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79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78화
“비견하준 차별하는 거 맞잖아! 이든이 형이다, 이든이 형!”
“닮은 게 외형뿐만이 아니었다니. 저 정도면 진짜 영혼의 쌍둥이인데?”
“카이사르 성별을 바꾸지 마아악!”
“짜식이 지금 이 집 가장인 내 말은 캣무시를 하면서 하준이 말만 들어?”
본인을 둘러싼 소란과 혼란 속에서도 카이사르는 평온한 표정으로 견하준의 무릎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물론 동물을 딱히 좋아하는 편이 아닌 견하준은 카이사르가 본인 무릎을 떡하니 차지하고 앉기가 무섭게 슬쩍 들어 올려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일단 내 지정석에서 나오게 만들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니 말이다.
무릎 위에서 옆자리로 쫓겨났지만, 견하준의 허벅지에 딱 붙어 앉은 카이사르가 갑자기 오토바이 시동 거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왜 이러는 거지…? 예현이 형, 카이사르 어디 아픈 거 같은데?”
견하준이 식겁하며 서예현을 찾았다. 잽싸게 내 지정석에 털썩 앉은 나도 목을 쭉 빼서 카이사르를 확인했다.
“네가 옮겨 놔서 빡친 거 아니야? 딱 봐도 심기 불편한 얼굴이잖아.”
눈을 반쯤 감은 뚱한 표정인 걸 보니 견하준이 본인 무릎에서 내려놨다고 삐친 게 분명했다.
“아니? 카이사르 지금 굉장히 기분 좋아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야? 골골송 부르고 있잖아. 저거 기분 좋을 때만 나오는 거야.”
“달려들겠다고 시동 거는 의사 표시가 아니고?”
“그건 어제 카이사르가 너한테 보여줬잖아.”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복종의 자세만 기억나지 공격 의사 표시는 기억나지 않았다.
“대체 얘는 왜 이 집 가장인 나랑 자기 가족인 예현이 형 말까지 캣무시하면서 비견하준 차별을 하고 있는 거야?”
“목소리 때문이 아닐까요? 카이사르도 음색좋아냥이었던거죠.”
“원래 고양이는 차분하고 본인한테 관심 없어서 본인을 귀찮게 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해. 물론 나는 예외지만. 그치, 카이사르.”
헤벌쭉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는 서예현의 말에 카이사르는 서예현의 손길을 피해 머리를 견하준의 허벅지에 착 붙였다.
아닌 것 같은데. 서예현도 그냥 캣무시 대상인 거 같은데. 서예현 혼자만의 짝사랑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카이사르가 하준이 형을 새로운 집사로 간택한 것 같은데여.”
“그럴 리 없어. 카이사르가 늦바람이 났을 리가 없어. 나와 함께한 세월을 카이사르가 무시할 리 없다고.”
“이든이 형처럼 비견하준 차별을 하고 있잖아요.”
“아니라니까? 내가 보여줄게. 자, 카이사르. 밥 먹자.”
서예현이 밥으로 유혹하자 카이사르가 드디어 견하준의 허벅지 옆에서 몸을 떼서 서예현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그 틈에 견하준이 바지에 묻은 고양이 털을 잽싸게 털었다.
“그치, 카이사르으. 아무리 하준이가 좋아도 밥 챙겨 주는 사람은 오빠밖에 없지, 응?”
서예현이 사료와 물을 각각 그릇에다가 부어 주며 헤실거리는 얼굴로 말끝을 잔뜩 늘리고 있는 걸 듣고 있자니 속이 영 안 좋아졌다.
저건 서예현을 더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밥을 제일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숙소 식구가 하나 더 늘었지만, 연말 시상식 시즌인 만큼 언제까지나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우리는 식사 중인 카이사르를 숙소에 두고 연습실로 향했다.
“전에 고양이 너튜브 봤는데요, 막 식탁에 점프해서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거 떨어뜨리고 그랬거든요. 혹시 카이사르도 그러는 건 아니겠죠?”
“안 그래. 우리 카이사르가 얼마나 얌전한데.”
하지만 이제 다들 서예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토록 사랑스럽고 귀여운 고양이라고 서예현이 염불 외우던 카이사르의 실체를 눈앞에서 마주했는데 콩깍지 낀 게 분명한 저 말을 믿겠는가.
“쉬는 시간 최소화해서 연습 빡 끝내고 오늘은 좀 일찍 숙소 들어가자.”
몸을 풀며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거렸다. 서예현이 제일 의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번 연말 시상식 무대는 김도빈의 댄스 브레이크 파트가 들어간 만큼 곡에도 편곡이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그 댄브 파트 전후로 동선과 안무가 살짝씩 바뀌었다. 그거 위주로 연습을 진행했다.
우리의 솔로 무대를 부러워하던 김도빈은 본인이 온전히 무대에서 캐리해야 하는 솔로 파트가 생기자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 날아다녔다.
그리고 서예현은…
“아, 형! 카드 좀 잘 좀 펼쳐 봐! 쫙!”
“여기에서 더 펼치면 떨어진다고!”
“그렇게 소심하게 펼치면 모양새가 안 나잖아. 떨어져도 괜찮으니까 팍 펼쳐, 팍. 어차피 스페이드 A만 내가 뽑을 수 있으면 되니까.”
내 솔로 무대에 세우기로 결정 났다. 서예현이 보컬보다 랩을 더 잘했기에 선택지가 사실상 하나밖에 없었다.
내 솔로곡인 만큼 난도가 제법 있어서 많은 파트는 못 맡기고 에서 으로 넘어가는 파트의 듀엣 퍼포먼스와 도입부를 맡겼다.
무대 피처링 버전도 선보이고 싶었으나, 그 버전은 우리한테 배정된 무대 시간이 좀 적은 시상식에서 내 솔로 무대 한 곡을 날리고 맡기로 했다.
솔로 무대가 없는 김도빈과 서예현이 카이사르 저녁을 챙겨 준다고 먼저 숙소로 가고, 남은 셋은 솔로 무대 연습에 매진했다.
숙소 꼴이 궁금했기에 휴식 시간을 틈타 휴대폰을 확인했다.
[김도빈
형형형 카이사르가 형 방에서 안 나오는데요 예현이 형이 유…②]
[케이제이
연호가 산업스파이 있는 거 아니냐고 난리치는데 얼마나 찔리…②]
[최형진
야 나 솔로곡 디티비콘에서 공개 ㄱ? 니가 준 비트로 만들었…①]
[지원이형
이든아 내일 작업실 공유 좀 가능하냐? 내 작업실 보일러 고…①]
연습하는 사이에 문자가 제법 쌓여 있었다. 제일 초반에 왔던 문자부터 신속하게 확인해 보았다.
지원이 형은 작업실 보일러가 고장 나서 나한테 급히 SOS를 친 모양이다. 이 날씨에 보일러 고장난 상태에서 작업실에 박혀 있기 쉽지 않지.
바로 승낙의 답장을 보냈다. 나도 지원이 형한테 도움받은 게 많으니까 이렇게 상부상조하는 거 아니겠는가.
최형진 얘는 무슨 이런 것까지 나한테 물어보고 난리냐. 내 손 떠났으니까 자기 비트지. 내가 그런 것까지 결정해 줘야 하냐고.
케이제이의 문자를 보니까 아무래도 차연호가 LnL에 산업 스파이를 꽂은 전적이 있는 건 확실한 모양이다. 원래 사람은 본인이 했던 일을 남도 했으리라고 의심하는 법이다.
어쩌다 보니 겹친 모양이라고 담담하게 보낸 문자를 보면 아득바득 나를 긁으려고 환장하는 차연호와 달리 투지라고는 딱히 없어 보였다.
넹글 돌아 보였던 회귀 전과 달리 제법 정상인 같았다는 소리다.
표절 폭로 건이 터지지 않은 것도 케이제이의 현 정신 상태에 제법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하긴, 서른 살 나도 그렇게 멘탈이 깨져서 수면제랑 술을 함께 처먹고 C형 간염 위험 조까고 타투를 온몸에 박아 넣는 미친 짓을 저질렀는데.
‘신월에게 복수하려면, 케이제이의 회귀 전 과거 최후만큼 확실한 명분도 없을 텐데. 그렇다고 그 망할 과거를 알려 줄 수도 없고.’
믿어 줄지도 미지수인 데다가, 차연호의 협조가 없으면 그게 진짜 있었던 과거라는 걸 케이제이에게 납득시키기도 쉽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마지막, 김도빈의 문자를 보고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아, 돌겠네! 이놈의 고양이는 비견하준 차별하고 즈그 오빠 서예현 있는데 왜 대체 내 침대만 고집하는 거야?”
숙소는 멀쩡하지만, 서예현이 유인해 봐도 카이사르가 내 침대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질 않는다는 문자였다.
“하준이 형 편하게 자라고 형 침대에서 자는 거 아니에요? 뭔가 카이사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아요. 형도 만약 방이 두 개고 예현이 형이랑 하준이 형이랑 이렇게 셋이 자야 한다면 하준이 형한테 독방 주고 예현이 형이랑 둘이 잘 거잖아요.”
“뭐라고? 고양이가 비견하준 차별을 그렇게 심화적으로 하고 있는 거라고?”
“그냥 이든이 네가 더 좋아서 그런 거 아니야? 나는 그냥 예현이 형 말대로 자기를 안 건드리니까 붙어 있고 싶어 하는 거고.”
“그런가?”
견하준의 말에 설득되어 숙소로 가자마자 카이사르가 정중앙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내 침대에 풀썩 누워 카이사르한테 얼굴을 들이밀었다.
“짜식, 이렇게 매일 밤마다 같이 자고 싶을 정도로 그렇게 내가 좋았냐?”
카이사르의 앞발이 내 얼굴을 후려쳤다. 아닌가 보다.
* * *
벌써 사흘 차.
카이사르와의 동거도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견하준과 붙어있는 걸 선호하면서도 잠은 꼭 내 방, 내 침대 한가운데에서 잤다.
이틀 차 밤에 버티다 못해 숙면 중이던 서예현의 침대 위에 올려놓고 문까지 꽉 닫고 나왔는데, 이 크래이지 캣이 내 방문을 열고 위풍당당하게 들어오더라.
대체 어떻게 열었던 건가 싶었는데, 덩치가 크니까 두 발로 서면 문고리까지 앞발이 닿더라. 그리고 뛰어올라서 체중을 실어서 열던데, 내가 뭘 본 건가 싶었다.
포도는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할 묘기였다. 일단 포도는 좀 짧아서 앞발이 문고리에 안 닿으니까.
서예현의 찬양 멘트 중 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라는 말은 몰라도 똑똑한 고양이라는 말은 맞는 것 같았다.
“DTB 콘에서 신을 신발이나 골라 볼까.”
혼잣말을 흥얼거리며 한정판 신발 박스들을 꺼내 그 상자 중 하나를 잠시 오픈하여 신발을 확인하는 틈을 타, 카이사르가 비어 있던 신발 상자에 쑥 들어갔다.
“야, 나와.”
카이사르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신발 상자에 꽉 차게 들어앉아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딱 봐도 네 덩치에 비해서 턱없이 좁은 곳에 왜 꾸역꾸역 들어가 있냐고. 네 덩치를 생각해라, 좀.”
투덜거리다가 반사적으로 서예현이 있는지를 살폈다.
서예현이 들었으면 우리 작고 귀여운 카이사르한테 무슨 망발이냐고 펄쩍펄쩍 뛰어 댔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카이사르는 덩치가 컸다. 우리집 포도보다 더 컸다. 심지어 우리집 포도는 수컷에다가, 털빨이 있는데도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잠깐 본가에서 포도를 데려와서 서예현의 내새끼작아병을 고쳐 주고 싶었지만 우리 작고 연약한 포도가 카이사르와 대면하면 일방적으로 쥐어 터질 것 같아서 포기했다.
나도 줫터지고 있는데 포도까지 줫터지면 우리 집이 뭐가 되겠는가.
“신발 다시 넣어야 한다고. 빨리 나오라고.”
어쩔 수 없이 들어 올려서 꺼내려고 하면 눈을 모로 뜬 채로 하악질인가 협박질인가를 시도했다.
“그래, 딜을 하자는 소리지? 짜식, 협상의 자세를 갖출 줄 아네. 큰 박스 가져오면 나오는 거다?”
푸짐하게 신발 상자에 담긴 채로 카이사르가 입을 쩍 벌렸다.
“얌마, 사람이 칭찬을 해 주는데 면전에 대고 하품하는 건 무슨 예의냐.”
들은 척 만 척하며 태평하기 그지없게 앞발을 핥는 모습에 내 기운이 다 깎여, 터덜터덜 방 밖으로 나와서 서예현에게 물었다.
“박스 큰 거 없냐? 완전 큰 거? 카이사르 들어가서 놀기 딱 좋은 그런 박스 말이야.”
“우리 카이사르는 큰 박스 별로 안 좋아하고 작은 박스 좋아해.”
덩치가 산만 한데 작은 박스를 좋아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면 작은 박스 좀 가져와 봐. 신발 다시 넣어놔야 하는데, 카이사르가 지금 내 한정판 신발 상자에 떡하니 들어가서 안 나온다니까.”
“세탁실에 대야는 있는데.”
“대야든 택배 박스든 좀 가져와 봐. 내 신발 넣어놔야 한다고.”
“그러면 이 틈을 타서 실험해 보는 거 어때요? 대야 두 개에 이든이 형 옷이랑 하준이 형 옷 깔아 놓고 어느 대야를 선택하는지 봐 보는 거죠. 그러면 카이사르의 진짜 원픽을 알 수 있잖아요.”
똑같이 빛나는 다섯 시선이 교차했다. 아무래도 다들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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