇠를 밀어 넣는다.
현관에 놓인 열쇠를 집어 든 윤이든은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을 등진 채, 잠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작업실 안에 놓인 거대한 캔버스 속 그림을 빤히 바라보던 그는 곧이어 들고 온 페인트통 안의 물감을 캔버스에 시원하게 뿌려 버린다.
빈 페인트통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두고 윤이든은 작업실을 나갔다.
윤이든이 망친 그림 대신, 드러난 등판의 어깻죽지 옆 타투가 클로즈업되었다.
끼이익, 문이 한 번 더 열리며 데구르르 굴러오던 빈 페인트통이 누군가의 발끝에 채여 멈추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뮤직비디오가 끝났다.
곡 자체는 좋게 말하면 이지리스닝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단조로웠다. 곡이 별로냐고 묻는다면 분명 아니라고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무언가 살짝 부족한 듯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이든이 눈물점이 열일하네ㅋㅋㅋ 지금까진 그냥 눈 밑에 찍힌 점이었는데 이번 컨셉 눈물점 존재감 ㄹㅇ 팍 산다
-나는 이든이가 양기쾌남이라고 믿어 못지않았는데 음기컨셉 왜 어울리는건데
-옷 입고다니는 꼬라지부터 타투 덕지덕지 있는거까지 ㄹㅇ 천박이재질 인생망한재질 존꼴
-오 나 이든이 동태눈 처음봐
-저게 다 찐타투였으면 이든이 C형간염 염려증으로 실려갔을텐데.. 이든이 인생 힘들어도 타투 저만치는 안 박을거 같아서 다행이다!
-청량이랑 처연 둘 다 말아주는 하준이 귀하다 이거예요 그래도 하준이는 역시 처연하게 눈 내리깐 모습이….
-흑발하준이 우리 활동에서도 볼수 있다니 여한이 없다ㅠㅠㅠㅠ
-찐 실제상황이었으면 이든이가 골방 틀어박혀서 저러고 있으면 하준이가 당장 끌고 햇빛 쐬게 해줬을듯 저렇게 지켜보지만 않고
-도빈이 무슨일이야 울 깨발랄 강강쥐가 왜 우울강쥐됐엉ㅠㅠㅠ
-도빈이 차분한 무표정으로 있는거 나만 설렜나
-이든이가 마지막에 물감 뿌린 그림 Draw에서 셋이 그렸던 그림 아냐?
-아니 그러면 하준이가 작업실 열쇠 준 게 Draw에서 그린 그림 이든이가 망치라고 준거라고? 그렇게 열심히 그려놓고?
의 뮤직비디오는 과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뮤직비디오의 색감부터 달랐다. 청량한 기운이 아주 넘쳐흘렀다.
애쉬블루 머리의 서예현, 백금발에 군데군데 애쉬골드 브릿지가 들어간 류재희, 흑발에 흰색 반팔티의 소매를 야무지게 걷어붙인 견하준.
옥상에 거대한 캔버스를 깔아 놓고 스프레이칠을 하는 모습과 캔버스를 세워 놓고 버켓으로 물감을 신나게 끼얹는 모습은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게 만들었다.
서로에게 물과 물감을 뿌리며 신나게 그려 가는 동안, 새하얗던 캔버스가 점점 색채로 물들어갔다.
멋있긴 하지만, 어딘가 조금 난해하고 완성도가 부족한 그림이 거대한 캔버스에 담겼다.
완성된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견하준은 그 사진을 본인의 SNS 프로필사진으로 박아 두었다.
뮤직비디오의 시작 부분에서 윤이든이 보고 있던 바로 그 사진이었다. 그림 역시 윤이든이 마지막에 물감을 뿌렸던 그 그림이고.
그래서 와 의 뮤직비디오 내용이 이어진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는 보다 분위기가 신나고 경쾌한 곡이었지만, 그래도 이 곡 역시 완성도가 살짝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좀 애매했다.
-도빈이랑 재희랑 세계관 서로 바뀐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둘다 잘어울리죠? 피폐도빈 청량유제 둘다 찰떡이죠?
-back 먼저보고 draw보러 왔는데 가슴 찢어진다…. 하준아하준아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었던 애가….
-선공개곡 뮤비 두곡 다 출연한거 보면 이번에 하준이 센터인가?
-막냉이 이런 피폐장인 얼굴로 청량 기가막히게 말아주는거 무슨일이냐고
-예현이 얼굴에 물감묻히고 웃는거 미쳤다 진짜
-이번에 헤어 진짜 다들 찰떡이다 컬러도 그렇고 헤어스타일도 10언니 ㄹㅇ 칼 갈고 나온듯
-여기에서 웃는 도빈이랑 캔버스를 찢는 용도가 아니라 본래 용도로 쓰는 이든이 보고싶다
-그런데 선공개곡 두 곡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타이틀곡이 어쩔지 감이 안 오네
입으로는 연차가 차도 최고의 콘셉트는 청량이라고 하지만, 다들 눈과 손은 솔직한지 노출이 더 많고 퇴폐섹시를 말아 주는 윤이든과 누구세요급의 신선한 모습을 말아주는 김도빈, 흑발 상태로 처연함을 말아주는 견하준이 담겨있는 뮤비의 조회수가 보다 더 높았다.
김 모 양도 침을 삼키며 노출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만족스럽게 보여준 뮤비 나노 캡쳐를 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에 멈칫했다.
‘잠깐, 이거 역병 돌기 딱 좋은 패션인데…’
윤이든병이라 명명된 수많은 유행 패션들이 김 모 양의 머릿속을 촤르르 스쳐 지나갔다. 가슴골 셔츠도 유행을 탔는데
어쩐지 올해 여름에는 등판 X자 블랙 나시티와 회색 트레이닝복 바지 조합으로 다니는 남자들을 길거리에서 우르르 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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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06-05 19:00 조회: 123
윤이든 NEW패션
작성자:ㅇㅇ
(Back_뮤직비디오_윤이든_캡쳐)
올 여름은 이거다
댓글 11
-쓰벌 개멋있네
-백수룩코어가 유행하는 날이 드디어 오는구나 존버는 성공한다
-힙합허들도 낮춰주고 패션허들도 낮춰주고 역시 우리형ㅋㅋㅋ
-준비물: 윤이든급 얼굴과 몸
-윤이든 빠돌이들은 이거 입고다니면 안되는거 아니냐? 니들이 이거 입고 길거리 돌아다니면 애꿎은 느그형이 욕먹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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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역병 예고가 돌고 있다는 걸 김 모 양이 알 리가 없었다.
* * *
“신선하다며… 생머리랑 동태눈깔 새롭다며…”
그런데 왜 퀘스트 달성창은 뜨지 않는 거냐고! 우리 데이드림, 말로만 신선하다 하기 있냐고!
서치퀘 팬반응을 보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매직을 한 머리가 너무 스트레이트하게 쫙쫙 펴져 있어서 쥐는 감각이 다 낯설었다.
단순 헤어스타일 변화로만 신선함을 선사하는 건 아무래도 실패인 것 같았다.
뮤직비디오 촬영하면서 카메라 앞이라고 동태눈깔을 지져 생태 눈깔로 만들어 대던 시스템과 이 동태눈깔도 일의 일환이라고, 나는 이제 디폴트가 생태지만 연기를 하는 거라고 시스템을 겨우겨우 설득하던 기억이 아주 새록새록하군.
그래도 우리집 시스템은 양심이란 걸 반쯤 장착한 이후로 개념이란 것도 생겼는지 설득되기 전에 깎은 초심도를 복구해 주기까지 했다.
선공개곡의 평가는 내가 원하던, 그리고 어느 정도 예측했던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 선공개곡의 존재 의미는 오롯이 타이틀곡을 위해서였다.
“신선하긴 하지만 임펙트가 있는 정도는 아니라는 거지. 우리가 매번 똑같은 머리를 하고 나온 것도 아니고, 매 활동마다 바뀌는데 그게 그렇게 임팩트 있을 만큼 신선하겠어?”
서예현이 내 옆에 앉아서 등을 툭툭 두드렸다. 위로의 손길인지 시비의 손길인지 구분이 딱히 가진 않았다.
“내 아이디어 따르면 직빵이라니까? 내가 이거 보증한다니까?”
본인의 아이디어를 권하는 어조가 자신만만하기 그지없었다. 맨날 옥장판만 사 대더니, 판매법을 좀 알게 된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나. 죽상을 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그것도 곡이 성적 잘 나오고 반응 좋아야지 가능하지.”
“그래, 바로 그런 태도야!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서예현이 더 신나하며 내 등을 팍팍 두드렸다. 이쯤 되면 나를 엿먹일 계획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타이틀곡은 선공개곡이 공개된 날로부터 사흘 후에 공개되었다.
선공개곡 와 을 하나로 합친, 전혀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낸 곡,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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