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81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80화
‘오, 노래 좋네.’
파일을 재생하자마자 흘러나오는 멜로디는 제법 귀에 박혔다. 누가 들어도 실력 있는 사람이 작곡한 곡 같았다.
곡을 부르는 발성도 제법 깔끔했다.
일단 리번의 목소리는 확실히 아니었다. 본인이 부르지도 않은 곡을 대체 왜 준 거지.
랩도, 힙합 장르도 아니었으니까 본인이 발매하지 못한 노래를 향한 미련을 나를 이용해 풀려고 하는 거라는 가설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노래 안에 메시지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해서 가사 받아쓰기까지 해 가며 분석해 봤지만, 일단 가사에 리번이 나한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는 것은 확실했다.
아무리 들어도 시니컬한 사랑 노래인데, 리번이 나한테 고백 갈기려고 보내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거꾸로 재생까지 해 봤지만 숨겨진 메시지 따위는 없었다.
‘진짜 뭐지?’
도저히 리번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지원이 형의 그 착잡한 표정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도움을 주려면 대마 쿨거래 입금 내역이라든가, 신월 소속 가수가 대마 빨고 있는 사진이라든가, 증거가 잡힌 음성 녹음 파일이라든가 이런 걸 줘야 할 거 아니야.
아무 설명도 없이 달랑 음원 파일 하나만 던져 주면 어쩌자는 거냐.
내가 지원이 형이었으면 당장 리번 멱살 잡고 짤짤 흔들면서 이걸 무슨 의도로 보낸 건지 어떻게든 알아냈을 텐데.
그렇다고 지원이 형의 경고를 무시하고 리번을 혼자 만나기엔 여엉 위험 부담이 컸다. 전에 지원이 형과 삼자대면을 했던 당시의 리번이 나한테 호의적이진 않았기에 더더욱.
게다가 나는 잃을 게 많고 그쪽은 잃을 게 없지 않은가. 마음 같아서는 똑같이 잃을 거 없는 회귀 전 서른 살 윤이든에게 만남을 외주 맡기고 싶은 마음이었다.
‘진짜 도움이냐, 함정이냐.’
여전히 재생되고 있던 노래를 멈추고 의자에 몸을 한껏 기대어 노트북 화면만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문고리가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언제 들어왔는지 카이사르가 내 무릎 위로 점프했다. 내 무릎에 앉으려는 건 줄 알았더니 내 무릎을 발판 삼아 노트북이 올려진 책상 위로 올라간 카이사르가 마우스를 철퍼덕 깔고 앉았다.
키보드에 앉지 않아서 고마워해야 하는 처지라니. 키보드에 앉았으면 파일의 존속에 위기가 닥쳤을 테니 오늘의 카이사르는 나름 덜 크래이지 캣이었다.
그래도 무게가 무게인지라 카이사르의 묵직한 뱃살에 눌린 오른쪽 마우스가 제멋대로 켜지며 창을 띄웠다.
물론 이 고양이가 한 행동 덕분에 파일에 숨어 있던 비밀이 밝혀진다거나, 숨겨진 메시지를 발견한다는 그런 영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이 파일을 살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떠올렸을 뿐이다.
‘파일 속성에 한 번 들어가 봐? 거기에 무슨 메시지를 남겨 놨다거나?’
그러려면 일단 카이사르의 뱃살 밑에서 마우스를 구출해 내야 했다.
사람이 자기 배를 만지려고 하면 널 죽이겠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가래침 원기옥 모으는 것처럼 캬아악거리더니, 마우스는 괜찮은 거냐고.
“자, 카이사르. 간식 먹자, 간식.”
포도한테는 아주 잘 먹히는 페이크 비기, 간식 있는 척 손가락 모으고 유인하기를 시도해 봤으나 카이사르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똑똑한 건지, 우리 포도가 순진한 건지 모르겠다.
“준아! 얘 좀 데려가라!”
별의별 쌩쇼를 해도 미동도 없는 카이사르 때문에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카이사르의 애착 인간을 소환했다.
“카이사르, 내려와.”
내 말은 그렇게 캣무시를 해 대더니 견하준이 방에 들어와 입을 열자마자 바로 점프해서 내려가는 걸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고양이가 이런 식으로 나한테 비견하준 차별 거울 치료를 해 준다고?
“에옹, 먀웅, 먀아-”
“왜 계속 울어? 배고프다고? 예현이 형이 주고 갔던 밥 다 먹었지 않아?”
“아우웅-”
“예현이 형한테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없고… 막내야! 도빈아! 고양이가 왜 우는 건지 이유 알아?”
“배고픈 거 아니에요? 아니면 간식 먹고 싶다거나?”
“여행 간 가족들이 그리울 수도 있고요. 슬슬 그리울 때잖아요.”
저 저 가증스러운 크래이지 캣 같으니. 나한테는 목소리 존나게 내리깔고 우웨우어웅거리더니.
견하준이 카이사르를 상대해 주고 있는 사이, 나는 잽싸게 마우스를 확보해서 파일 속성 창을 열었다. 메시지는 없었지만, 파일이 생성된 날짜와 수정한 날짜는 알 수 있었다.
‘생성 날짜가… 9년 전? 수정한 날짜는 8년 전이고…’
무려 9년 전 곡을 줬다는 사실에 더욱 미궁에 빠졌다. 9년 전이면 내가 17살 때인데.
만약 이게 신월이랑 관련된 곡이라면 케이제이는 알지 않을까. 9년 전이면 알테어도 데뷔하기 전이라 그게 좀 걸리긴 했다.
차연호는 뭐… 알고 있을 거라는 기대가 딱히 없었다. 도움이 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그럴 것 같았던 거고.
케이제이와 대면할 때 USB를 챙겨 가기 위해 노트북에서 뽑아서 책상 한구석에 잘 놔두었다.
케이제이가 모른다고 하면 이제 리번이랑 대면의 시간을 가져 볼 수밖에 없지. 최대한 피하고 싶긴 하지만.
한숨을 푹 내쉬고 있자 견하준이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말을 붙여왔다.
“무슨 일 있어?”
“ 제8회 최종 우승자인 내가 단서 찾기를 실패하다니! 그렇게 밥 먹듯이 성공했던 단서 찾기를!”
“예선전에서도 그랬고, 본선전에서도 딱히 네가 단서 찾기를 막 다 성공시키진 않았어.”
아무래도 견하준이 나랑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설마 견하준도 꿈 속 시스템 때문에 기억의 조작을 겪고 있는 건가?
겨우 단서 찾기에서 막히면 우승자 부심을 더는 못 부리잖냐! 책상에 머리를 쿵 박자 뒤에서 선명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준아, 설마 비웃은 거 아니지…?”
“믿기지 않겠지만, 카이사르가 낸 소리야.”
견하준이 침착한 목소리로 내 말에 반박했다.
견하준은 자기가 비웃어 놓고 고양이한테 덮어씌울 위인은 아니었기에 바로 믿었다. 김도빈이라면 몰라도 견하준은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카이사르의 묘성만 봐도 충분히 믿을 수 있었고 말이다.
“얌마, 카이사르. 너는 내 고뇌가, 내 절망이 웃기냐? 어?”
고개를 들고 따져 묻자 카이사르가 고개를 돌려 나를 외면했다.
저, 저 지퍼 열면 사람 튀어나오는 거 아니야?
“나중에 말해 줄게. 지금은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
내 말에 견하준은 더는 캐묻지 않고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내 복수에 멤버들까지 엮이게 만들지 않으려면 멤버들을 최대한 끌어들이지 않아야 했다.
[지원이 형- 급하게 요청했는데 빌려줘서 고맙다]
[지원이 형- 작업실 잘 썼다] 오후 8:32
[지원이 형- (깨끗이_치워놓은_책상.jpg)]
[지원이 형- (전원_꺼진_컴퓨터.jpg)]
[지원이 형- (조명_불_끔.jpg)] 오후 8:33
[지원이 형- (작업실_문_잠긴거_확인시켜_줌.jpg)]오후 8:34
지원이 형이 내 작업실에서 작업을 다 마쳤는지 감사 인사와 함께 사진을 연달아 보내왔다.
[지원이 형- 뭐 좀 알아낸 거라도 있냐?] 오후 8:35
[지원이 형- 내가 들었을 때는 그냥 평범한 데모곡이던데] 오후 8:36
[지원이 형- 모르겠으면 말해]
[지원이 형- 내가 그새끼 한번 더 만나고 오지 뭐] 오후 8:37
나를 위해서 쌍방 죽빵 날리고 손절한 친구하고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오겠다니, 참 감동이었다.
그런데 이제 리번이 나랑 대면했을 때 이야기를 해 줄 확률이 큰지, 지원이 형을 대면했을 때 이야기를 해 줄 확률이 큰지, 이걸 몰라서 문제지.
[한달 후까지 알아보고 만약 모르겠으면 그때 형한테 SOS 칠게요] 오후 8:38
[지원이 형- 하긴 너희 지금 연말 시상식 시즌이라 바쁘지]
[지원이 형- 거기에다가 디티비콘까지 하면 한달 맞네] 오후 8:39
여전히 미궁에 빠진 음원 파일의 정체를 밀어 놓고 또 오토바이 시동 걸고 있는 카이사르를 덥석 안아 올려 견하준을 카이사르한테서 구출해 주었다.
“므에얅!”
카이사르가 목소리 싹 바꾸고 호통 같은 울음소리를 내질렀지만 한두 번 들은 게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카이사르를 안고 거실로 향했다.
“뭐야, 예현 형 이제 안 나와?”
서예현으로 카이사르의 주의를 돌리려고 했는데, 아쉽게 됐다.
그리고 서예현이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서예현한테 막내가 찍어 놓은 카이사르의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카이사르의 앞발이 본인 볼을 텁텁 치고 있는 걸 보는 서예현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우리 카이사르가 나를 이렇게 그리워하고 있었다니…!”
“사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카이사르으으으! 오빠 여기 있어! TV에서 오빠 찾지 말고 남은 사흘 동안 실컷 현실에서 오빠 얼굴 보고 가. 오빠가 설날에 꼭 다시 집 갈 테니까 오빠 너무 그리워하고 있지 말고.”
“카이사르 다시 양산 가면 형이 아니라 하준이를 그리워하는 거 아니야?”
내 말을 가볍게 씹은 서예현이 카이사르를 꼬옥 끌어안았다. 카이사르의 앞발이 TV 속 서예현을 넘어 결국 현실 서예현의 볼까지 퍽퍽 쳐 댔다. 그래도 서예현은 좋다고 꿋꿋하게 카이사르를 껴안고 있었다.
“왜 카이사르가 13년 넘게 함께했던 예현이 형을 두고 쌩판 남인 하준이 형을 애착인간으로 택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고양이와 인간 조합을 보며 류재희가 혀를 찼다.
서예현이 캔따개 행이 된 이유가 다 있었던 거다. 그런데 나는 왜 침대 행인지 아직도 감이 안 잡혔다.
* * *
카이사르가 숙소를 떠나기까지 D-2?
“너는 이제부터 크래이지 캣이 아니라 갓캣이다! 갓캣! 이제 갓캣이라고 불러준다, 내가!”
“카이사르 평생 우리 숙소에서 지내면 안 돼요? 카이사르, 가지마! 내가 평생 따까리로 살 수 있어!”
“야, 윤이든! 너 지금까지 우리 카이사르를 크래이지 캣으로 부르고 있었다는 거야? 이 크래이지 와일드보어 놈아!”
“와일드보어요? 그거 게임 몬스터 이름 아니에요? 그리고 이든이 형은 크래이지 타이거죠. 눈 돌아간 민화 호랑이.”
“크래이지 휴먼이겠지. 왜 사람 종을 바꾸고 난리야.”
“크래이지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구나.”
우리 모두가 카이사르를 찬양하게 되는 일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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