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30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29화
류재희가 당황할 만도 했다.
본래 ‘To freely bloom’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꽃과 줄기 모양의 타투가 박혀 있었으니까.
레터링 문장은 줄기와 이파리로 완벽하게 변모해 있어 언뜻 봤을 때는 잘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문장이 겨우 보였다.
물론 완전히 지운 건 아니고 헤나로 일시적 커버한 거였다.
“형한테 의미 있는 문장 아니었어요?”
“어엉, 의미 있지.”
이번에는 비록 기억이 1회차의 서른 살로 롤백한 내가 박아 놓은 것이긴 해도, 이 문장을 새기기로 결심한 기억이 있는 이상 그 의미를 잊지는 않았으니.
5회차 때처럼 선을 그어서 5회차 기억의 파편을 한번 되살려 볼까도 했는데, 그러면 거기만 너무 투박해서 전체적인 미감을 해친다는 일영 누나의 만류도 있고 해서 포기했다.
5회차의 나는 그 투박함도 감수할 만큼 그 문장이 꼴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그래도 일영 누나의 만류 덕분에 이번에는 덮이지 않고 문장대로 꽃으로 피어날 수 있었다.
“나름 의미 있는 문장이 손목 안쪽에 있으니까 잘 안 보이잖아. 그래서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겼지, 이번에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류재희의 시선이 내 쇄골에 제일 먼저 닿았다.
하지만 내 쇄골에 있는 타투는 레터링에 이어지는 주파수 무늬인가 뭔가였다.
“여기도 문장이 To freely bloom이 아닌데요? 그거 어디 있어요?”
“여기.”
고개를 돌려 귀와 이어지는 목선 부분을 손가락으로 툭툭 쳐 보여 주었다. 세로로 새겨진 그 문장을 발견한 류재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선 물었다.
“잘 보이는 데가 맞아요?”
“단 한 번의 측면샷 클로즈업에 모든 걸 걸었다. 손목 안쪽은 클로즈업해도 잘 안 보이잖아.”
어차피 일주일 지나면 지워질 테니 뮤직비디오에서만 잘 보이면 장땡 아닌가.
“어때, 타투 위치 바꾸니까 신선하지 않냐?”
“딱히요…”
이제 류재희는 내가 신선함에 집착하는 이유도 딱히 묻지 않았다. 또 쓸데없는 이유일 거라고 어림짐작한 게 분명했다.
“형, 지금 신선하게는 보이고 싶은데 예현이 형이 낸 아이디어는 하기 싫어서 그러죠?”
그런 이유도 없지 않아 있었기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언제나 짧게 쳤던 뒷머리가 목을 덮고 있는 게 제법 낯설었다. 이번에 꽤 신선한 시도를 많이 해 보는 것 같았다.
견하준한테 백초크 안 걸어 보겠다고 아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친구에게 몰래 수면제를 먹일 수는 없지 않은가.
백초크를 거는 건 건전한 레슬링 기술의 영역이라면 몰래 약을 먹이는 건 뭔가 범죄의 영역 같아서 좀 그랬다.
내가 수면제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더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기왕이면 건전한 게 낫지.
생각해 보니까 회귀 전 1회차 서른 살 때도 이 정도, 아니 이것보다 더 뒷머리가 길었던 것 같은데. 타투도 그렇고, 여러모로 재현을 많이 하고 있군.
이쯤 되면 기억의 파편 버그 제사상 차려 놓고 제발 좀 오라고 고사 지내는 꼴 아니냐.
이 헤나 타투가 지워지기 전에 기억의 파편 버그가 하나쯤은 뜰 거라는 것에 서예현의 음… 뭐를 걸지?
그래, 카이사르의 짭침대가 되기 위해 기른 가슴 근육을 걸자. 지금은 많이 빠지긴 했지만.
“아아니, 최대한 신선함 가짓수를 늘려 보겠다는 거지.”
그러다가 컨셉 포토랑 뮤직비디오를 공개한 초반부터 얻어걸리면 서예현의 코칭을 따르지 않아도 되어서 나한테 좋을 일이고.
“그런데 확실히 예현이 형 아이디어가 형이 시도한 그 모든 것보다 압도적인 신선함을 선사하긴 하거든요.”
“체스판 머리보다도?”
“그거 반응 봤잖아요. 적어도 예현이 형 아이디어는 그런 반응은 안 나와요.”
쳇, 가볍게 혀를 차고 앞머리를 넘긴 스포츠 밴드를 고쳐 썼다. 내가 신선한 아이디어로 서예현한테 밀리다니.
“자, 연습 재개하자!”
뮤비 촬영일 전까지 안무 숙지를 해야 했기에 짧은 휴식을 끝내고 다시 안무 연습을 시작했다.
* * *
이번 컨셉 포토 및 뮤직비디오 촬영은 국내에서 진행되었다. 예산 줄이기는 아니고, 국내 배경이 이번 앨범의 감성을 더 잘 살릴 수 있다는 판단하에서였다.
‘적어도 회귀 전의 내가 계단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진 않았나 보군.’
아니면 물고 있는 게 담배가 아니라 막대사탕이라서 기억의 파편 버그가 안 뜨는 거거나.
뮤직비디오 촬영에서는 회귀 전에 할 만한 행동들을 한 게 거의 없었기에 촬영 도중에 버그가 뜬다든가 하지는 않았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앞두고 다시 그린 헤나 타투는 처음보다 한결 정돈되어 있었다. 일영 누나가 조잡하고 산만해 보인다고 판단한 몇몇 문양은 이미 지워진 상태였다.
그래도 그 회중시계와 해골, 장미 타투는 사수해 냈다.
다시 그린 기간까지 합치면 거의 한 달 가까이 타투를 하고 있었던 셈인데 기억의 파편은 아직도 뜨지 않았다.
내가 팀 탈퇴를 갈겼던 그때와 달리 아주 성실하게 연습실-A&R팀-숙소 루트만 밟아서 그럴 수도 있었다. 기억의 파편은 키워드와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이러다가 서예현의 이제는 얼마 없는 가슴 근육과 작별 인사를 하게 생겼다. 물론 그 작별이 딱히 아쉽진 않았다.
‘1회차야 이러고 뭐 했는지 대충 예상이 가지만 3, 4, 5회차에선 탈퇴 후 한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예상이 안 가네.’
3회차랑 4회차까지는 그래도 어떻게든 실패 이유를 분석하려고 시도 정도는 해 봤을 것 같은데, 그러면 그때는 타투를 굳이 박지 않았으려나? 굳이 자해할 필요가 없으니까?
3회차에서는 슬럼프 때문에 뜨지 못하며 1, 2회차와 똑같은 결과로 실패했고, 4, 5회차에서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를 찾아야지 보완이 될 터인데…
그놈의 키워드만 찾으면 이렇게 조각조각 난 기억을 뒤지고 있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기억의 파편 속에서도 잠깐씩 내 눈앞에 나타났던 우리집 시스템을 떠올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회귀를 거듭할 때마다 멤버들이 한 명씩 기억 가지고 나를 설득했던 거랑 우리집 시스템이 연관이 있는 건가?
분명 3회차의 김도빈과 5회차의 서예현은 내게 있는 위험도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한 말을 했다. 심지어 5회차의 서예현은 본인에게도 시스템이 있다는 뉘앙스로 말을 흘리기도 했고.
“하씨, 복잡하네.”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를 습관적으로 헝클이려다가 코디 누나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고 얌전히 손을 내렸다.
앨범 재킷 및 컨포, 뮤직비디오 촬영과 컴백 프로모션 준비로 또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고, 어느덧 김도빈의 생일이 성큼 다가왔다.
김도빈이 벌써 스물네 살이라니. 하는 짓만 보면 아직도 18세 같은데.
깜짝 카메라를 좋아하는 김도빈의 생일마다 깜짝 카메라 내용 쥐어 짜내느라 힘들었기도 했고, 이제 이쯤 되면 김도빈도 본인 생일 기념 깜짝 카메라가 있으리라 예상했을 게 분명하니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했다.
깜짝 카메라가 이번에는 없다는 걸 알아차려 가는 과정도 나름 서프라이즈가 아니겠는가.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김도빈에게 아주 찰떡이었다.
김도빈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일 나름 생일인데 도빈이가 좋아하는 제육볶음도 못 해 주겠네. 제육볶음이 고칼로리라…”
견하준이 미안한지 김도빈을 힐긋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소고기 넣어서 미역국 해 주면 됐지, 뭐. 미역국 재료도 사다 놨으면서 뭘 그렇게 미안해해?”
옆에서 그런 견하준의 마음의 짐을 최대한 덜어 주었다. 활동 끝나고 치킨이나 몇 마리 사 주면 될 일이었다.
김도빈이 그런 걸로 삐질 놈은 맞지만 그만큼 삐친 게 풀리기도 빨리 풀렸다. 풀기도 쉽고.
김도빈의 생일 당일.
하필 활동 준비 기간과 겹친 김도빈의 아침 생일상은 미역국이 있는 것만 빼면 평소와 같은 식단 차림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아침 식사를 준비한 사람은 김도빈이었다.
“형들이 제 생일상 못 차려주는 거 미안해할 거 같아서 그냥 제가 준비했어요. 그러면 섭섭할 일도, 미안해할 일도 없으니까요.”
식탁 위에 마지막으로 본인 몫의 미역국을 턱 올려놓으며 김도빈이 해맑게 말했다.
세상에, 여전히 18살 같다고 했던 게 무색하게 김도빈이 철이 다 들다니.
멤버들의 생일상을 맡는 견하준과 서예현도 감동 받은 얼굴로 김도빈을 보고 있었다. 서예현은 좀 본받으라는 듯 나를 돌아보기까지 했다.
생일인 녀석이 있어도 우리의 밥상머리 예절만큼은 변하지 않았기에, 제일 먼저 숟가락을 들어 미역국부터 한술 뜨다가 멈칫했다.
“대체 고기를 얼마나 넣었냐…? 이건 고깃국에 건더기로 미역 넣은 수준인데?”
“미역국 5인분인데 소고기 한 팩으로 부족한 것 같아서 제가 두 팩 더 사 왔어요.”
“지방 적은 사태로 샀지? 아니면 우둔살이나?”
마지막 희망을 건 견하준의 물음에 김도빈이 아주 깔끔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양지 많이 넣는대서 양지 샀는데요. 그래도 최대한 국물에 뜬 기름은 제거했어요.”
소고기 세 팩이 들어간 미역국이 과연 다이어트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전직 칼로리 악귀 서예현에게로 돌아갔다.
국물보다 고기가 더 많은 미역국을 새 숟가락으로 한술 떠보던 서예현이 고칼로리 음식을 앞에 둔 사람답지 않게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도 제육보다는 칼로리 낮으니까 그냥 먹자. 도빈이 생일인데. 게다가 생일 당사자가 형들 생각해서 끓인 건데. 고기만 덜 먹으면 되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서예현은 본인 국에 있는 고기를 류재희와 김도빈의 그릇에 부지런히 옮겨 주고 있었다.
내 국그릇도 쓱 내밀자 서예현은 치우라는 듯 숟가락으로 내 국그릇을 툭툭 쳐 댔다.
“비막내라인 차별을 멈춰 달라!”
“넌 성장기 끝났잖아. 막내들한테 양보 좀 해, 이 멧돼지야.”
차마 돼지라고 하진 못하겠는지 서예현이 멧돼지라고 부르며 투덜거렸다. 한 놈은 몰라도 한 놈은 이미 충분히 큰 것 같은데.
“소고기 많이 넣으니까 맛있긴 하다. 우리가 식단에 길들여져서 맛있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식사가 끝나고 김도빈이 깜짝 카메라 삽질을 하기 전에 빠른 선물 증정식이 시작되었다.
“생일 축하한다, 도빈아.”
미니냉장고 값 비품비를 제외한 차액이 든 돈봉투와 내가 직접 만든 쿠폰 열 장이 들어있는 봉투를 김도빈의 손에 쥐여 주었다. 생일 선물이었다.
김도빈이 김치냉장고에 총 얼마 썼는지는 류재희가 알아와 주었다. 미니냉장고 값은 인터넷에 검색해서 최고가로 측정하여 비품비로 올렸고.
“제가 어버이날 때마다 형한테 줬던 쿠폰 돌려준 건 아니죠?”
봉투에 적힌 ‘쿠폰’이라는 글자를 본 김도빈이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김도빈은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대신 효도랍시고 심부름 쿠폰 열 장을 내밀었고, 나는 그걸 내가 설거지 당번일 때 설거지하기 귀찮을 때마다 한 번씩 잘 써먹곤 했다.
“얌마, 내가 그렇게 짠돌이로 보이냐?”
투덜거리며 김도빈의 의심에 반박해 주고 어서 열어서 확인해 보라고 김도빈을 재촉했다.
내 빛나는 눈빛을 이기지 못한 김도빈이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 쿠폰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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