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1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18화
서예현이 과거를 기억해 내는 건 딱히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모두가 회귀 전 과거를 기억해 내면 이게 세상이냐? 거대한 정신병의 굴레지.
내가 걱정하는 건 딱 하나였다.
서예현이 아무래도 내가 재계약 안 하고 그룹에서 탈퇴할 생각인 것 같다는 헛소리를 멤버들한테 상담해서, 김도빈이 집 잃은 개 같은 표정으로 나를 자꾸 보고 류재희가 한숨 쉬며 진지하게 “형, 우리 이야기 좀 해요”라고 독대를 신청하고 견하준이 왜 말해주지 않았냐고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것.
오우, 상상만 해도 등에 식은땀이 맺힐 지경이었다.
이번에는 탈퇴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긴 했다.
신월을 애초부터 건드리지 않든가, 아니면 어떻게든 앞선 여섯 번의 실패를 일곱 번째인 현재에서 마무리 짓든가.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전자는 내 선택지에 들지도 못했기에,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였다.
“뭔데, 사람 불안하게 왜 그렇게 웃는데?”
안심하라는 뜻으로 시원시원하게 웃어 보였건만, 갑자기 뜬금없이 서예현이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왜 저러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서예현을 쳐다보니 서예현이 지레 찔리기라도 한 건지 본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너는 그럼 지금 10주년 콘서트를 할 때쯤이면 누구 한 명이 빠질 거라 생각하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사람이 설마 나는 아니지?”
어이가 없어서 대꾸하지도 않고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서예현이 본인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나는 평생 레브 할 거거든? 평생 이 그룹에 붙어 있을 거거든? 내가 비록 랩 실력과 노래 실력과 춤 실력은 제일 떨어지는 편이어도 내가 나름 레브 비주얼이거든?”
애초에 레브에서 제일 먼저 탈퇴할 이가 서예현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왜 저래?
회귀 전에 홀로 떠서 소년가장 소리를 들으면서도 LnL과 재계약까지 하며 남아 있고, 충분히 홀로 독립해서 살 수 있는데도 계약이 만료되는 7주년까지 숙소도 떠나지 않았던 인간이 지금 훨씬 더 서로 끈끈해지고 다 같이 성공한 이상적인 레브에서 탈퇴하겠는가.
“없어도 퍼포에 문제 없긴 하겠지만, 그래도 유입상으론… 내가 10주년이면, 군대도 다녀온 서른두 살이면 어쩔 수 없이 지금보단 외모가 떨어져서 신인 애들에게 밀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내가 오디 기억의 파편까지 싹싹 쓸어모아 기억하기론, 서예현은 레브 10주년 기념콘을 하고 나서까지 거뜬히 스케줄 존나게 잡힌 대한민국 대표 미남으로 살아가고 있었으므로 서예현의 저 걱정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빠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 형 아니야. 형이 빠지면 우리 그룹은 꼬리 깃털 박박 밀어 버린 수컷 공작새 꼴이라고.”
꼬리 깃털이 없어도 공작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꼬리 깃털이 없으면 매우 허전하지, 흠.
“그럼 누구야?”
서예현이 궁금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나는 그저 딱히 대답하고 싶지 않아 반대편으로 고개를 슬쩍 돌린 것뿐인데, 하필 시선 끝에 류재희가 딱 걸릴 게 뭐람.
류재희가 목청껏 본인이 레브에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를 어필했다.
“저도 안 빠질 건데요. 레브 메인보컬이 빠지면 어떡해요. 제가 없는 레브에서 하준이 형이 고음 홀로 다 감당하고 목이 나가 버리면! 그러면 형이 그렇게 좋아하는 하준이 형의 음색은 가 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형이, 형들이 저한테 외주를 안 맡기고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오우, 그러면 안 되지. 꼭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 막내는 꼭 있어야지. 애초에 우리 막내가 레브에서 빠질 거란 생각도 안 했다.”
류재희가 없으면 고음을 내가 원하는 음역대까지 질러줄 사람도, 두뇌 외주 맡길 사람도 없지 않은가.
류재희가 빠지면 좌뇌와 우뇌에서 우뇌만 있는 꼴이 되는 거라니까. 물론 우뇌는 제8회 최종우승자인 나였다.
류재희가 대놓고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서예현과 류재희의 시선이 동시에 김도빈에게로 옮겨졌다.
“저는, 으음….”
세 명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은 김도빈은 제일 당당히 본인의 필요성을 어필할 것 같더니만, 쿠션을 껴안은 채로 한참을 고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인지 짠해 보여 김도빈이 레브에 필요한 이유를 말해주려고 입을 열자, 그 타이밍에 딱 맞춰 김도빈이 아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줄줄 쏟아냈다.
“레브의 메인댄서로 안무 부분에 아주 큰 기여를 하고 있으며, 예현이 형의 춤 선생님이자 이든이 형의 즐거운 작곡 놀이 놀잇감 겸 수제자이기도 하고, 하준이 형 선정 가장 복스럽게 밥 먹는 레브 멤버 1위고요, 류재가 유일하게 마음 편하게 말을 놓을 수 있는 형이자 예능에서도 아주 잘 활약하고 있으며 제 행운력은 대표님보단 아니지만 그래도 급할 때 쓰기 좋고, 레브 평균 키가 너무 부담스럽지 않도록 낮춰주는 주범이자, 다이어트식이 아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 두 명 중 한 명이고, 빙의 판단 전문가이자 아이돌 그룹에서는 꼭 존재해야 한다는 강아지 모에화를 맡고 있어서 제가 빠지면 큰일날 거 같아요.”
비트만 얹으면 아주 힙합이 따로 없었다. 김도빈한테서 랩의 재능을 잠깐 본 것 같기도 했다.
저거 생각하느라 말을 안 하고 있었던 거냐고.
“이 정도면 빠지면 안 될 것 같죠? 레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죠?”
으쓱거리는 김도빈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저 길고 긴, 맞는 소리 헛소리 반반을 들으니 무어라 대꾸하거나 반박할 힘도 안 났다.
류재희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형 기준으로 10주년 콘에는 없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하준이 형일 리는 없잖아요.”
“왜 그렇게 확신을 하냐?”
“형이 하준이 형이 순순히 탈퇴하게 둘 것 같지가 않아서요.”
맞는 말이었다.
견하준이 탈퇴하면 누가 내 마음 읽기를 해 주냔 말이냐. 누가 양대산맥 고음을 불러주고, 완급조절 구간이나 킬링파트를 내 마음에 쏙 들게 불러주고, 녹음실에서 내게 안정을 선사해 주고, 동갑내기 친구로 편하게 함께할 수 있겠냐고.
“애초에 레브 탈퇴할 생각도 없는걸. 내가 레브에 필요하지 않은 멤버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문을 슬쩍 열고 얼굴만 쓱 내민 견하준도 본인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그러면 소거법으로 다 재끼면, 남은 건 윤이든 아니야?”
서예현의 진지한 말에 막내라인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이든이 형이 6년 간 레브라는 그룹으로 구축해 온 음악의 세계를 그렇게 쉽게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이든이 형이 레브에서 빠지면 그건 그냥 팥 없는 단팥빵이잖아요. 제일 중요한 레브 음악의 정체성이자 레브의 가장이 빠지면 안 되죠. 무려 레브 탄생화까지 타투로 박아놓고 탈퇴할 리가.”
탈퇴하지 말라며 오버하며 달라붙는 게 아니라 담백하게 사실만 말하는 막내라인의 말을 들으며 히죽거렸다.
“좋댄다.”
서예현이 질색하며 고개를 젓더니 이만 자야겠다고 방으로 향했다.
“야, 도빈아. 그런데 보통 그런 걸 비유할 때 팥 없는 찐빵이라고 하지 않냐? 팥 없는 단팥빵은 뭐냐?”
“그거 진짜 중국에 있어요. 팥 없는 찐빵. 제가 중국에서 먹어서 알아요. 그래서 팥 없는 찐빵이라고 하면 어쨌든 별로긴 하지만 굴러는 간다는 소리가 되잖아요. 하지만 팥 없는 단팥빵은 존재하지 않죠.”
웬일로 답지 않게 섬세한 짭막내의 머리를 마구 헤집어주었다. 짜식!
“감동했으면 작곡 놀이 숙제 좀 미뤄주면 안 돼요?”
“기분이다! 일주일 미뤄준다!”
옆에서 류재희의 혀 차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우리 막내가 나를 한심하게 볼 리가 없으니 잘못 들었겠거니 하고 쿨하게 넘겼다.
* * *
오랜만에 작업실에 견하준을 데려왔다.
“무슨 커피 테이크아웃 컵이 이렇게 많아? 커피를 얼마나 마신 거야?”
“준아, 이거 다 커피 아니라 3분의 2는 과일차랑 허브티다. 과일차도 당이 높대서 요즘 허브티 마시고 있다니까. 내가 이렇게 건강을 챙겨.”
조금 어이없는 이유긴 하지만, 키즈카페 EDM 동요 메들리 덕분에 거기에서 영감을 얻어 고전하고 있던 부분을 뚫을 수 있게 되었다.
잔잔했지만 EDM 비트가 합쳐져 분위기가 확 바뀐 동요에서 힌트를 얻어 적용해 보니 결과가 완벽하게 성공이었다.
지원이 형도 이걸 해냈냐고 나한테 박수를 쳐 줄 정도였다. 지원이 형이 어떻게 내가 신나게 뛰어논 EDM 동요 파티 타임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봤나…?
“준아, 이 곡은 기교 확 빼고 부르고, 이 곡은 최대한… 음, 일단 네 쪼 살려서 불러봐. 데모곡 가이드녹음 해 가면서 조정을 해 보게.”
그렇게 완성된 노래들의 가이드녹음을 견하준에게 부탁했다.
이번 활동에서는 견하준을 센터로 세울 거라 견하준이 곡의 느낌을 잘 살리는 게 제법 중요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견하준이 드라마로 인기 절정인 이 상태에서, 견하준의 본업은 가수라고 땅땅 보여주는 거다.
오빠친구, 청순계열 첫사랑 미남, 스포츠맨과인 쾌활하고 시원시원한 남주와 비교되는, 공부 잘하고 차분한 서브남주, 대학교에 가서 아직 학생인 여주인공의 과외도 해 주며 과외선생과 학생 관계까지 겸비하게 된.
우정과 사랑 중 망설임 없이 사랑을 선택하는 남주인공과 달리 우정과 사랑 중에서 고심하는 모습 덕분에 어째서 서브남인지 알 것 같다는 반응과 그런 고찰을 하는 캐릭터이기에 좋은 거라는 반응이 치열하게 갈리기도 했다.
어째 이번에는 회귀 전보다 더 반응이 뜨거운 것 같기도 했다.
어쨌든, 이 드라마 덕분에 견하준은 회귀 전 과거처럼 국민 첫사랑으로 등극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런 견하준을 향해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고 들었다. DTB 4 방영 당시의 나한테 들어왔던 수량이랑 비슷하다나.
주연도 아니고 주조연인데 힙합 최전성기 당시 힙합 서바이벌 우승까지 찍은 내 최고 전성기 때랑 러브콜이 비슷하다니. 이래서 연기 좀 하면 다들 아이돌에서 배우로 전향하려고 하는 건가.
물론 나는 음악을 하는 게 비교조차 할 수 없이 훨씬 더 좋았기에 딱히 관심 없었지만.
그나마 안심인 건 견하준이 회귀 전에도 계속 음악을 놓지 않았던 거? 끝까지 레브로 남아 있었던 게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라 믿고 싶었다.
6회차 견하준을 만나면 물어볼 수 있을까. 6회차 견하준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떠올리며 손을 가볍게 쥐고 펴다가,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간 견하준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자, 녹음 시작하자!”
곧 만날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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