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3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30화
선물에는 정성이 중요하다는 내 지론답게 내가 준비한 쿠폰은 한 종류가 아니었다. 제일 앞쪽에 놓아둔 쿠폰의 글자를 읽은 김도빈이 축 쳐진 채로 물었다.
“즐거운 작곡 놀이 숙제 기한 연장권? 면제권이 아니고요?”
“면제권도 있어, 인마.”
그 말에 바로 다시 활력을 되찾은 김도빈이 나머지 쿠폰도 모두 확인해 보았다.
“세상에, 면제권을 두 장씩이나 주셨다니! 원하는 파트 선택권, 우와!”
숙제 기한 연장권 5장, 숙제 면제권 2장, 즐거운 작곡 놀이 면제권 2장, 원하는 파트 선택권 1장. 김도빈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나름 다양하게 구성해 보려고 노력했다.
“원하는 파트 선택권 뒤에 약정 적힌 거 봐 봐, 형. 다만 레코딩 시간은 보장 불가능이라잖아.”
용케 내가 적어 놓은 쿠폰 사용 약관을 발견한 류재희가 김도빈에게 그 약관을 보여 주었다.
나를 필두로 다른 멤버들도 김도빈에게 선물을 증정했다.
서예현은 김도빈이 즐겨 입는 브랜드의 한정판 후드집업을 비롯한 봄가을용 겉옷과 헤드셋을, 견하준은 요새 베이스에 제대로 재미를 붙인 김도빈을 위해 값비싼 앰프를 선물했다.
참고로 앰프는 어떤 게 좋을까 골라 달라는 견하준의 부탁을 받아 내가 골라 준 거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류재희의 선물은….
“자, 형. 한 번 까 봐.”
원하는 버전을 구하기가 극악 난이도라는 랜덤 인형 키링 6개입 한 세트 박스였다. 김도빈이 요새 원하는 거 가지고 싶다고 사서 언박싱 해 대던 바로 그 인형 키링.
김도빈이 원하는 건 끝까지 안 나와서 김도빈의 운빨이 혹시 다 됐나 의심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랜덤 인형 키링이었다.
비닐 포장을 벗긴 김도빈이 긴장한 얼굴로 언박싱을 시작했다. 다섯 번째에 등장한, 본인이 원하던 바로 그 희귀 버전에 김도빈이 입을 틀어막았다.
“류재애애애! 나 이거 세트 세 개를 까도 안 나와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김도빈이 감동해서 류재희를 와락 끌어안았다.
“세상에, 이게 나오네. 형 생일 서사 더해 주려고 지금까지 안 나왔나 봐.”
류재희도 본인이 준 선물에서 그 극악 확률 인형 키링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김도빈의 등을 팡팡 두드려 댔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 희귀 버전이 나오는 걸 찾기 위해 류재희가 저걸 다섯 번이나 사서 박스 하나씩 조심히 열어서 확인해 본 걸.
미니 실링기까지 사서 새것처럼 비닐 포장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놓은 것도 말이다.
류재희나 내가 입을 열지 않는 이상 김도빈은 류재희의 그 고생 비하인드를 절대 알지 못할 터였다.
생일에 개인 팬미팅을 여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아쉽게도 컴백 준비 기간과 겹쳐 김도빈 개인 팬미팅은 좀 힘들었고, 여느 때처럼 생일 기념 라이브 방송으로 대체되었다.
시간이 충분히 지나 손등과 손가락 마디에 그려졌던 헤나 타투가 지워져서 다행이었다. 아직 목 부분과 팔에 있는 타투는 거의 다 지워지긴 했어도 희미하게 남았기에 목티로 가렸다.
“우리 도빈이가 아침부터 셀프 생일상을 차렸어요.”
견하준은 김도빈이 미역을 첨가한 양지국을 끓였어도 그 마음이 정말 뿌듯했는지 라이브에서 실컷 자랑하고 있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도로시에서도 팔고 있는 ‘다이어터를 위한 저칼로리 레브오이푸딩케이크’가 떡하니 생일상 한가운데를 차지했다.
겉에 발린 리코타크림이 없어, 투명한 젤리 안의 오이 조각과 레몬 조각이 고스란히 보였다.
후우-
촛불을 불어 끈 김도빈이 짝짝 셀프 박수를 쳤다.
“드디어 소원 타임이네요!”
생일 당사자의 소원 타임이라고 쓰고 데이드림이 원하는 거 멤버들에게 시키는 타임이라고 읽는 시간이 돌아왔다. 사실상 생일 당사자만 피해 가는 벌칙 타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무얼 시킬지는 생일 당사자에게 달려 있었으므로 생일 당사자가 갑이 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벌써 라이브 채팅창에는 시키고 싶은 리스트들이 멤버들 이름을 달고 촤르륵 올라오고 있었다.
“예현이 형한테 냥냥포즈를 시켜 달라는 제안이 굉장히 많이 오고 있네요.”
그 말을 듣자마자 서예현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서예현에게 해 달라고 요청이 난무한 이 냥냥포즈가 무엇이냐. 이 이야기는 대략 한 달 하고도 15일 전인 국회의원 선거일로 돌아간다.
서예현이 선거 공익광고를 맡았던 그 국회의원 선거 말이다.
심지어 서예현이 촬영한 공익광고는 내 인터넷도박 예방 광고와 달리 아주 정상적이었다.
‘당신의 소중한 한 표가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듭니다.’
선관위는 왜 서예현한테는 동물 잠옷을 입히지 않은 것인가. 왜 서예현한테 삽을 쥐어 주고 투표 안 하면 파묻어 버린다고 협박하는 콘셉트를 주지 않은 것인가.
서예현은 나름 선거 공익광고 모델이라 무조건 투표에 참여하는 모습을 카메라 앞에 보여야 했고, 서예현과 같은 그룹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 선거일은 지지정당 컬러라는 게 있기 때문에 연예인들이 색깔을 잃는 날이다. 이날은 손가락 제스쳐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단적인 예로 김도빈은 혹시 몰라 모 정당 컬러와 겹치는 색인 휴대폰 케이스도 빼고 가야만 했다.
서예현은 흰색 셔츠와 검은색 슬랙스, 흰색 양말과 검은색 구두로 완벽한 무채색을 선보였다. 우리는 어차피 서예현이 공익광고 모델이니 돋보이라고 올블랙으로 맞춰 입었다.
서론이 좀 길었지만, 아무튼 냥냥포즈가 무엇이냐.
투표를 완료하고 나온 서예현이 브이 포즈를 못 하니 양 손바닥을 들어 올리는 포즈를 취했다가, 본인 딴에는 이게 또 기호 5번 홍보로 비추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황급히 주먹으로 바꾼 게 박제된 사진이다.
하필이면 그 사진 속 서예현은 주먹 쥔 손목을 아래로 꺾고 있는 것도 모자라, 머리로 뒤쪽 구조물을 교묘하게 가려 고양이 귀를 달고 있는 것 같은 모습까지 탄생시키며 그 기사 사진은 서예현 냥냥포즈라는 밈이 되어 버렸다.
-냥냥포즈하는 옣냥이
-카이사르가 너무 그리운 나머지 스스로 고양이가 되길 택한 고영집사
-어떡해 예현이가 너무 고냐니야 고장난 것도 너무 고냐니 그자체
-ㅅㅂ 타멤 모에화 영역침범 자제좀요
-그냥 하던 대로 밤비하세요…ㅋㅋㅋ 님새끼 노르웨이숲집냥이로 모에화하면서 내새끼 코숏길냥이로 만들지 마시고ㅋㅋ
-옆에 찐고영 있는데 하필 밤비 머리에 고양이귀 착시효과 생긴게 ㄹㅇ 웃음벨
싸움판 목격에 모에화가 겹치는 게 싫으면 내 모에화 동물을 호랑이로 바꿔도 되지 않나? 싶어서 부계로 제안했다가 줫터진 건 비밀이었다.
줫패다가 내가 서예현 악개가 아닌 걸 알고, 좀 모자라지만 어떻게든 해결 방책을 찾으려는 착한 친구로 보고 봐주시더라. 이건 차마 류재희한테도 털어놓지 못했다.
대체 언제쯤 류재희처럼 여론 바꾸기를 성공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다들 손 포즈를 어떻게 하고 사진 찍었나 궁금해서 우리 단체 사진을 봤더니, 포즈가 아주 제각각이더라.
김도빈은 기도하듯 깍지 낀 손을 뺨에 대고 있고, 견하준은 공손하게 배꼽인사하듯 배에 손을 모으고 있고, 류재희는 뻣뻣하게 한 손은 내리고 한 손은 김도빈의 어깨에 걸쳤다.
나는 한 손은 배에, 한 손은 주먹 쥐고 필승 자세로 찍었다. 보니까 내가 제일 투표 독려 모델 같고 자연스러웠다.
저번 지선이랑 총선, 대선 때는 우리가 투표한 사진까지 찍힐 정도의 그룹은 아니어서 나를 제외하고 다들 포즈가 참 어색했다.
그래도 우리 그룹만 그런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심지어 알테어도 뻣뻣하더라고.
아무튼, 이게 바로 서예현의 냥냥포즈였다.
“예현이 형은 냥냥포즈 한번 가죠!”
김도빈의 요청에 비척비척 일어난 서예현이 냥냥포즈를 재현했다. 고양이 귀는 최장신인 류재희가 서예현의 뒤에서 손가락으로 구현해 주었다.
“원조 고양이… 인? 이든이 형도 냥냥포즈 한번 해 주라는데요? 이든이 형도 한 번 가죠?”
김도빈이 이번에는 내게 폭탄을 떠넘겼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주먹을 쥐고 손목을 꺾었다. 뒤에서 류재희가 내 대가리 위에서도 고양이귀를 만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오, 굉장히… 선택 하나를 강요하는 야바위꾼 같아요.”
“데이드림은 냥냥펀치 날리기 일보직전 같다는데.”
“잽이 아니고?”
내 냥냥포즈 후기였다. 차례로 김도빈-견하준-서예현이었다.
“하준이 형은 아직까지 외우고 있는 <시간 너머의 봄> 이영언 명대사 하나! 연기까지 곁들여서!”
“으음, 외우고 있는 게 많긴 한데, 하나를 꼽자면…”
“상대역 세워요, 상대역! 예현이 형이 좋아요, 이든이 형이 좋아요?”
“이든이가 더 편하긴 하지.”
그렇게 나는 드라마 여주인공이 되었다. 나를 빤히 보던 견하준이 살풋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나 기다리는 거 잘하거든.”
‘이영언’이라는 캐릭터를 서브남으로 땅땅 못 박은 그 대사였다. 더럽게 아련한 감정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이걸 듣고도 진짜로 기다리게 만든다고? 사람이냐?
오오-
멤버들이 사방에서 감탄사를 터트렸다. 견하준 연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직관하게 될 줄이야.
한정판 인형 키링 때문인지 김도빈은 류재희한테만 제일 쉬우면서도 가오 상하지 않는 본업을 요구했다.
“부르고 싶은 노래 1절 불러 주기!”
그 요청 사항에 따라 류재희는 생일 노래로 유명한 팝송을 멋들어지게 불러 주었다.
“이든이가 엄청 억울해했어요. 왜 예현이 형 공익광고는 정상적이냐고.”
“그런데 투표 독려에 삽이 나오는 것도 좀 그렇지 않아요?”
“투표 안 하면 이 표가 땅에 묻히는 거나 다름없다, 뭐 이런 식으로!”
“그건 투표 독려의 의미가 아니라 진짜 삽질을 위한 주객전도잖아.”
그렇게 데이드림과 한참 라이브 방송으로 공식 소통을 하며 떠들었다. 비활동기에는 개인 라방이나 두세 명씩 하는 걸 많이 보여줬기에 완전체 라방은 또 오랜만이라 할 말이 꽤 많았다.
“그럼 곧 다시 만나요, 데이드림!”
실상은 컴백 예고 목적이었던 김도빈 생일 축하 라이브가 종료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컴백 스케줄러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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