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672
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71화
데뷔 초 당시, 우리는 <마이돌 관찰카메라>를 촬영하며 그 에피 중 하나로 크리스마스 송 메이킹 과정을 찍은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곡 발매도 하고 말이다.
그때 세상에 내놓았던 곡인 이후로의 크리스마스 곡은 딱히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크리스마스 송이 또 안 나오냐는 제법 많은 문의를 받았기도 하고, 현재 데뷔 다큐부터 시작해서 과거 재현 콘셉트를 이어가는 중인 만큼, 5년 전처럼 크리스마스 송을 메이킹 과정과 함께 내놓기로 했다.
마침 또 12월이 머지않았고, 우리한테는 아직 발매하지 않은 크리스마스 송이 하나 있었다.
내가 류재희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던 곡, 말이다.
류재희 솔로에 맞추어 작곡했던 그 곡은 류재희가 팬들을 위해 단체곡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이후로 5인 버전으로 편곡되어 내 하드디스크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다 제가 우리 그룹을 위해 저와 이든이 형만의 연금곡이 될 수도 있었던 곡을 양보한 덕분이죠.”
콧대가 높아진 류재희가 잔뜩 생색을 냈다.
류재희 덕분에 내가 작업실에 틀어박혀 밤샘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된 건 사실이었으므로 류재희가 기세등등해 할 기회 정도는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면 뮤비는 그때처럼 케이크 만드는 과정 찍을까요? 동물 잠옷 입은 채로 선물 교환하고?”
잔뜩 신이 난 김도빈이 마구 던지는 의견에 고개를 짧게 저어 반대를 표했다.
“그때는 우리가 쌩신인이고 방송 촬영 중이라 선택권이 없어서 그런 무난하고도 지루하고 뻔하고 개성이라고는 없는 그런 크리스마스 뮤비를 연출했다지만, 지금의 우리는 다르지.”
“그러면 형은 뭘 하고 싶은데요?”
“악몽의 크리스마스. 찰스 디킨스 책 <크리스마스 캐롤>을 모티브로 해서 과거, 현재, 미래의 세 파트로 시네마틱한 컨셉을 연출하는 거야.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을 뒤틀어서 광기와 기괴한 이미지로 재해석을 해서, 배경음으로 깔릴 평온한 와 대비되는 이질감을 느끼도록.”
도리도리도리도리도리도리-
내 열정적인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류재희가 아주 열성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거의 온몸으로 내 아이디어를 거부하는 류재희에게 이유를 묻자 류재희가 진지한 얼굴로 내 어깨를 양손으로 붙들었다.
“우리 팬분들은 크리스마스를 저희끼리 화기애애하게 보내는 그런 걸 보고 싶어 하시지, 광기와 호러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싶어 하진 않는다고요. 가뜩이나 형은 예술병 주의보인데…!”
이런 시즌 송이나 팬송을 기획할 때에는 형 생각보다 자아를 더 빼라고 류재희가 마구 흔들어 댔다. 가장을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 거야, 어?
“왜? 괜찮지 않냐?”
“그런 건 형 나중에 부업으로 영화감독 할 때 찍어요. 팬송 개념으로 내는 뮤직비디오는 안 돼요.”
대신 타협해서 과거, 현재, 미래 파트 중 하나를 넣기로 했다. 단, 레브 활동에 한정하여. 광기와 호러, 이런 거는 넣지 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얼굴로 가만히 옆에 앉아 있던 서예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러면 그때처럼 레코딩 과정 촬영도 할 거야?”
“뮤비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레코딩이 왜 나와?”
맥락 끊는 서예현을 향해 타박을 던지자 서예현이 그 이유를 밝혔다.
“아니, 광기와 기괴함이라고 하니까 그때 네가 카메라 앞이라고 자애로운 미소 지으면서 다정한 목소리를 냈던 게 새삼 생각나서.”
“내가?”
“어, 네가. 마지막에 가서는 본색을 드러내긴 했지만.”
“내애가아?”
내가 몇 달 전도 아니고 실력이 아주 내핵을 뚫고 내려가던 5년 전의 서예현에게 녹음실에서 자애로운 미소와 다정한 목소리를 선사해 줬다고?
내가 음악의 퀄리티를 포기하고 자본주의와 타협했다고?
믿기지 않아 눈을 부릅뜨며 반문하자 서예현이 너튜브 영상을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정말로 디렉팅 마이크 앞에서 자애롭게 미소 짓고 있는 스무 살의 내가 영상 속에 담겨 있었다.
-잠깐만, 다시 가 보자. 소복이 쌓인 눈을 헤치고- 이 부분까진 괜찮았거든? 그런데 그 뒤쪽 음정이 흔들린다.
게다가 서예현한테 이보다 더 부드러울 수 없는 목소리까지.
“굳이 시네마틱한 분위기 연출할 필요 있어? 이런 녹음실 장면만 넣으면 기괴한 뮤비 한 편 뚝딱인데.”
“진짜 기괴한 게 뭔지 보여줘?”
-박자 맞추라고. 다시.
뒤로 갈수록 점점 짧아지는 문장과 딱딱해지는 목소리를 보고 나서야 마음이 편안해졌다.
“형이 꾸준히 음친놈 모먼트를 안 보였으면, 제가 봤을 때 그 영상은 아마 팀 불화설 날 때마다 이든이 형과 예현이 형의 불화설 증명 영상으로 끌올돼도 수백 번은 끌올됐을 걸요.”
바로 [마이돌 관찰카메라]의 레코딩 편임을 알아본 류재희가 혀를 찼다.
“이 영상에서 이든이가 예현이 형만 엄하게 잡았던 게 아니라 도빈이도 같이 잡았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내게 서예현의 폰을 넘겨받아서 당시의 레코딩 현장을 쭉 리마인드한 견하준의 의견에 이번에는 김도빈이 반박했다.
“여기서 예현이 형은 엄하게 잡힌 게 아니죠. 무려 이든이 형의 따스한 피드백을 받았잖아요. 그런데 저를 보세요. 열정적으로 부르려고 노력했음에도 이게 R&B인 줄 아냐고 들들 볶이는 불쌍한 제 모습을…!”
“도빈아, 이게 따스한 피드백으로 보여? 누가 봐도 방송 카메라를 의식한 기괴한 모습이잖아. 너는 적어도 평소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해 주기라도 했잖아.”
알았다, 이 자식들아.
이번 레코딩은 기괴함 없이 개빡세게 갈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라. 너희들이 불러 온 악귀니까 견뎌.
활동 마지막 주 팬싸인회.
“아하하하, 제가 제8회 최종 우승자처럼 보이시는구나.”
대가리에 고양이 귀 헤드셋을 얹고 호탕하게 웃고 있으니, 조금 전 내게 싸인을 받고 서예현에게로 넘어간 팬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힐긋했다.
옆자리에서 공주 티아라를 쓴 채 심혈을 기울여 싸인을 해주던 서예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숙소에서도 맨날 저래요.”
맨날 이러진 않는다. 그냥 생각날 때마다 내뱉을 뿐이다. 서예현 때문에 졸지에 우승자무새가 되어버려 억울했다.
[모에화 동물 중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1. 고양이?⬛ 2. 호랑이? 3. 멧돼지? 4. 고릴라? 5. 곰?]
팬이 내민 포스트잇을 쭉 훑다가 망설임 없이 2번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래도 역시 반도의 기상을 나타내는 호랑이지.
간간이 배우상 얼굴, 더블럭키세븐귀요미, 보컬천재 단어가 들려오는 걸 보니 데이드림이 멤버들을 잘 놀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1년 만에 완전체 컴백인데 활동 너무 빨리 끝나는 거 같아서 아쉬워요.”
“에이, 레브 초심 찾기 프로젝트 아직 안 끝났는데, 벌써 아쉬워하면 저희가 더 아쉽잖아요.”
돌려 돌려 무언가 더 나온다는 스포도 성공했다. 발표될 때까지 추리하는 맛을 데이드림에게 선사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송이라고 대놓고 스포하지는 않았다.
제8회 최종 우승자 보유 팬덤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암암.
레브 초심 찾기 프로젝트는 몰라도 우리집 시스템이 제공하는 윤이든의 초심 되찾기 프로젝트는 아직 안 끝났긴 했다.
지금 기쁘게 만들어야 할 팬 수 2000만인가 채웠나? 3분의 2는 왔다는 게 그래도 마음은 놓게 만들었다.
뭐, 나머지 천만 명은 연예계 은퇴하기 전에는 채우겠지.
원로 가수 선배님들도 한 번씩 붐업되는 걸 보니 불가능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중에 래퍼가 있었던가…?
음방 앵콜 무대는 이제 신인 그룹이랑 비교될 일도 없으니, 안무를 더 빡세게 수정하기 전의 원안 버전으로 보여주었다. 여유로움이 적절히 섞인 버전이었다.
마지막 주 음방 역시 1위를 휩쓸며, 데뷔 초의 향수를 레브와 데이드림에게 다시 한번 불러일으킨 [RE-HI] 활동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렇게 시키지도 않아도 셀프 초심 충전을 하는데, 시스템은 초심도 1만 점을 충전하라, 충전하라. 언어와 제스쳐의 자유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ㄴ]
* * *
활동이 끝나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약속 지키기였다.
견하준한테 디저트 여섯 개를 사다 바친다는 약속을 지키러 견하준이 짚어 준 디저트 카페인지 베이커리인지로 향했다.
의외의 동행자를 달고선 말이다.
정작 디저트를 받을 견하준은 드라마 촬영 준비 때문에 함께하지 못했다.
“대체 형은 왜 따라 오는데? 심심해? 친구 없어? 칼로리 측정 훈련하러 가?”
“걱정돼서 따라간다. 네가 하준이한테 사죄한답시고 홀케이크 여섯 개를 사 오고도 충분히 남으니까. 그래놓고 딱 여섯 개 사 왔는데 뭐가 문제냐고 당당하게 내 억장을 뒤집을 게 뻔해서.”
그렇다.
의외의 동행자는 바로 서예현이었다.
서예현이 말한 홀케이크 이야기는 내가 내심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도 했기에 조금 찔리긴 했다.
“하준이가 뭐 먹고 싶다고 말했어?”
“막내도 먹어야 하니까 체리 들어있는 디저트는 사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데.”
견하준은 누가 별명이 레브의 어머니 아니랄까 봐 홀로 디저트 여섯 개를 독식하지 않고 다 같이 먹는 걸 선택했다.
물론 알러지 유발 요소인 체리를 제외하고 막내 라인의 입맛은 디저트 선택에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서예현이 직원에게 디저트 칼로리를 물어보기 전에 견하준이 좋아할 만한 것들로 재빨리 골랐다.
“혹시 이 중에서 체리 들어간 건 없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꼼꼼히 물어보고, 직원이 디저트를 포장할 동안 케이크를 구경했다. 문득 케이크를 보니 서예현의 생일도 곧임을 깨달았다. 서예현의 생일이 크리스마스보다 더 빠르다는 것도.
홀케이크 하나를 가리키며 서예현한테 물었다.
“형 생일에 이런 케이크 받으면 어떨 것 같아?”
서예현이 아주 미세하게, 옆에 있는 나만 알아볼 수 있게끔 고개를 저었다. 다른 케이크들을 가리켜 봐도 반응은 같았다.
생각해 보니 서예현은 본인 생일 때도 케이크를 반 조각 이상 먹은 기억이 없었다. 곧 다가올 서예현의 생일 기념으로 서예현을 위한 케이크를 계획해 보기로 결심했다.
아무리 그래도 세상에 서예현이 먹을 수 있는 저칼로리 케이크 하나 없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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