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8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88화
[스코언- 야 이든아]
[스코언- 너 리번이랑 무슨 일 있냐?] 오후 7:32
리번과의 연락 연결고리가 되어 주었던 스코언이었다.
DTB 6까지 나오며 그럭저럭 연락하고 지내는 유피나 니지어스와 달리, 인연이 딱 DTB 4까지였던 스코언은 아무래도 친분이 덜해서 연락이 뜸하긴 했다. 내가 힙합판에 몸 담고 있는 래퍼가 아닌 것도 한몫하고.
그때도 리번과 만남이 이루어지고 나서 연락이 한동안 없었는데 이렇게 안부도 묻지 않고 갑작스럽게 뜬금없는 질문부터 던져 오니 당황스러울 만도.
무슨 일이 있다고 말하기도 그렇고 없다고 말하기도 그랬다. 그래도 USB만 주고받은 사이가 무슨 일 있는 사이는 아니지.
[아니요?]
[왜요?] 오후 7:34
[스코언- 너랑 DTB 나갔다는 연결고리 있다고 나한테 ㅈㄴ 너 관련해서 캐물어 갑자기] 오후 7:35
[스코언- 이전에 조율할 때는 지원이 형한테만 신경 몰빵하고 너 ㅈ도 신경 안 쓰더니] 오후 7:36
그렇구나. 그때의 리번한테 나는 그저 지원이 형에게 고자질한 새끼 1이었구나.
지원이 형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새까만 눈동자가 문득 떠올랐다. 이제 그 시선이 나한테 올 수도 있다는 소리지?
리번은 나보다 10년 먼저 태어나서 복 받은 줄 알아야 한다. 차연호가 나를 그딴 눈깔로 보고 있어 봐라. 바로 손가락 두 개 펴서 눈 찌르는 시늉 들어가지.
계속 그딴 눈깔로 쳐다보고 있으면 진짜 찌르고.
내가 곡 정체를 알아낸 것에 대한 단순 흥미인지, 아니면 곡 정체를 너무 쉽게 알아낸 것에 대한 의심인지.
미친놈의 흥미 대상보다는 미친놈의 의심 대상이 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차연호는 내 복장과 혈압만 위험하지, 리번은 그냥 위험했다. 둘 중에서 꼭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닥 차연호였다.
[뭐 물어봤는데요?] 오후 7:37
[스코언- 너 신월 전 연습생이었냐고부터 신월이랑 뭐 작업한 거 있는지, 네 성격 어떤지, 하여간 별거 다 꼬치꼬치 캐물어보더라]
[스코언-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냐 네 현재 소속사가 어디인지도 모르는데] 오후 7:39
어지간했으면 스코언이 내게 경고성 문자를 다 보내 줄까. 내게 던져 준 USB가 아무래도 리번 딴에는 풀기 힘들 거라 생각한 퍼즐이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몰려오는 심란함에 휴대폰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푹 내쉬자 류재희와 서예현이 나를 힐긋거렸다. 서예현이 희망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왜, 혹시 우승자 선정에 오류가 생겼대? 너 이제 우승자 아니래? 드디어 그 최종 우승자 드립을 그만 들어도 되는 거야?”
“아아니, 형은 방송으로 내가 최종 우승자에 등극하는 과정을 다 봤으면서 무슨 소리야.”
거 희망 사항이 너무한 거 아니요. 내가 최종 우승자 드립을 치면 얼마나 쳤다고.
서예현과 다시 논쟁을 하고 있는 동안, 2층에서 잽싸게 튀어나온 김도빈이 류재희를 반갑게 맞이했다.
“류재, 잘 갔다 왔어? 이든이 형 잘 써먹었어? 진짜 이든이 형 데려가니까 눈탱이 안 치려고 했어? 헐, 형들. 막내 울렸어요? 막내 눈시울이 완전 빨간데요?”
“우리가 안 울렸다. 자기 혼자 운 거다.”
내 대꾸에 류재희가 감동이 싹 가신 얼굴로 투덜거렸다.
“형들이 울린 거긴 하잖아요.”
김도빈이 내 손을 힐긋거리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내가 물리력을 행사하다가 힘 조절을 잘못 해서 류재희를 울린 것으로 오해하는 모양이다.
“혹시… 형들이 지금 그 조합으로 결국은 끝내주는 집을 찾아서 막내를 감동시켰다거나…?”
류재희가 눈물 삼킨 이유가 그건 아니긴 했지만, 오랜만에 김도빈이 처맞는 소리를 안 하고 맞는 소리를 했다.
김도빈도 드디어 철이 든 모양이다. 역시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옛말 틀린 거 하나 없었다.
“그런 걸로 감동 안 하거든?”
“그러면 혹시 형들이 중개인 협박해서 우리 망한 거 같아서 운 거야? 우리 인터넷에 글 올라와? 인터넷 디톡스 준비해야 해?”
철든 게 아닌 것 같기도. 3년이 아니라 6년을 지내도 풍월을 읊지 못하는 서당개도 존재하는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협박은 윤이든 혼자 얼굴로 했어. 난 빼 줘.”
“남향 부르짖던 사람이 뭐라는 거야? 내가 봤을 땐 그 아저씨가 글 올리면 형 비중이 70이야.”
워낙 밖이 시끌시끌했는지 견하준이 짧게 하품하며 방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봐도 방금까지 잘 자고 있었던 얼굴이었다.
“우리가 시끄럽게 해서 깼냐…?”
“아니야, 나도 금방 일어났어.”
견하준이 고개를 짧게 저었다. 몇 달을 보고 있는데도 아직도 낯선 검은색 머리칼이 고갯짓을 따라 가볍게 흔들렸다.
“나는 오늘도 저녁 걸러야 하니까 알아서 차려 먹어.”
“아니, 배역이 모델이야? 무슨 그렇게 예현 형마냥 극한의 다이어트를 해? 심지어 원조인 예현이 형은 이제 극한의 다이어트를 멈췄는데?”
“요즘 다시 좀 시작되는 거 같아요. 조만간 오이푸딩케이크 한 번 더 먹여야 할 듯요.”
“도빈아? 나한테 뭘 먹인다고?”
내 기억으론 견하준의 그 배역 설정에 모델 설정은 딱히 없었던 거 같은데.
누군가의 첫사랑으로 남기 위해서는 저런 슬랜더 체형이 되어야 하냐고.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의 첫사랑이 되긴 글렀군.
견하준의 저 몸 상태를 마음에 들어하는 건 서예현밖에 없었다. 아니, 생각해 보니까 데이드림도 포함이었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체중 조절하고 오른 연말 시상식 무대에서 견하준 리즈 찍었다는 반응이 제법 있었던 걸 보면 말이다.
“남자주인공이 운동부 설정이라서 내가 상대적으로 슬랜더 체형으로 나와야 하거든. 아무래도 친구라서 같이 등장하는 씬이 많다 보니까 확실히 구별되길 바라나 봐.”
그러면 주연 배우가 몸을 더 키우면 될 일 아닌가. 왜 멀쩡한 사람을 제2의 서예현으로 만들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 형은 무슨 설정인데요?”
“…공부 잘하는 설정.”
류재희의 호기심 가득한 물음에 한참을 뜸들이던 견하준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실제 견하준과는 거리가 먼… 것까진 아니고 적당히 있는 설정이었다. 견하준 학창시절 성적이 아무리 그렇게 좋진 않았어도 나보다는 나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견하준 인상으로 소화하기는 충분한 배역이었다.
김도빈도 설정을 듣자 호기심이 생겼는지 질문을 쏟아냈다.
“보통 그런 거 보면 운동부가 서브 남주이던데, 나름 역클리셰네요. 그런데 공부 잘하는 설정이면 학생 역할 해요? 고등학생이에요, 대학생이에요?”
“둘 다. 내가 이 나이에 교복 입어도 되는 건가 싶어….”
견하준이 마른세수하며 한탄했다. 모 드라마에서는 40, 50대 배우들도 교복 입고 열연하던데 스물여섯 살이 교복 입는 게 뭐 얼마나 이상하다고.
드라마 촬영장에 보낼 커피차를 준비하는 건 견하준한테는 비밀로 했다. 원래 이런 건 서프라이즈가 더 의미 깊은 법이다.
드라마 OST 제작 제안도 내게 들어왔지만 비밀로 하기로 했다. 내 OST를 깠던 회귀 전 견하준에게 보내는 소소한 복수였다. 물론 감당하는 건 현 견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랑 현재랑 왔다 갔다 하면서 보여주는 설정이라서, 스토리 상으로는 중요한데 전체 촬영분으로 따지면 내 비중이 그렇게 크진 않아. 그래서 설 휴가도 받고.”
견하준이 멋쩍게 웃었다.
“설 휴가 하니까, 나 본가 내려갈 때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카이사르도 너희가 그리울 텐데…”
여전히 미련이 남은 얼굴로 서예현이 나랑 견하준을 번갈아 바라보며 아련하게 말했다. 그런 서예현의 캣소리를 시니컬하게 맞받아쳤다.
“그렇겠지. 일주일 동안 잘 쓰던 침대가 사라져서.”
내 입으로 스스로가 침대라고 인정하자 기분이 영 묘했다.
내가… 고양이 침대…?
* * *
[지원이형- 잠깐 내 작업실로 좀 올 수 있냐?] 오후 3:30
지원이 형한테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문자가 도착했다. 드디어 리번한테 질문의 답변을 받은 모양이었다.
[넵]
[지금 가도 돼요?] 오후 3:32
[지원이형- 엉 최대한 빨리 와라]
[지원이형- 제발] 오후 3:34
나도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전화나 문자로 나누는 것보다는 직접 면대면으로 나누는 편을 더 선호했기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고 지원이 형의 작업실로 곧바로 향했다. 지원이 형을 믿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지원이 형이 보낸 마지막 문자에서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다.
지원이 형의 작업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당황하여 눈을 깜빡였다.
“안녕, 후배.”
지원이 형 작업실 뒤편의 소파를 당당히 차지하고 편히 기대어 앉아 있던 리번이 나를 향해 여유만만하게 손을 흔들었다.
시발, 저 인간이 왜 여기에 있어? 지금 지원이 형이 저 미친놈 있는 곳에 나를 부른 거야? 황급히 지원이 형을 찾았다.
다행히 지원이 형은 저 인간과 나를 단둘만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있는 그런 극악무도한 짓은 하지 않았다.
“왔냐.”
지원이 형이 저렇게 반가워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나를 여기로 부른 것도 지원이 형이었음에도.
모니터 앞 의자에 앉아 나를 반기는 지원이 형의 얼굴은 리번과 반대로 벌레를 씹어도 저것보단 나을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오우, 두 분 혹시 화해-”
화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올라가 있던 리번의 입꼬리가 비틀리고 지원이 형의 인상이 무섭게 구겨지는 걸 실시간 직관하고 입을 슬며시 다물었다.
지원 형의 작업실 소파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아 있는 리번과 그런 상태의 작업실에 나를 불러낸 지원 형.
화해한 기색은 전혀 없어 보이는 둘.
이 모든 현재 상황을 조합해 봤을 때, 결론은 단 하나였다.
“지원이 형, 혹시 저쪽한테 협박받고 있는 거라면 지금 당장 헤드셋을 두 번 흔들어 주세요.”
지원이 형이 아주 기다렸다는 듯 헤드셋을 덥석 집어 들어 신명나게도 흔들었다.
흔든 횟수가 두 번이 넘었는데, 흠.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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