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70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704화
직접 대놓고 물으면 누가 봐도 내가 너를 신월이랑 한 팀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하는 꼴이라 최대한 돌려 물어야 했다.
예전이었으면 아무 생각 없이 직설적으로 물어봤을 텐데, 이제는 돌려 말하는 법도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덜 귀찮은 결과를 가져오더라.
고심하다가 돌려 돌려 문자를 보냈다.
[D.I 형한테 들었는데, 피처링 제안 넣으셨다면서요] 오후 2:54
이 정도면 자연스러운 대화의 서두로 충분하겠지. 답장은 의외로 곧바로 왔다. 하루 이틀 지나고 보내는 게 기본인 차연호에게 익숙해져서 그런가, 굉장히 새로웠다.
[케이제이- 아 들으셨구나]
[케이제이- 거절하셨다고 방금 막 전해 들은 참이었는데…ㅎㅎ] 오후 2:55
[D.I 형이랑 스타일 비슷한 래퍼 몇 명 추천해 드릴까요?] 오후 2:56
자연스럽게 떡밥을 던지고 문자의 본론을 슬며시 꺼내놓았다.
[그런데 왜 D.I 형이에요? DTB 6 프로듀서보다는 우승자인 유피나 준우승자인 G-TE가 지금은 더 이슈고 그러지 않나?] 오후 2:57
[케이제이- 제 곡과 톤이 제일 어울리는 래퍼이기도 하고, 디아이 씨 랩 스타일을 제가 꽤 좋아하거든요]
[케이제이- DTB 3 보고 그때부터 한번 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오후 3:00
[케이제이- 마침 기회가 되어서 협업 제안을 드린 거고요]
[케이제이- 거절당해서 아쉽긴 하지만요] 오후 3:02
이럴 수가, 케이제이가 용철이 형 fanboy였다니. 아무튼, 내 예상과는 달리 음악적 이유가 주였다.
만약 정말로 의도가 있다 한들, 용철이 형을 나와의 연결고리로 이용해 먹으려고 일부러 지목했다고 순순히 말할 리가 없긴 하다만.
표절범 이미지가 하도 머릿속에 박혀서 그런가, 음악 이야기를 길게 하는 케이제이가 음악에 제법 진심처럼 보여서 기분이 묘했다.
[케이제이- 아무튼 소속사 측에서 이든 씨가 증거 가지고 있는 거 알고 이든 씨 주변인한테 손쓴 건 아니니까 안심하세요] 오후 3:05
[케이제이- 이거 온전히 제 의견이었으니까요] 오후 3:06
확실히 케이제이는 본인 친구보다는 눈치가 몇 배는 더 빨랐다.
차연호에게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정보를 케이제이가 알려줄지는 몰랐다.
회귀 전 케이제이가 걸어 온 마지막 전화와 케이제이의 마지막 선택을 믿어 봐야 할지 아니면 그래도 의심해야 할지,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역시 거짓말탐지기가 있어야 한다니까. 전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나약한 놈들은 절로 솔직해지잖아.
* * *
레브 정규 앨범 준비 일정을 받으러 소속사에 들렀다가 우연히 니텐스를 소속사 사옥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내게 우렁차게 인사하는 우리 소속사 후배 그룹의 인사를 나도 반갑게 받아 주었다.
니텐스는 현재 컴백해서 한창 활동 중이었다. 보니까 이번 곡도 차트 상위권에 등극했더라. 내가 니텐스 이번 타이틀곡 편곡에 참여했기에 곡이 잘 뽑힌 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제일 붙임성 좋은 멤버와 소소한 스몰 토크를 나누던 중, 니텐스 리더와 그 옆 멤버의 대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유월아, 선배님께 물어볼까?”
“됐어. 뭐 하러.”
“아니, 도움 주실 수도 있잖아.”
최대한 목소리 낮춰서 속닥거리는 것 같았지만, 다 들렸다. 애초에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힐긋거리는, 왜인지 간절해 보이는 눈빛에 내가 먼저 물꼬를 텄다.
“부탁할 거라도 있어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니텐스 리더 옆에 있던 멤버가 냉큼 내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모어댄엘 지형 선배님 약점 아세요?”
…그게 누구였더라.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약점을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도움이 딱히 안 되는 선배라서 미안하다! 회귀 전에 내 장례식 온 놈이었으면 바로 기억했을 텐데.
휴대폰을 켜서 인터넷에 검색해 보자 프로필이 나왔다.
모어댄엘(More Than Limit) 지형.
“얘 맞아요?”
“어? 어… 네, 맞아요. 아마도요.”
“와, 프사 사기 아니야? 못 알아볼 뻔. 사진 보정을 얼마나 한 거야?”
이 프로필상 사진의 얼굴은 몰라도 이 얼굴의 하위 호환급 얼굴은 알고 있었다. 누구인지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회귀 전에 우리 그룹을 서예현과 아이들이라고 뒤에서 비웃었던 놈이라 딱히 좋은 감정은 없었다. 지금은 그래도 앞에서는 싹싹하긴 하던데 우리를 또 뭐라고 뒤에서 까고 있을지는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그룹명은 괄호까지 이게 한 세트야? 뭔 놈의 그룹명이 이렇게 길어? 왜 영어는 ‘리미트’라고 써 놓고 읽는 건 ‘엘’로 읽어?
일단 데뷔 년도를 보니 레브보다 2년 정도 후배였다.
데뷔 5년차면 작년에 데뷔한 니텐스가 충분히 부담스러워할 만도 했다. 걸그룹 멤버에게 번호 달라고 집적거리고 다니는 놈이라니.
우리집 시스템한테 걸렸으면 그 자식도 초심통 무한 회귀 풀코스 경험을 하고 초심 찾은 생태눈깔돌이 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데뷔 초의 초롱초롱했던 시절을 잃은 정신 나간 놈들한테 초심도 시스템을 하나씩 배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걸 나만 가지고 있을 수는 없지.
당사자성 발언이지만, 가장 불안하고 열정 넘치는 시기인 데뷔 초를 원치 않아도 무한 리필로 체험시켜 주고 빠질 때마다 초심통으로 지지면 초심은 반드시 돌아온다.
1인 1 초심도 시스템 배급까지 뻗어 나가던 상상을 갈무리하고 다시 후배한테 물었다.
“그런데 약점은 왜…?”
“이분이 계속 유월이한테 집적거리면서 번호 달라고 끈덕지게 달라붙어서요. 저희 소속사가 엄격해서 남돌한테 연락만 와도 퇴출당한다고 거짓말 치면서까지 거절을 몇 번을 했는데도 계속 그래요.”
상황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가 퇴출당할 수도 있다는데도 걸그룹 멤버 번호 따기에 혈안이 된 놈은 여미새가 아니라 그냥 쓰레기였다.
“그러면 그냥 제 번호 줘 버려요. 나한테 전화하면 내가 따끔하게 한 소리 할 테니까.”
“네?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제가 해결할게요. 언니는 왜 선배님께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래.”
내가 떠올린 해결책이 영 부담스러운지 다급히 고개까지 저어가며 거절한 니텐스 리더가 옆에 있던 멤버를 타박했다.
“내가 지금 활동 겹치지도 않고 나한테 그놈 연락처도 없어서 어떻게 경고해 주지도 못하는데, 활동 끝날 때까지 계속 그 거머리 달고 다닐 거예요? 그냥 내 번호 넘기고 깔끔하게 해결해 버리는 게 낫지.”
내 설득에 니텐스 리더도 흔들리는 기색을 보였다. 지형인지 뭔지가 어지간히 귀찮게 굴었던 모양이었다.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1층에 도착했다. 동시에 니텐스 리더가 무언갈 결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여 승낙의 뜻을 내비쳤다.
니텐스 리더에게 내 번호를 알려 주고, 이거 외워서 본인 번호인 척 줘 버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자식한테 전화가 오기 전에, 그 자식 휴대폰이 아이폰인지 갤럭시인지 꼭 알려 달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남겼다.
녹음 여부에 따라 비속어의 사용 여부도 달라질 것이다. 내 현재 초심도는 100점이라 비속어 몇 개 쓴다고 해도 문제없었다.
나는 나름 소속사 후배를 돕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비속어를 쓰는 거니까, 만약 내가 비속어를 쓰면 나 대신 그놈을 초심통으로 지지면 안 될까?
[ㄴ]
우리집 시스템이 아직 융통성 패치가 덜된 모양이었다. 융통성만 좀 더 추가하면 완벽한데, 참…
* * *
요즈음 나는 걸려 오는 전화란 전화는 닥치는 대로 다 받는 중이었다. 오죽하면 오랜만에 연락한 친구가 나한테 무슨 경사 있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여보세요!”
신나서 전화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카드 보험 권유 전화였다.
“아오, 이번에도 아니네.”
전화를 끊고 잔뜩 실망하며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소파에 등을 편히 기댔다.
그런 나를 향해 수상해 죽겠다는 류재희의 의심 어린 시선이 와 닿았다. 가늘게 뜬 눈으로 나를 빤히 보며 류재희가 물었다.
“형, 혹시 이번주 로또 번호 알려준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에 넘어가서 입금한 거 아니죠?”
“야, 요즘 그런 거 다 오픈채팅방으로 하지, 대체 누가 전화로 알려준대?”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류재희를 향해 혀를 치고 있자, 이번에는 김도빈이 내가 꼬박꼬박 전화를 받는 이유를 나름대로 추론해 보았다.
“이든이 형 지금 보이스피싱 참교육? 보이스피싱 농락? 그런 거 찍고 나중에 썰 풀려고 보이스피싱 전화 기다리고 있는 거 아니야?”
보이(그룹)피싱이긴 했다.
“아, 저번에 네가 말해줬던 거 때문에 지금 전화 받으려고 그러고 기다리고 있는 거야? 니텐스 리더?”
견하준은 내가 그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이 개꿀잼 콘텐츠를 말해 줬기 때문에 이미 내 이상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니텐스 리더요? 그분이면 이든이 형이 번호 준다고 해도 거절했을 거 같은데…? 애초에 이든이 형이 번호를 줄 이유가… 혹시 뭐, 둘이 작업이라도 같이 하기로 했어요? 혹시 그분이 작곡에 재능이 있나요?”
류재희는 내가 이성적 호감으로 인해 후배에게 번호를 줬다는 가설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주성이 형과의 스캔들 이슈 이후로 류재희가 나를 이성 문제로 의심하는 일이라곤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봐라, 니텐스 리더를 리얼뮤직 동지로 의심하고 있지 않나.
“아니, 그게 아니라 니텐스 리더한테 자꾸 번호 요구하는 보이그룹 멤버가 있어서, 이든이가 자기 번호 대신 주라고 했대.”
이제는 류재희와 김도빈의 눈빛도 초롱초롱해졌다. 짜식들, 개꿀잼 콘텐츠는 또 귀신처럼 알아서.
내 휴대폰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네 쌍의 시선이 번번이 내게 따라붙었다.
막내 라인에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서예현도 내 휴대폰 벨소리가 울릴 때마다 아닌 척 내게로 시선과 집중을 돌리는 게 다 보였다.
“아, 뭐야. 내 번호 주기도 전에 알아서 떨어져 나갔나?”
“그럼 좋은 거죠.”
“물론 좋은 거긴 한데, 영 아쉬워서 그렇지.”
다른 용건으로 걸려 온 열 번째 전화를 끊으며 류재희와 투덜거림 섞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바로 열한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별 기대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이상하다. 난 분명 유월 씨 번호 딴 건데, 왜 신호는 가도 유월 씨 폰은 안 울리는지 모르겠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전화가 온 순간이었다. 예상했던 거랑 약간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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