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73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72화
견하준이 드라마 관련 스케줄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건, 무언가를 먹는다는 걸 서예현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시간이었기에 다음 날 오전에 견하준은 제 몫의 디저트를 볼 수 있었다.
“음, 잘 사 왔네. 이제 ‘어이, 견씨’라고 부른 걸 잊을 수 있을 거 같아.”
견하준은 디저트를 받고 나를 기꺼이 용서해 주었다. 금지어 피해 보려고 어이견씨라고 한번 불렀다가 이게 무슨 꼴이냐.
심지어 더 억울한 건 ‘준아’가 금지어도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냥 견하준을 평소처럼 편하게 불렀어도 아무 일 없이 본선까지 무사히 진출했을 거라고.
그래도 뭐, 이참에 친구한테 맛있는 거 사 줬다고 생각하련다. 내가 견하준한테 얻어먹은 밥이 얼마인데.
“오, 많이 안 달고 맛있는데요? 역시 디저트에 진심인 하준이 형 픽.”
한국인이 디저트에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보내며 막내 라인이 연신 포크질을 했다.
견하준이 그런 막내 라인을 향해 제 몫으로 내가 미리 떼어 준 케이크 조각을 쓱 밀어주었다. 흐뭇한 미소는 덤이었다.
생토노레, 딸기 프레지에, 몽블랑, 망고무스 에그조티크, 딸기 조각케이크, 블루베리 타르트.
초콜릿 디저트는 서예현이 옆에서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어서 택하지 못했다.
오롯이 견하준의 취향에만 맞추어 쓸어 온 디저트들이었지만 막내 라인은 불평 한마디 없이 맛있게 먹어 치웠다.
아무거나 잘 먹는 건 류재희랑 김도빈도 포함인데 오직 나한테만 누렁이 밈을 뒤집어 씌우다니. 심지어 김도빈은 머리 색깔도 딱 누렁인데.
물론 김도빈은 야채류를 조금 편식하는 경향이 있긴 했으나, 야채 찬양 칼로리 광인에게 편식을 교정당하고 난 후에는 야채도 먹는 누렁이로 재탄생했다. 그래도 여전히 야채 비빔밥은 싫어하더라.
서예현도 입맛에 맞긴 했는지 평소보다 한 입 더 먹을 정도였다.
자꾸만 포크를 내려놓는 손이 움찔거리는 걸 보면 본인도 저런 걸 싫어하진 않는 것 같은데, 참 독하다 싶었다.
“여기 조각 케이크 짱 맛있는데 예현이 형 생일에 여기서 홀 케이크 사서 먹으면 안 돼요?”
“소속사 측에서 도로시에 레터링케이크 주문 제작할 거 뻔한데 케이크 두 개를 굳이 왜…?”
“형도 맛있게 먹는 거 같아서 말한 건데 그렇게 케이크 먹고 싶어서 형 생일 팔아 가면서까지 수 쓰는 놈으로 몰아가면 더블럭키세븐귀요미는 서운해요, 흑흑.”
김도빈이 눈물을 훔치며 우는 척을 했다. 물론 서예현한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았단다, 도빈아. 마음 속 생각을 말해 버린 모양이구나.”
“와, 자기 입으로 더블럭키세븐귀요미라고 하고 있어.”
예전에는 오직 나한테만 매정하더니 이제는 그 범위가 김도빈까지 늘었다.
서예현 생일이 언급되자 자연스럽게 화제도 곧 다가오는 서예현의 생일로 넘어갔다.
“지난번 예현이 형 생일 때 재미있었죠. 이번에도 그런 서프라이즈 안 하나?”
가볍게 키득거리는 류재희의 말에 서예현이 진저리치며 손을 내저었다.
“나는 식겁했거든? 내가 지금 악몽 꾸고 있는 줄 알고 콘서트 무대 위에서 셀프 뺨 때리기 할 뻔했거든? 서프라이즈 규모를 그렇게 크게 하는 놈들이 어디 있어!”
“재미없었다는 소리는 안 하네.”
부정하지는 않는 걸 보니 본인도 내심 재미있긴 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서예현이 개인 스케줄로 숙소를 비운 틈을 타서, 서예현을 위한 생일케이크 구상 회의를 열었다.
네 명만 진행한 회의라서 공식 회의로 카운트되진 않았다.
“칼로리가 0에 가까운 케이크는 없나?”
“벌거벗은 임금님 메타가 아니라면 불가능할 거 같은데요. 허공 가리키면서 이곳에 0kcal 케이크가 있다고 예현이 형을 다 같이 속이지 않는 이상은…”
류재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색다른 관점을 선사해주었다. 서프라이즈 어게인 괜찮은데?
김도빈도 눈을 빛내며 의견을 제시했다.
“물을 얼려서 얼음으로 제로 케이크 만들기 어때요? 그러면 예현이 형도 기뻐하면서 양껏 먹을 것 같은데.”
“그러면 촛불은 어쩌고?”
핀트 나간 질문을 던지는 견하준의 말을 류재희가 꼬집었다.
“하준이 형, 지금 촛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맞아, 준아. 촛불보다는 컷팅이 더 문제지. 촛불이야 만드는 단계에서 넣고 얼리면 되는데, 케이크가 썰리기는 해야 할 거 아니야. 톱 정도는 가져와서 썰게 생겼잖아.”
류재희가 방금까지 견하준을 보던 얼굴 그대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래,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리고 얼음 씹으면 이빨 나간다. 이 나이에 다 같이 손잡고 치과 가서 단체 임플란트 할 일 있냐?”
0kcal 얼음케이크를 씹어먹다가 그렇게 됐다고 밝힐 수가 있겠냐고.
류재희의 표정이 여전한 걸 보니 아무래도 나랑 류재희의 생각이 달랐던 모양이다.
“이거 말고 또 뭐가 문젠데? 녹여서 먹게? 그러면 이빨 나갈 일은 없긴 하겠다. 그런데 녹여서 먹으면 그냥 물 마시는 거 아니냐?”
“그게 아니고요, 저칼로리 케이크를 물을 얼려서 얼음으로 만드는 건 너무 뻔해서 정성이 없어 보여요.”
그렇지, 정성 중요하지.
“그냥 외주 맡길까? 한 열 군데에다가 의뢰를 넣어 보면 누군가는 저칼로리 케이크를 만들어 주지 않을까?”
이게 내 정성의 최대치였다.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 놓고 만드는 걸 외주 맡겨야죠. 아이디어 내는 것까지 떠넘기면서 맨땅에 헤딩하라고 하면 어떡해요.”
“지금까지 너한테 그러고 맡기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그건 저니까 가능했던 거고요.”
류재희가 당당하게 대꾸하며 비죽 웃었다.
“그래, 익숙하게 너한테 맡기련다. 아이디어 좀 내 봐라.”
“ 제8회 최종 우승자가 이래도 되는 거예요? 최종 우승자면 이 정도 아이디어쯤은 뚝딱 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를 조종해서 내가 머리를 쓰도록 유도하기 위해 류재희가 저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고 나도 대비용으로 미리 만들어놓은 대꾸 멘트를 내뱉었다.
“최종 우승자가 만능이냐, 어?”
“형이 말하고 다니는 것만 보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인 것 같은데요.”
치열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었다. 제8회 최종 우승자답게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적재적소에 외주를 맡기는 것도 능력이란다, 막내야.”
됐다! 카운터다!
승리를 직감하고 속으로 실실 웃고 있자 류재희가 카운터 훅을 날렸다.
“외주 줄 줄 아는 능력 말고, 아이디어 뚝딱 내는 능력도 보여 줘야지 이제 그 자랑 받아 줄 거예요, 형.”
아직 일주일도 안 됐는데 제8회 최종 우승자 자랑질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가 어떻게든 저칼로리 케이크 만들어서 서예현 생일에 기필코 들고 온다.
* * *
DTB 6 콘서트 일정이 잡혔다.
이게 DTB 시리즈가 피워 올리는 마지막 불꽃이라는 걸 예감하기라도 한 건지, 올해 DTB 시즌 6 콘서트장은 작년보다 수용 인원이 더 큰 곳으로 잡았더라.
이번 주 안으로 레코딩에 들어가야 하는 편곡 버전 최종 점검도 용철이 형 작업실에서 할 겸, 파일을 챙겨 용철이 형의 작업실로 향했다.
용철이 형을 보자마자 “왜, 내가 제8회 최종 우승자처럼 보여?”를 시전했다.
용철이 형의 얼굴이 저게 뭔 소리냐고 어리둥절한 걸 보아하니 안 봤나 보다. 내 끝내주는 활약을 안 봤다니.
세뱃돈에 눈이 멀어 친할아버지만 신경 쓰고 용철이 형을 잊은 것에 반성하며, 당장 링크부터 보내 줬다.
“왜 저래?”
뒤에서 들려오는 질색 어린 목소리가 영 익숙해서 휙 고개를 돌리자 최형진이 떡하니 소파에 자리 잡고 있었다.
“뭐냐?”
영 아니꼬운 기분에 눈썹을 치키며 묻자 용철이 형이 최형진 대신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너 온다니까 불렀지. 너네 DTB 곡 같이 부른 것도 있으니까 그거 셋리스트에 넣을지나 의논하라고. 귀찮게 따로 시간 내서 연락하지 말고.”
그러고 보니까 최형진이 현재 용철이 형이 속한 레이블에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다.
용철이 형은 나름 내 시간을 절약해 주려는 배려였겠지만 힙합씬에서 멀어진 내가 용철이 형의 가장 친한 동생 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 같아서 기분이 영 그랬다.
거리감으로 정하지 말고 사람 됨됨이를 보고 가장 친한 동생을 정하란 말이야.
속으로 투덜거리면서도 입으로는 착실하게 용철이 형의 말을 따라 최형진과 DTB 6 콘서트 세트리스트를 조율했다.
“야, 형진아. 너 이번 DTB콘에서 부를 거냐?”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세미파이널 경연곡인데 그거 안 부르면 무슨 곡을 부르겠냐?”
“네 솔로곡, 짜식아.”
참고로 은 내가 피처링으로 참가해서 상대 피처링 차연호를 압살한 최형진의 세미파이널 경연곡이었다.
이 새끼 이거 부를 줄 알았다.
“그래도 명색이 DTB 콘인데 DTB 경연곡은 불러줘야 하지 않겠어? 팀 프로듀서 무대는 <낙서>랑 로 가?”
“에이, 또 그거 부르면 너무 우려먹기 같잖아. 형 솔로곡 중에서 내가 피처링한 거랑, 피처링 파트 있는 형 곡으로 가. 어차피 피처링 파트는 내가 내 스타일로 바꿔서 소화할 수 있으니까.”
우리의 토의를 듣다가 끼어든 용철이 형과도 함께 무대에서 부를 곡을 정하고, 용철이 형의 작업이 끝날 동안 기다리다가 아이디어 외주 주기를 시도했다.
“둘 다 혹시 주변에 극단적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 없어? 뭐 하나 먹을 때마다 칼로리를 따지는 수준으로 칼로리에 미친 사람은?”
최형진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그런 사람이 존재하긴 하냐?”
놀랍게도 존재한다.
프아조장돌으로 시사 프로에도 진출했다.
용철이 형이 내가 작업실로 들어오자마자 뱉었던 자랑을 고스란히 돌려주었다. 아주 류재희가 따로 없었다.
“ 제8회 최종 우승자답게 네가 생각해 봐라.”
“을 본 사람만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그럼 나는 해도 되는 건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코 뱉은 최형진이 나랑 용철이 형의 시선을 동시에 받자마자 원래 애청자였다고 왁왁거렸다.
흠, 그렇구나.
그렇게 용철이 형을 만나고도 별다른 소득 없이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왔다.
“형, 이거 봐 봐요.”
“뭔데?”
휴대폰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터트리던 막내 라인이 내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저희 뮤비 때문에 마이돌 메이킹 과정 보다가 지금 추억여행 쫙 하고 있는데, 이거 진짜 오랜만이지 않아요?”
휴대폰 화면에 나오고 있는 추억의 예능을 보자,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저칼로리 케이크 재료 생각났다!”
오우, 이거까지 초심 메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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