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잃은 아이돌을 위한 회귀 백서 646화

댄스팝에 스트릿 감성은 아이돌이라면, 특히 보이 그룹이라면 한 번씩 거치는 장르와 콘셉트였다.

그런 흔해 빠진 콘셉트에, 동시 발매이기까지 하니 그쪽이 우리를 표절하거나 벤치마킹 했을 가능성은 0에 가까웠다.

당장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컴백한 신드롬이면 몰라도, 여러 장르를 아우르는 우리랑 겹친 건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신드롬은 데뷔 때부터 꾸준히 스트릿 감성의 댄스팝을 말아 왔기에 그 장르와 콘셉트가 그 그룹의 근본이라고 주장해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번에는 신드롬이 댄스팝이 아닌 다른 장르로 컴백하며, 남돌 스트릿 댄스팝 삼파전이 되는 꼴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이렇게 라이징 후배 그룹과 활동 콘셉트가 이렇게 완벽하게 겹치면 뭐가 문제냐.

“우리 이번 활동에서 벡스터에게 밀리면 퇴물 소리 듣는 거예요. 벌써 뮤비 비교랑 안무 비교 들어갔어요.”

방금 말했던 것처럼, “레브 비켜!” 상황이 연출되는 게 문제다. 여기에서 밀리면 우리가 꼼짝없이 1군으로 향하는 라이징 신선한 뉴페이스 VXTR의 도약 발판이 되어버린다고.

우리의 체급이 확 커진 것도 부동의 1군이었던 알테어를 음원 차트 순위와 음방에서 이긴 후였지 않은가.

그러니까 우리는 VXTR 후배님들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 활동에서 비교조차 되지 않게 VXTR를 눌러야 했다.

비키라고 온 힘을 다해 밀어도 밀리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줘야 비키라는 소리를 못 하지 않겠는가.

승부욕이 우리 중에서 나 다음으로 강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류재희가 발을 동동 굴리며 보고해 준 현 상황을 듣다가, 대체 얼마나 겹치길래 데이드림이나 류재희나 반응이 이러는 건가 싶어서 바로 너튜브에 검색해서 뮤직비디오를 재생했다.

“얘네 소속사가 디그린이었냐? 확실히 비트랑 뮤비에 대형 기획사의 자본력이 느껴지긴 한다.”

비트에서 소위 말하는 ‘돈 냄새’가 났다. 뮤직비디오도 그래피티, 게릴라 공연 등 우리처럼 스트릿 콘셉트 하면 딱 생각나는 것들로 채워 넣어서 겹치는 요소가 꽤 됐다.

우리가 시작 부분에 뮤직비디오 후속 떡밥이라고 변주를 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게 빠졌다면 더 비슷하게 느껴졌을 터였다.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왜인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을 화면 속에서 마주하고 눈을 깜빡였다.

“어라? 이 친구 뭔가 낯이 익은데… 얘 DTB 6 나온 애 아니냐?”

“맞아요. 지금 500만 뷰 찍은 DTB 6 1차 예선 스포 없는 스포 영상 올린 후배.”

류재희의 말을 들으니까 기억났다. 아이돌 무대 의상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팅하고 왔던 그 아이돌 래퍼 참가자. 쿠션어를 한 바가지 깔던 그 후기 영상도 새록새록했다.

“음원에서는 랩 잘하는데? 그때 너무 긴장했나?”

“형의 일수호랑이 룩을 바로 눈앞에서 직면했는데 긴장이 안 되겠어요?”

“나한테 합격 목걸이 받은 놈들은 일수호랑이 룩 앞에서도 랩 잘만 했다.”

류재희에게 가볍게 헤드록을 걸며 투덜거렸다. 컴백을 코앞에 두고 귀중한 메인 보컬의 목을 상하게 할 수는 없었으므로, 류재희가 켁켁거리자 즉시 헤드록을 풀어 주고 다시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애들이 다 팔팔하네. 이게 신인의 맛인가.”

찐 신인이었던 회귀 전에는 다크소울 이 지랄하는 이런 곡이나 부르느라, 제대로 된 곡을 부르며 무대를 즐기게 된 회귀 후에는 정신머리만은 중고 신인이어서 이렇게 팔팔하지는 못했다.

“다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잖아요. 게다가 작년 12월 데뷔니까 데뷔한 지 1년도 안 됐고요. 제일 팔팔하고 의욕이랑 힘 넘칠 때죠.”

-라고 스물두 살 류재희가 말했다.

“너도 따지고 보면 20대 초반이잖아, 인마. 누가 네 말 들으면 인생 2회차인 줄 알겠다.”

인생 7회차 살고 있는 건 난데, 왜 네가 그러냐.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먹여 준 후, 뮤직비디오에 달린 댓글을 쓱쓱 훑다가 염려했던 댓글을 발견했다.

-뮤비 레브랑 너무 겹치는거 아님?

└혹시 그래피티랑 게릴라공연 레브가 도금하셨어요?

└그렇게 따지면 레브 이번 컨셉도 신드롬 표절 아닌가ㅋㅋㅋㅋ

└저걸로 표절이라고 하면 다른 돌들도 다 외국뮤비 표절임

└동발인데 표절을 어떻게하냐 뭐 디그린이 엘앤엘에 산업스파이라도 심어놨다고 주장하고 싶은거?

└님 데이드림 아니죠 괜히 레브 욕먹이지 말고 삭제하세요

이게 바로 레브랑 데이드림만 욕먹기 딱 좋은 댓글이었다. 덤으로 VXTR에게 동정표도 심어 주고 말이다.

-곡은 솔직히 레브 넘사 응 비트 돈냄새 어쩌고 해도 이든이가 말아주는 레브곡 못이김

-컨셉 겹친 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확실히 두 그룹이 느낌 다르게 소화해서 막 비슷한 건 모르겠음ㅎㅎ

-확실히 연차 있어서 그런지 우리애들이 뮤비에서 더 자연스럽긴 하다ㅋㅋㅋ

-스트릿 컨셉이 이번 시즌 유행인가ㅋㅋ

-벡스터 연차 정도면 이런 빡센 컨셉 말고 하이틴 청량 댄스 컨셉 할 연차 아니야? 디그린이라 그런지 노선 확실하다 얘네도

-신인때 컨셉 가져온 우리애들이랑 찐 신인이랑 이런 식으로 겹치니까 기분 묘하네

-얘들아 초심으로 돌아간 컨셉 했으니까 후배들한테 열정으로 밀리지 마

그래도 다행히 저건 아주 극소수고, 우리 데이드림은 성숙한 팬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시 우리 팬들이었다.

류재희한테 이런 반응 말고 다른 반응도 있냐고 물어보자 류재희가 자기 휴대폰으로 SNS를 보여주었다.

?땃따쥐 @revret

우리 체급이랑 붙을 정도면 웬만하면 컴백일정 조율하지 않나? 디그린에서 레브 비빌만하다고 본 거 같아서 개빡쳐 그것도 즈그 신인을 ㅅㅂ… 이렇게 된거 괘씸하니까 우리가 화제성 다 먹고 걔네 걍 우리한테 묻혀서 다음부터 알아서 레브 컴백일정 피해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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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브청량컨셉딱한번만더 @zxcvklj456

ㅆㅂ 어질어질하다 우리애들 머형신인돌 전투력측정기되게 생겼네 이번에 제대로 안터지면 그짝에서 오지게 비비면서 우리애들 발판으로 쓸거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스트레스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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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dreeam0808

하필 또 초심컨셉 들고와서 대가리 더 터지는거임…… 정병들 찐 신인돌이랑 눈깔안광외모코디 비교 또 ㅈㄴ 하면서 꼬투리 하나 잡히기만 하면 그거 핑계로 애들 팰거 100퍼고 무대에서 예전 데뷔 초 에너지 안 나오거나 신인돌에게 에너지 밀리면 이걸로 또 조롱 들어갈거 100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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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만 알아보도록 하자.

절대로 밀리면 안 되는 이유가 또 하나 추가되었다.

[1위-new ‘Reve – Burn Out’ ♥50,949]

[29위-new ‘VXTR – RUSH’ ♥12,587]

뮤직비디오와 동시에 공개된 음원은 우리가 압도적인 순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VXTR 역시 30위권 안을 차지하며 성공 커브 안정권에 들었다.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류재희를 돌아보며 씩 웃으며 물었다.

“자, 막내야.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겠냐.”

“여론을 어떻게 좀 우리 쪽에 유리해지게 조종을 해 볼까요?”

“아니지. 연습을 하러 가야지.”

우리는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는 거다. 후배 그룹에게 비켜 주기에는 아직은 매애애애우 건재하다는 걸.

* * *

첫 컴백 무대가 이루어지는 W 카운트다운.

우연인지 정면 돌파인지 VXTR도 컴백 무대를 설 음방으로 W 카운트다운을 택했다.

오랜만에 인사나 할 겸 멤버들을 데리고 신드롬 대기실을 찾아가자 리더 시온이 얼굴에 아주 함박웃음을 걸고 우리를 맞이했다.

이번 활동에서 스트릿 댄스팝 장르를 들고 오지 않은 신드롬에게 이번 상황은 강 건너 불구경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원래 남의 집 불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법이었다.

“이야, 우리도 원래 하던 거 말아 올걸. 아쉽다. 스트릿 댄스팝 유행의 서막을 제대로 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내 등짝을 자진모리 장단 두드리듯 마구 두드리며 하나도 아쉽지 않은 목소리로 시온이 말했다.

말은 이렇게 해도, 팀의 근본 콘셉트와 장르로 후배 둘을 상대해야 하는 위기에서 벗어났으니 이쪽은 지금 마음 푹 놓고 있을 것이다.

만약 신드롬까지 합세했으면 7년 전통의 손맛으로 말아 온 신드롬이 위에서 누르고, 라이징 VXTR가 밑에서 치고 올라오고, 레브는 아주 중간에 낀 샌드위치 재료 꼴이 됐겠군.

물론 위아래로 눌러오든 양옆으로 눌러오든 질 자신은 없지만.

“7년간 이런 컨셉 아주 지겹도록 해 온 우리가 팁 하나 알려 주자면, 이런 건 안무 잘하는 거 필요 없고, 무대 장악력이 최고예요. 무대 위 사람들끼리만 신나면 자칫하다간 숙연해지거든요. 그러니까 관중들이랑 교감하면서 해야 해요.”

키득거리던 시온이 눈을 찡긋하며 우리에게 팁을 던져 주었다.

“제가 특별히 On Top 인연으로 레브한테만 말해 주는 거예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잖아요. 우리 막내도 레브한테만 팁 전수해 주자고 얼마나 성화던지.”

“아, 형.”

신드롬 막내가 귀가 빨개진 채로 시온에게 들릴 듯 말 듯한 항의의 눈치를 보냈다.

류재희가 감동 받았다는 얼굴로 신드롬 막내를 보며 입을 틀어막는 걸 보니, 저쪽도 가요빅매치 프로젝트 그룹 이후에도 무난하게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프로젝트 그룹들이 다시 한번 뭉쳐서 무대를 해 달라는 요청이 제법 많았지만, 일단 On Top은 레볼루션 리더 군대 가고, KICKS 터지면서 반토막 나서 불가능했다.

좋은 팁을 전수해 준 신드롬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대기실로 돌아오니, 이번에는 VXTR가 앨범을 들고 잔뜩 긴장한 채로 우리 대기실을 찾아왔다.

잔뜩 기합 잡히고 각 잡힌 인사를 받고 있자 벌써 레브가 또 이 정도 연차까지 왔다는 게 새삼 자각되어서 기분이 묘했다.

8년차 아이돌 하다가 신인 시절로 돌아가서 일일이 대기실 다니면서 인사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DTB 6 1차 예선에 와서 내게 심사를 받았던 후배가 수줍게 말을 붙여 왔다.

“그, 제가 DTB 예선 끝나고 선배님 꼭 다시 한번 뵙고 싶었는데… 아체대에도 안 나오시고 해서, 인사드릴 기회가 없었거든요…”

“아, 진짜요?”

[금지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

[금지어가 감지되었습니다!]

[초심도 –1]

누구냐. 여기에서 누가 내 팬이냐.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나 있어?

아니, 이제 후배 그룹 앞에서도 편하게 말 못 하는 거 실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