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95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94화
[안녕하세요, 데이드림. 설 연휴 잘 보내고 계신가요?]
셔츠 소매를 팔뚝까지 걷어붙이고 빈티지 라운드 안경을 쓴 견하준이 칠판 앞에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명절 잔소리 스트레스라고 아시나요? 온 가족이 모이면 좋은 점도 있지만, 걱정을 빙자해서 쏟아지는 잔소리는 전혀 좋지 않죠. 그렇다고 어른 말을 무시하거나 정면으로 대꾸할 수도 없고 말이에요.]
시작부터 공감 가는 인트로를 들으며 양 모 양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저 같은 경우도 학창 시절에 성적이랑 제 미래, 제 꿈에 대해서 친척 어른들한테 제법 많은 잔소리를 들어 왔거든요. 그때마다 제가 써먹었던 명절 생존 미소 스킬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하준이 형, 아니 강사님도 잔소리를 들었다고요? 명절 때마다 잔소리 많이 들었을 것 같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잔소리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는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을 것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기에 퍽 아이러니한 강의 주제였다.
[데뷔 못 해도 직업 가질 수 있게 공부 열심히 해라, 대학을 왜 안 가려고 하냐, 혹시 모르니까 자격증이라도 미리미리 따 놔라, 대충 이런?]
[정말 전형적인 K-친척어른 잔소리네요.]
[원리는 간단해요. 딱 이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눈웃음, 고개 끄덕임, 입꼬리 각도. 이 셋의 조화가 중요해요.]
칠판에 ‘눈웃음+고개 끄덕임+입꼬리 각도’라는 길쭉길쭉하고 반듯한 글씨를 분홍색 분필로 적어 나간 견하준이 문장을 툭툭 쳤다.
5색 분필로 현란한 칠판 필기를 선보였던 서예현과 달리 견하준의 분필은 딱 두 개였다.
흰색, 그리고 분홍색.
[여기에서 포인트는 눈과 고개입니다. 말을 듣고 있다는 인상을 결정하는 건 이 둘이에요. 처음부터 한꺼번에 하긴 어려우니까 단계별로 설명해 드릴게요.]
눈과 고개에 흰색 분필로 동그라미를 친 견하준이 살짝 내려간 안경을 다시 쓱 올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눈웃음은, 눈꼬리를 살짝 내리고 시선을 상대 얼굴 근처에 맞춰 주세요. 눈썹도 같이 내리면 좋아요. 그래야지 듣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초점은 너무 흐릿하게 하지 말고, 한 30퍼센트 정도만? 상대가 약간 뿌옇게 보일 만큼.]
얼빡샷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기개를 보이며 견하준은 카메라 가까이 저벅저벅 걸어와 화면 바로 앞에서 눈썹과 눈꼬리를 내리는 시범을 보여주었다.
[다음은 고개 끄덕임인데요, 법칙이 있어요. 1분 법칙이에요. 이게 뭐냐, 1분마다 고개 끄덕임 한 번. 이러면 경청하고 있다는 착시 효과를 줄 수 있어요.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면 빨리 말 끝내라는 재촉으로 보여서 역효과가 날 수도 있으니 무조건 1분에 한 번씩 끄덕여 주세요.]
내용만 뚝 떼어서 보면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지만, 견하준의 단정한 외모가 그 개소리에 신뢰감을 더하며 제법 그럴싸하게 들리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입꼬리 각도인데요. 너무 환하게 웃으면 안 돼요. 그렇다고 너무 다물고 있어도 안 돼요. 딱 이 정도. 살짝 은은하게 올리는 정도.]
이번에도 견하준은 직접 시범을 보여 주었지만 견하준이 항상 고수하고 있는 입꼬리 각도라 이게 지금 시범을 보이고 있는 건지, 카메라 앞에서 잘생긴 얼굴 얼빡샷을 선보이고 있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잔소리가 길어진다, 그러면 이 각도에서 살짝만 입꼬리를 내려 주세요. 이걸 다 합치면, 이런 미소가 나옵니다.]
왜인지 모르게 익숙한 미소였다.
카메라 뒤에서 윤이든이 속사포처럼 내뱉어 주는 명절 잔소리를 배경음 삼아, 견하준은 실전 활용 사례까지 선보였다.
약간은 곤란하다는 듯 미소 지으면서도 고개까지 끄덕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쓴소리를 경청하고 있는 이의 모습이었다.
[잔소리의 다른 말이 뭘까요. 쓴소리예요. 어른들은 본인들이 쓴소리를 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어요. 그걸 달게 듣고 있으면 어른들도 본인들 말을 안 듣고 있다는 걸 눈치 채요.]
나름의 꿀팁까지 알려준 견하준은 실생활에도 간간이 써먹을 수 있다는 응용 팁을 마지막으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앞선 서예현의 강의와 달리 이번 강의는 반전 없는 멀쩡한 강의라고 생각했다. 댓글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강의가 도움 되고 강사 얼굴이 재미있어요
-내일 친척들 오기 전까지 거울 보면서 미소연습 들어간다
-어라 이 미소 상당히 익숙한데? 하준이 친척어른도 아닌 내가 저 미소를 어떻게 알지..?
-이거 멤버들이 헛소리 할때마다 하준이가 짓던 미소 아니야?
-아… 아앗… 실생활에도 써먹으라던 말이 바로…
-멤버들 헛소리도 사려깊게 경청해 주는 줄 알았는데 사실 알고 보니 한 귀로 듣고 흘리고 있었던 거구나
-울 하준이 탈인간급 심성의 마망인줄 알았는데 인간미있다
-헛소리 하면 대놓고 새끼손가락으로 귀 후비는 이든이 Vs 헛소리까지 경청해주는 듯하면서도 사실은 한 귀로 흘리고 있던 하준이
-효과 ㄹㅇ 확실한데? 실제사례 있었던 거 보니까 이 강의에 믿음이 더 생기기 시작함
그렇게 견하준을 레브의 엄마, 성인(聖人), 아무튼 초월급 다정함 보유자로 만들어 주었던 섬세한 경청의 자세는 명절 생존 미소 꿀팁 강의로 인해 파묘당했다.
누군가가 서울 어딘가에서 이 아이디어를 추천해 준 게 이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긴 하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다음 순서는 김도빈의 강의였다.
Yxxtube
(영상)
명절에 사촌동생들이 와서 물건 달라고 하면 뜯기지 않는 TIP – 도빈
[일단은 눈에 띄지 않게 숨기는 게 베스트예요. 하지만 미처 숨기지 못했을 때, 혹은 숨겨 놓은 걸 들켰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김도빈은 흰색 분필 하나로 칠판 필기를 모두 해 냈다. 또박또박 쓰려고 노력은 하지만 자꾸만 오른쪽 위로 점점 올라가는 문장과 엉성한 글씨체가 퍽 친근감을 선사했다.
[만약 비싼 거다. 그러면 바로 인터넷을 켜서 시세를 검색한 후에, 반드시 우리 부모님도 있는 자리에서 보여 주세요! 엄마아빠가 지금 이렇게 비싼 걸 꽁으로 넘기라고 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셔야 하는 거예요.]
어디에서 구해 왔는지 지휘봉으로 탁탁 칠판을 두드리는 건 덤이었다.
[싼데 나한테 소중한 거다, 그러면 사촌 동생 손에서 뺏은 후에 그 물건과 함께 집을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한 일곱 시간은 있어야지 효과가 극적이에요. 저 어릴 때는 제가 휴대폰이 없어서 부모님이 저한테 어디냐고 전화를 걸지는 못했는데, 대신 112에 실종신고를 하셨죠. 그래서 경찰서에서 미아 찾았다고 부모님께 연락해서 부모님이 달려오면 이제 사촌 동생이 물건 달라고 징징거렸던 건 부모님 머릿속에서 싹 잊히는 거죠. 어른들도 이제 걱정하느라 물건 안 준 거 쪼잔하다, 이런 생각 못 해요. 휴대폰 두고 가라고 팁을 드리고 싶은데 일곱 시간 동안 심심하니까, 그냥 챙겨 가시고 비행기 모드로 돌려 놓으세요.]
이게 명절 관련 꿀팁인지, 옛날 썰 풀이인지.
꿀팁 들으러 왔다가 신나게 떠드는 김도빈의 과거 일화만 듣고 가는 데이드림이었다. 원래 어릴 적 썰풀이가 제일 재미있는 터라, 지루한 꿀팁 강의보다 훨씬 낫긴 했다.
-와 진짜 도빈이 육아난이도 최상이었구나
-도빈아 효도해라
-내가 낳지 않아서 다행인 아이돌 1위
-일곱시간 집 나가도 부모님이 걱정할 나이인지 물어보는게 먼저 아닐까?
-경찰서에서 엄빠 만나느니 그냥 사촌동생한테 뜯길게…
-명절이 아주 스펙타클했을 듯 도빈이 사촌동생들도 차마 도빈이 물건 뜯을 생각을 못했을듯
Yxxtube
(영상)
명절 잔소리값을 측정해 봅시다! – 유제
[노동에는 언제나 시급이 따르잖아요. 그리고 잔소리 듣는 것도 노동이죠. 저희 시간까지 뺏기는 감정 노동. 그러니 잔소리에도 시급이 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도수 없는 안경을 쓰고 나온 류재희는 아예 7색 분필을 사와 형형색색으로 칠판 필기를 선보였다.
[제일 많이 듣는 잔소리가 결혼, 취업, 그리고 외모 관련일 거라 생각하는데요. 일단 이 세 잔소리를 기준으로 시급 표를 만들어보죠. 100만 원, 이렇게 너무 많이 부르면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니까 적절한 선에서 한번 해 봅시다.]
하지만, 그 색색의 컬러도 글씨체를 가릴 수는 없었다. 본인 딴에는 글씨체를 바꿔 보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렁이 기어가듯 하던 게 조금 반듯해졌을 뿐이지, 짧뚱한 글씨체는 여전했다.
[연봉 얼마냐고 물어보면 연봉의 0.001%를 청구하시고, 다른 친척이랑 직업이나 연봉 비교 들어가면 비교당한 사람들끼리 평균값을 내서 그 평균값의 0.001%를 청구하시는 거예요.]
단순한 액수 추가가 아니라 감정적 위로와 실질적 보상을 동시에 노린, 나름 합리적인 기준이었다.
[아, 덤으로 부모님께 세뱃돈 회수당하지 않는 팁도 알려드릴까요?]
이 분야의 권위자, 류재희가 눈을 찡긋했다.
[잔소리 가격표 파일은 레브 팬카페에 업로드해 놨으니 편하게 사용해주세요. 그럼,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즐거운 설 연휴 보내세요, 데이드림!]
류재희는 섬세하게 명절 잔소리 가격표 파일도 팬카페에 올려주었다.
-취업 안 한 사람들은 가고 싶은 회사 최고치 연봉 0.001% 청구하래ㅋㅋㅋㅋㅋ
-진짜 이대로만 돈 주면 나 여기 있는 잔소리 다 듣기 쌉가능
-이거 가격표 프린트해서 내일 친척들 오자마자 한 장씩 돌려야지
-하준이가 알려준 경청위장 생존미소 지으면서 잔소리값까지 받으면 완전 남는 장사 아녀?
-막내 왜 세뱃돈 사수하는 게 익숙한거야ㅠㅠ 인간적으로 애들 세뱃돈은 뺏지 맙시다 부모님들ㅠㅠㅠ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순서.
명절 효륜디스랩 가사 쓰기 강의(Feat. 세뱃돈 협상의 자세) – 이든
올 게 왔구나!
글자 조합만으로도 어질어질함을 선사하는 윤이든 강의의 제목을 보자마자 양 모 양이 눈을 질끈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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