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74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73화
기쁨에 차서 외치다가 혹시 서예현이 눈치챌까 봐 목소리를 슬그머니 낮췄다.
나름 서예현의 감동을 이끌어 내기 위한 프로젝트인 만큼, 최대한 생일 전까지는 서예현한테 비밀로 하는 편이 좋았다.
그래야지 서예현에게 우리의 노고를 한 20배 정도 뻥튀기시켜서 생색을 낼 수 있다. 본인이 과정을 알아 버리면 아무래도 생색내기가 좀 힘들지.
서예현은 매해 생일마다 우리가 이렇게 본인 생일 서프라이즈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려나 모르겠군.
물론 지금은 구상뿐이어서 실제로 구현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생일 전까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제8회 우승자니까.
[용철이형- 디티비에서만 머리 굴리는줄 알았더니 이런 데 나가서도 굴려서 다행이다 그런데 내가 풀영상 찾아보니까 귀신같이 머리쓰는 부분만 딱 보내놨더라? 문짝 부수려고 하는 부분은 왜 패스하냐 엉? 그래도 방송 덕분에 네가 디티비 의상 같은 이상한 데에만 머리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다닐 수는 있겠다] 오후 3:14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게 감상 및 칭찬 문자를 보낸 용철이 형 덕분에 자신감에 더욱 불이 붙었다.
그리고 최형진한테도 메시지가 와 있었다.
또 다시 내 stan으로 몰린 게 억울했던지 최형진은 이전 화들을 본방 사수한 흔적이 보이는 인별 스토리 캡쳐를 싹 보내 놨더라.
내가 왜 최형진이 범인 추론하고 틀린 걸 엄청난 반전이라고 놀라는 글자 한 바가지 소감문을 봐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누가 애청자인 거 안 믿어 준다고 했냐고.
[ㅇㅇ] 오후 3:15
쓱 훑고 가볍게 답장만 보내 줬다. 나한테까지 내 어둠의 1호팬으로 인정받은 놈이 왜 억울해하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자 이제야 나를 향한 막내 라인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 놈은 저 형이 또 무슨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를 생각했을까 걱정 반 기대 반이 담긴 익숙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고, 다른 한 놈은 내가 또 무슨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냈을까 잔뜩 기대하는 반짝이는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뭔데요?”
“일단 얼음 케이크는 아니다.”
그 말에 류재희의 눈에 담긴 감정이 걱정 7 기대 3 정도로 변했다. 아니, 수치가 반대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걱정이 더 많아진 건데?
류재희의 감정 수치를 바꿔 주기 위해 저칼로리 케이크 재료를 공개했다.
“어떠냐?”
“확실히 칼로리도 낮고 과거의 추억도 떠올릴 수 있긴 한데… 이걸로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요?”
“케이크 모양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재료 사서 생일 전까지 예현이 형 눈 피해서 몰래 해 봐야지.”
서예현이 없을 때 당장 시도해 보기로 했다.
근처 마트에서 재료를 사와서 위풍당당하게 소매를 걷고 재료를 썰어 집에 있던 것과 함께 조화해서 케이크 모양으로 잘 쌓아 보았다.
“이건 사람 먹는 케이크가 아니라… 엄…”
“약간 강아지 케이크 같지 않아요?”
류재희가 차마 못다 한 말을 김도빈이 마무리해 주었다.
“이건 포도도 안 먹게 생겼는데.”
이건 포도한테 주기도 미안할 수준이었다. 개도 안 먹을 케이크를 내놓으면 불화설이 나지 않을까.
“일단 촛불은 꽂히겠네. 썰리기도 하겠고, 이빨 나갈 일도 없고. 얼음 케이크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네. 안 그러냐?”
셀프 위로인지 세뇌인지를 해 봤지만 그렇다고 개한테 줘도 안 먹을 케이크가 나아지진 않았다. 머릿속에서 생각했던 이미지는 이게 아니었는데.
“뭐가 문제지? 예현 형이 좋아할 만한 것들은 다 들어갔는데 왜 이렇게 그지 같은 거지?”
진지한 고찰을 하고 있자 디저트 러버 견하준이 옆에서 훈수를 두었다.
“정성이 덜 들어가서 그래. 크림을 이렇게 발라 놓으니까 지저분해 보이잖아.”
“정성은 이 정도면 충분히 들어갔지 않냐?”
“양상추 반 통을 통째로 위에 올린 게 정성이 덜 들어간 것이 아니면 뭘까?”
“솔직히 맞는 말이긴 해요. 제가 만드는 시간 재 봤는데 5분도 안 걸렸어요.”
옆에서 류재희가 견하준의 훈수를 거들었다.
“이럴 줄 알고, 제가 너튜브로 다이어트 케이크를 찾아 보다가 비주얼적으로 매우 괜찮아 보이는 걸 발견했거든요. 이거 어때요?”
류재희가 당당히 내민 너튜브 영상과 내가 생각한 재료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드디어 이 재료들을 활용해 정성을 들여 케이크를 만드는 법을 떠올렸다.
이 방법이라면 크림도 지금처럼 그지 같이 발라지는 게 아니라 깔끔하게 발라질 것이다. 이름하여, 서프라이즈 케이크였다.
“형, 이것들을 좀 잃으시면 안 돼요? 이걸 왜 굳이 넣어야 하냐고요!”
“아, 이게 핵심이라고! 예현이 형이 좋아하는 걸로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야!”
실패한 케이크는 그날 저녁으로 활용했다.
“너희들이 웬일이야? 활동 끝났는데도 이런 걸 자진해서 먹고? 지금 크리스마스 송 생각해서 자율적 다이어트를 하는 거야? 세상에, 너희 다 정신 차렸구나.”
기뻐하는 서예현한테 차마 진실을 말하지는 못하고 그저 웃었다.
* * *
음원 녹음 현장.
“또 녹음실에 귀신 들어온 거 아니야?”
녹음 부스 너머로 자애롭게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서예현이 녹음 시작도 전에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귀신이라니, 무슨 소리예요, 형. 평범한 악귀잖아요.”
내 옆에서 김도빈이 서예현을 안심시켰다.
“지금 카메라로 촬영 중인데 괜히 이상한 소리 해서 팬들 겁먹게 하지 말자.”
“그래, 이든이 표정은 항상 저랬어.”
“하준아, 그건 너만 볼 수 있는 표정이라니까. 쟤가 나한테까지 그런 표정을 짓는 건 뭐가 단단히 잘못된 거라고.”
[케이제이- 저희 크리스마스 시즌 송 준비 때문에]
[케이제이- 만나는 날짜를 조금 늦추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오전 8:31
대외비는 개나 준 산업스파이급 케이제이의 문자를 보니 승부욕이 차올랐다.
알테어도 크리스마스 시즌 송을 들고 온단 말이지? 우리 그룹에 차연호 상위 호환 음색과 상위 호환 실력 보컬과 상위 호환 비주얼이 있는데 지면 또 자존심이 상하지.
그리고 알테어에는 더블럭키세븐 귀요미도 없고 말이다.
나를 케이제이와 비교하기에는 나 자신한테 미안해서 비교하지 않기로 했다.
“싱잉 랩 느낌 살려서 다시. 쓸쓸한 느낌이 살아야 한다니까?”
자애로운 미소를 걷어치우고 평소처럼 빡세게 잡자 서예현이 오히려 안도한 표정으로 녹음에 임했다.
“자, 이제 막내 솔로 버전 녹음 가자.”
내 말에 류재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잔뜩 들뜬 걸음걸이로 녹음 부스로 들어갔다.
단체곡이 된 의 파트를 나눌 때도 류재희가 하고 싶다는 파트로 우선 배분하긴 했지만, 류재희가 본인 파트를 정하는 데에 제법 고심하던 모습에서 류재희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배려와 양보가 당연한 삶이었던 막내라서 더 눈에 밟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처음에는 류재희의 솔로곡으로 선물했던 곡인 만큼, 류재희한테도 온전히 이 곡을 안겨 주고 싶어서 류재희 솔로곡 버전 발매도 제안했다.
“막내야, 너무 신났다. 들뜬 감정을 좀 가라앉혀 봐라.”
피식 웃으며 Inst를 끊고, 디렉팅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류재희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용케 설레는 감정을 보컬로 잘 표현해 냈다.
곡이 맞는 주인을 찾아갔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괜히 뿌듯했다.
뮤직비디오는 때처럼 동물 잠옷을 입고 촬영했다.
나는 호랑이 잠옷을 입고 싶었지만, 기분 좋게 크리스마스 시즌 팬송을 들으러 온 데이드림이 DTB 일수 호랑이와 공익 광고 도박 협박 호랑이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고 싶냐는 류재희의 으름장에 어쩔 수 없이 고양이 동물 잠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저 다람쥐도 잘 어울리지 않아요? 제 모에화 동물 햄스터 말고 다람쥐로 바꿀까요?”
그때랑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햄스터가 아닌 다람쥐 잠옷을 입은 류재희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내 앞에서 빙글 돌았다.
“덩치만 보면 넌 청솔모야, 인마.”
그런 류재희를 향해 냉정한 사실을 말해 주었다.
견하준도 어게인 토끼 잠옷을 피하지 못했다. 공항 패션은 그토록 잘 피하더니, 5년 전 방송으로 인해 토끼 잠옷을 입게 되다니. 안타깝게 되었다. 고양이 잠옷이 토끼 잠옷보다는 낫지, 암암.
지옥에서 온 케이크를 탄생시켰던 그때와 달리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게 뮤직비디오 이 한 컷의 취지였지만, 짤주로 케이크 위에 글자를 쓰는 서예현의 손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참고로 지옥에서 온 케이크 짤은 아직도 인터넷에 망령처럼 떠돌아 다니더라. 마주하면 한 번씩 흠칫했다.
Merry를 겨운 완성시킨 서예현이 밑에 C를 쓰다 말고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나 지금 이거 그대로 들고 가서 도로시 사장님께 그냥 맡기고 싶어.”
우리의 기념일 케이크를 담당하는 도로시 베이커리 사장님은 거의 LnL 초창기 직원 수준의 내적 친밀감을 유지 중이었다.
“글자 좀 잘 좀 써 봐, 형. 우리가 이렇게 생크림을 매끄럽게 잘 발라 놨는데, 어?”
우리도 지금 본인 생일 케이크를 도로시 사장님께 외주 맡기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고 열심히 실험을 하고 있건만.
정석적인 케이크라면 기꺼이 외주를 맡겼겠지만 이런 실험적인 케이크를 외주 맡길 수는 없었다. 정상적인 베이킹 과정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더더욱.
* * *
드디어 12월 17일.
서예현의 생일 기념 라이브 방송.
“뭐야? 왜 케이크 상자가 두 개야? 케이크를 두 개나 먹어?”
도로시에서 주문 제작한 밤비 케이크를 꺼낸 서예현이 그 옆에 놓인 케이크 박스를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얼굴로 물었다.
“칼로리 걱정으로 본인 생일 케이크도 양껏 먹지 못하는 예현이 형을 위해 저희가! 저칼로리 케이크를 만들어 왔습니다!”
“와-”
류재희가 말리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서예현을 힐긋거리며 박수를 쳤다. 아직 열리지 않은 케이크 상자를 보는 서예현의 눈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왜 이래, 형. 진짜로 저칼로리 맞다니까? 우리가 설마 최면이라도 걸고 형한테 고칼로리 케이크 먹이겠어?”
드디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서예현 취향을 듬뿍 담은 저칼로리 케이크가 세상에 공개되었다.
“뭐야, 그냥 생크림 케이크잖아?”
프렌차이즈 베이커리의 순우유 케이크 비주얼의 멀끔한 케이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냥 생크림 케이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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