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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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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10화
여기는 테스타 숙소 거실.
여느 때와 같이 예능 선공개 모니터링을 끝내고 나른한 분위기였다.
“바빠도 이렇게 모여서 보길 잘했죠?”
“으응….”
“Yes… 하암.”
“우리 직장인 예능 재밌네.”
졸린 멤버들이 여기저기서 하품을 하거나 꾸벅꾸벅 졸았다.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 가뜩이나 빡센 스케줄 때문에 없는 시간 중에 각자 모니터링하는 것보다 이렇게 늦게라도 모여서 같이 보는 쪽을 고른 탓이었다.
“이제 자자… 우리 내일 또 새벽 3시 기상이야.”
“God…….”
자연스럽게, 테스타는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서 자러 가기 위해 두셋씩 뭉쳐 이동했다.
특별한 긴장감은 없다. 다들 이제 시작될 활동기에 여러 기대와 불안이 있겠지만, 적어도 같이 부대끼고 있을 때는 편한 모양이니까.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류청우는 세안을 하러 가는 길에 그 모습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수건을 손에 든 채 화장실 밖에 나왔을 때는 멤버들이 다 잠자리를 찾아 들어간 후였다.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두운 주방에 앉아서, 조용히 물을 마시고 있는 박문대.
“…….”
고요한 얼굴이었다.
“…형?”
무심코 부르자, 박문대, 자신의 사촌 형 류건우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류청우는 맞은편에 앉으며 사려 깊게 권유했다.
“이제 들어가서 자야지.”
박문대는 짧게 침묵하다가 답했다.
“잠깐, 오피스 예능 선공개 보니까 촬영 때가 생각나서.”
“아.”
아무래도 천장 실외기에서 피 묻은 달력이 떨어진 후, 상황이 어떻게 반전되었는지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잠이 안 올만도 한가?’
어쩐지 유쾌해진 류청우가 씩 웃었다.
“형이 천장 실외기 안으로 들어가 보려던 거?”
“…….”
박문대는 류청우의 시선을 외면했다!
* * *
정장 입고 만담하는 회사 예능에 갑자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후.
“…일단, 따로 길은 없어 보입니다. 핏자국은 좀 있고요.”
“문대야 너 지금 다리 떨고 있는데.”
기분 탓이다.
나는 탐색을 위해 천장 안에 처넣었던 상체를 꺼냈다.
‘정장이 아깝군.’
먼지 구덩이더라.
“다행이다. 문대문대 귀신 봤으면 기절했을 텐데.”
아니다.
‘쫄보 누명 벗으려고 이 짓까지 했는데 초 치지 마라.’
아무튼 나는 달력을 피해서 책상을 딛고 내려왔고, 드디어 침착함을 되찾은 녀석들도 다시 대화를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주제 : 이건 무슨 상황일까.
“갑자기 지금 시간대가 왜 7월이 됐고, 그것도 하필 일요일에 저희가 회사에 출근해 있는 건지는… 음, 혹시 아시는 분?”
당연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문대가 꼬질꼬질해진 걸 보니까 저 천장으로 뭐 비밀 통로나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
배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 예능 때처럼 그런 건 아닌가 봐.”
“…좀비 예능이라니요?”
“아!”
갑자기 이 모든 게 직장인 콩트라는 게 퍼뜩 떠올랐는지, 녀석들이 허둥지둥거리며 배세진을 커버 치기 시작했다.
“방탈출! 방탈출을 의미하시는 걸 겁니다!”
“으응…!”
“그래. 우리 회식하고 방탈출했잖아. 그거!”
“맞아. 과장님이 주도하셨잖아~ 우리 류 인턴이 활약하고!”
그렇게 본분을 되찾은 녀석들은, 자신들이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에 다시 한번 몰입하는 것이 성공했다.
동시에 피 묻은 달력이 조성하는 묘한 긴장감 덕에 신중해졌지만 말이다.
“일단 이 안에서 단서를 찾죠.”
“그래.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
당장 뛰쳐나가는 대신 사무실을 탐색해보기로 한 것이다.
‘과몰입한 것 같아서 오히려 같이 쫄리는 게 시청자도 재밌겠군.’
“문대리님 같이 해요!”
“그러죠. 주임님.”
나도 차유진의 권유에 따라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고, 한 가지를 확실히 알아냈다.
“잠긴 게 많네요.”
“Oh….”
캐비닛도 책상 서랍도 몇 군데 잠겨 있었다.
채울 게 없으면 비워놓으면 될 텐데, 자물쇠도 없이 이렇게 무작정 잠겼다는 건 좀 수상하긴 하군.
‘나중에 풀어주나?’
그때였다.
자기 책상을 퉁 치면서 배세진이 알았다는 듯이 외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AI 개발하는 거 말인데.”
“……?”
여기서 갑자기 또 AI 드립을?
갑작스러운 콩트 시도에 당황한 녀석들 사이, 류청우가 친절히 물었다.
“과장님, 개발하고 싶은 AI가 생각나셨어요?”
“아니, 여기…!”
배세진이 황급히 고개를 내젓더니, 책상 아래를 뒤졌다.
그리고 웬 서류를 꺼냈다.
“이거 봐!”
그건 앞면에 거대하게 ‘KIS’라는 문구가 적힌, 군청색 서류철이었다.
[인공지능체 개발]
“…?!”
드립이 아니라 진짜 설정이었다니.
“…저희 진짜 AI 개발해요??”
“그렇다고 했잖아!”
짧은 오해가 풀리고, 어쨌든 우리는 회사 설정으로 보이는 그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든 모든 서류 위에는….
“검은 칠이 되어 있네.”
문장마다 전부 검은 마커로 죽죽 줄이 그어져서, 확인할 수 있는 건 ‘KIS’와 ‘인공지능’, ‘납품’ 같은 단어들 뿐이다.
나는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보통 개인정보 같은 민감 자료를 파쇄기 넣기 전에 이러긴 하는데요.”
“아, 그런 건가요~?”
“예.”
그때였다.
팔락.
“음?”
서류철 맨 끝에 끼워진 종이 한 장이, 홀로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상하게도 약간 반질반질한 재질인 그 종이 맨 앞에는, 26pt 정도의 크기로 명조체 제목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하계 특수근무 지침서 ?휴일용]
“이건?”
이세진이 턱을 문지르며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금년 여름을 맞아, 하계 특수근무에 지원하신 KIS의 소중한 임직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잠깐.”
그렇다는 건.
“What? 우리 여름 휴가 없어요?”
“그런가 봐.”
그냥 휴일 특근이었다고?
‘휴가 특수 철에 일요일 특근이라니.’
정말 끝내주는 세계관이다. K-야근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건가?
“저, 뒷장이 더 있어요…! 그, 비쳐 보여서.”
“아.”
선아현의 말에 류청우가 종이를 뒤집었다.
거기에는 제목 그대로 가지런히 프린트된 근무수칙이 적혀 있었다.
다만, 어디서 많이 본 형태로.
=====================
1. 일일 납품 할당량을 반드시 지켜주세요.
2. 하계 근무 시 회사의 건물은 7층 사무공간만 개방됩니다. 다른 층의 출입은 통제됩니다.
3. 납품은 각 사무실 입구의 태블릿 PC에서, 부산품은 지하 1층 창고 앞 태블릿 PC에서 등록 가능합니다.
4. 복도 전등이 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력 절감 현상입니다. 안전에 유의하며 사무실로 복귀하시면 됩니다.
5. 공휴일엔 전력 절감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사원증으로만 작동됩니다.
6. 계단에 가지 마
7. 근무표에 표기되지 않은 직원이 나타날 시, 환영하지 마세요. 반응하지 마세요.
8. 납품 및 부산품 처리가 전부 완료되면 근무가 종료됩니다.
9. 해당 지침서에는 6번이 없습니다.
10. 본사는 자율 근무 체재로 업무 종료 알림이 없습니다. 알림에 반응하는 직원에겐 수면실을 권유해 주세요.
11. 탕비실엔 정직원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위 지침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을 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KIS는 배상 의무가 없음을 고지합니다.
보람찬 근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순간, 사무실에 서늘한 침묵이 깔렸다.
“…이거, 이상한데.”
류청우도 손가락으로 종이를 만졌다.
“7층 사무공간에만 있으라면서 왜 지하 1층을 언급하는 거지?”
“이거 6번만 반말로 무섭게… 아니, 또 6번이 없다는 항목도 있네? 뭐지?”
“이상한 문구가 많습니다….”
어딘가 오싹한 내용들이긴 했다.
차유진이 그 내용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우리 일단 나가요! 직접 보는 게 좋아요.”
“으음.”
“그럴까. 사무실도 다 뒤진 것 같고.”
이윽고 선아현의 책상에서 찾아낸 지상 7층의 도면까지 꼼꼼히 살핀 멤버들은 빠르게 합의를 마쳤다.
“반대편 끝에 엘리베이터랑 계단이 둘 다 있네.”
“OK.”
차유진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녀석은 자신의 넥타이를 완전히 끌러서 옆에 걸어 두고, 문에 접근했다.
“마음의 준비 됐어요?”
“으응.”
그리고 살짝 사무실 문이 열린다.
드륵.
공간 활용도가 좋은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대로 차유진이 복도로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저 가볼……!!”
아니, 외치려다가 멈췄다.
“…….”
“유진아…?”
그 순간.
차유진은 자신을 뒤따라 머리를 내밀려던 선아현을 꽉 잡아 뒤로 보냈다.
“들어가요!!”
“어…?!”
잠깐.
나는 당장 선아현 어깨 너머로 열린 문 너머를 보았다.
깜박.
복도 불이 점멸했다.
그리고 복도 저 끝.
비상구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
낡은 오르골 박스였다.
뒤집혀 내용물이 다 보이는 채로, 조율이 뒤틀려 스산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그냥 무서운 소품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저 박스 안에 무언가 튀어나와 있다.
발레리나인지 광대인지 모를, 검고 찐득거리는 팔이 달린 상반신이.
바닥을 기어 온다.
천천히.
기이익.
“으아아악!”
“아악!”
저게 뭐지?
‘사람이… 사람이 들어갈 크기가 아닌데.’
상반신 크기다.
절대 인형 탈이 아니었다. 저런 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란 말인가?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주변 녀석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진짜 혼란에 빠진 것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주먹이라도 갈겨 봐요? 젠장, 안 통할 것처럼 보이긴 한데, 내가 해볼 테니까 있어 봐요!]
“유진이가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그냥 문 닫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손을 뻗어 문을 닫으려는 녀석들 사이에서, 류청우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복도 반대 방향으로.
거기엔 사무실이 아닌 다른 광원이 있었다.
사무실 입구 옆. 검은 거치대.
띠링.
그 위에 빛나는 하얀 사각형.
“잠깐, 왼쪽….”
나는 류청우가 말을 마치기 전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빛나는 사각형을 꽉 쥐자, 차유진이 나를 포함해 내 앞의 녀석들까지 다른 전부 팔로 쓸어 당겼다.
“문!”
김래빈이 절묘하게 문을 닫았다.
쿵.
나는 뒤로 넘어지듯 앉으며 손에 넣은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태블릿 PC였다.
“후.”
“잠깐, 잠깐만…… 문대리, 그거 아까 지침서에 있던 거지?”
“예.”
그런 것 같다.
-3. 납품은 각 사무실 입구의 태블릿 PC에서, 부산품은 지하 1층 창고 앞 태블릿 PC에서 등록 가능합니다.
그 사이에도, 서서히 느릿느릿, 오르골이 복도를 가로질러 천천히 사무실로 기어 오고 있다.
소리가 들렸다.
[♪♪♪♬♬♬♪♬♬♬]
깜박이는 복도의 불빛이, 저 문틈에서 보였다 사라진다.
‘젠장.’
이거 생각보다 오싹한데.
‘빨리 움직이자.’
나는 당장 태블릿 PC로 시선을 내렸다.
거기엔 문구가 떠 있었다.
[납품 항목 운송 계획]
-납품하시겠습니까?
“뭘 납품한다는 거지?”
“그, 그냥 눌러도, 괜찮을까…?”
“아까 근무지침서 거기에 적혀 있던 것 같긴 한데….”
“눌러요!”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서 말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분명 진행단계가 있을 거야.’
침착하자. 이건 예능, 예능이다.
그러니까… 그렇지.
여기서 우리가 눌러도, 엄청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단 누르겠습니다.”
“알았어!”
나는 다른 녀석들을 한번 돌아본 후, 즉시 손가락을 옮겼다.
-납품하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버튼을 눌렀다….
[납품 중]
똑, 똑, 똑, 똑.
“아직이야?”
“잠깐.”
몇 초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초조한 기다림이 흘러가고…….
화면에 문구가 떴다.
[납품 완료]
그 순간.
문틈에서 깜박이던 복도의 불이 돌아왔다.
오르골 소리도 사라졌다.
[-]
“…….”
상황종료였다.
“후.”
“허…….”
멤버들이 긴 숨을 내쉬며, 다 사무실 바닥에 정장이고 나발이고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았다.
“끝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만….”
정신을 차린 듯, 배세진이 내가 든 태블릿 PC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그럼… 술래잡기하면서 이 패드 찾아다니면 되나?”
“맙소사.”
“아이고, 특근 한번 제대로 하네요.”
조금 긴장이 풀렸다.
‘후.’
빡세네.
나도 태블릿 PC를 내려놓으며 한숨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거기서부터, 인공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납품용 직원 징발을 시작합니다.]
사무실 불이 꺼졌다.
“……!!”
위이이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붉은 불빛이 번뜩였다.
이건 또 뭐야.
“다들 괜찮아요?!”
옆에서 이세진이 외치는 소리가 사이렌에 먹혔다.
점멸. 점멸.
그렇게 비상 알람 같은, 재난 같은 몇 초가 갑자기 또 발생한 것이다.
“문대야, 조심…!”
그리고 이번에도 갑자기 고요해졌다.
픽.
사무실 전등에 불이 돌아왔다.
“후우.”
나는 당장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은 전과 똑같아 보였다.
“다들 무사해요?”
“방금 뭐였지?”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녀석들도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정장을 입은 모습 그대로.
다만…….
“래빈이는…?”
한 명이 없다.
문가에 서 있던 녀석이.
“김래빈 어디 갔어요?”
“…….”
나는 주변을 둘러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없어.”
딩동 딩-동!
…사무실 스피커에서, 알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턴 김래빈. 오늘의 업무가 종료되었습니다.
-부산품을 확인해 주세요.
달칵.
그리고 사무실에 잠겨 있던 서랍 중 하나가 자동으로 개방되며, 그 속에 있던 검은 상자를 보였다.
“…….”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해당 상자를 열었다.
작은 오르골.
그 위로, 김래빈의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KIS Company]
김래빈 인턴 / 오르골
-Keep it Safe
* * *
“거기서부터 더 흥미진진해지잖아.”
박문대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610화

여기는 테스타 숙소 거실.

여느 때와 같이 예능 선공개 모니터링을 끝내고 나른한 분위기였다.

“바빠도 이렇게 모여서 보길 잘했죠?”

“으응….”

“Yes… 하암.”

“우리 직장인 예능 재밌네.”

졸린 멤버들이 여기저기서 하품을 하거나 꾸벅꾸벅 졸았다.

뮤직비디오 공개 이후, 가뜩이나 빡센 스케줄 때문에 없는 시간 중에 각자 모니터링하는 것보다 이렇게 늦게라도 모여서 같이 보는 쪽을 고른 탓이었다.

“이제 자자… 우리 내일 또 새벽 3시 기상이야.”

“God…….”

자연스럽게, 테스타는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서 자러 가기 위해 두셋씩 뭉쳐 이동했다.

특별한 긴장감은 없다. 다들 이제 시작될 활동기에 여러 기대와 불안이 있겠지만, 적어도 같이 부대끼고 있을 때는 편한 모양이니까.

마음에 걸리는 일은 없는 모양이었다.

류청우는 세안을 하러 가는 길에 그 모습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리고 그가 수건을 손에 든 채 화장실 밖에 나왔을 때는 멤버들이 다 잠자리를 찾아 들어간 후였다.

한 명을 제외하면 말이다.

어두운 주방에 앉아서, 조용히 물을 마시고 있는 박문대.

“…….”

고요한 얼굴이었다.

“…형?”

무심코 부르자, 박문대, 자신의 사촌 형 류건우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류청우는 맞은편에 앉으며 사려 깊게 권유했다.

“이제 들어가서 자야지.”

박문대는 짧게 침묵하다가 답했다.

“잠깐, 오피스 예능 선공개 보니까 촬영 때가 생각나서.”

“아.”

아무래도 천장 실외기에서 피 묻은 달력이 떨어진 후, 상황이 어떻게 반전되었는지 떠올리고 있었나 보다.

‘잠이 안 올만도 한가?’

어쩐지 유쾌해진 류청우가 씩 웃었다.

“형이 천장 실외기 안으로 들어가 보려던 거?”

“…….”

박문대는 류청우의 시선을 외면했다!

* * *

정장 입고 만담하는 회사 예능에 갑자기 공포 분위기가 조성된 후.

“…일단, 따로 길은 없어 보입니다. 핏자국은 좀 있고요.”

“문대야 너 지금 다리 떨고 있는데.”

기분 탓이다.

나는 탐색을 위해 천장 안에 처넣었던 상체를 꺼냈다.

‘정장이 아깝군.’

먼지 구덩이더라.

“다행이다. 문대문대 귀신 봤으면 기절했을 텐데.”

아니다.

‘쫄보 누명 벗으려고 이 짓까지 했는데 초 치지 마라.’

아무튼 나는 달력을 피해서 책상을 딛고 내려왔고, 드디어 침착함을 되찾은 녀석들도 다시 대화를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주제 : 이건 무슨 상황일까.

“갑자기 지금 시간대가 왜 7월이 됐고, 그것도 하필 일요일에 저희가 회사에 출근해 있는 건지는… 음, 혹시 아시는 분?”

당연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문대가 꼬질꼬질해진 걸 보니까 저 천장으로 뭐 비밀 통로나 그런 게 있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

배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 예능 때처럼 그런 건 아닌가 봐.”

“…좀비 예능이라니요?”

“아!”

갑자기 이 모든 게 직장인 콩트라는 게 퍼뜩 떠올랐는지, 녀석들이 허둥지둥거리며 배세진을 커버 치기 시작했다.

“방탈출! 방탈출을 의미하시는 걸 겁니다!”

“으응…!”

“그래. 우리 회식하고 방탈출했잖아. 그거!”

“맞아. 과장님이 주도하셨잖아~ 우리 류 인턴이 활약하고!”

그렇게 본분을 되찾은 녀석들은, 자신들이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에 다시 한번 몰입하는 것이 성공했다.

동시에 피 묻은 달력이 조성하는 묘한 긴장감 덕에 신중해졌지만 말이다.

“일단 이 안에서 단서를 찾죠.”

“그래. 힌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

당장 뛰쳐나가는 대신 사무실을 탐색해보기로 한 것이다.

‘과몰입한 것 같아서 오히려 같이 쫄리는 게 시청자도 재밌겠군.’

“문대리님 같이 해요!”

“그러죠. 주임님.”

나도 차유진의 권유에 따라 사무실을 뒤지기 시작했고, 한 가지를 확실히 알아냈다.

“잠긴 게 많네요.”

“Oh….”

캐비닛도 책상 서랍도 몇 군데 잠겨 있었다.

채울 게 없으면 비워놓으면 될 텐데, 자물쇠도 없이 이렇게 무작정 잠겼다는 건 좀 수상하긴 하군.

‘나중에 풀어주나?’

그때였다.

자기 책상을 퉁 치면서 배세진이 알았다는 듯이 외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AI 개발하는 거 말인데.”

“……?”

여기서 갑자기 또 AI 드립을?

갑작스러운 콩트 시도에 당황한 녀석들 사이, 류청우가 친절히 물었다.

“과장님, 개발하고 싶은 AI가 생각나셨어요?”

“아니, 여기…!”

배세진이 황급히 고개를 내젓더니, 책상 아래를 뒤졌다.

그리고 웬 서류를 꺼냈다.

“이거 봐!”

그건 앞면에 거대하게 ‘KIS’라는 문구가 적힌, 군청색 서류철이었다.

“…?!”

드립이 아니라 진짜 설정이었다니.

“…저희 진짜 AI 개발해요??”

“그렇다고 했잖아!”

짧은 오해가 풀리고, 어쨌든 우리는 회사 설정으로 보이는 그 서류를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 든 모든 서류 위에는….

“검은 칠이 되어 있네.”

문장마다 전부 검은 마커로 죽죽 줄이 그어져서, 확인할 수 있는 건 ‘KIS’와 ‘인공지능’, ‘납품’ 같은 단어들 뿐이다.

나는 페이지를 휙휙 넘기며 무심코 중얼거렸다.

“보통 개인정보 같은 민감 자료를 파쇄기 넣기 전에 이러긴 하는데요.”

“아, 그런 건가요~?”

“예.”

그때였다.

팔락.

“음?”

서류철 맨 끝에 끼워진 종이 한 장이, 홀로 책상 위로 떨어졌다.

이상하게도 약간 반질반질한 재질인 그 종이 맨 앞에는, 26pt 정도의 크기로 명조체 제목이 프린트되어 있었다.

“이건?”

이세진이 턱을 문지르며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금년 여름을 맞아, 하계 특수근무에 지원하신 KIS의 소중한 임직원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

“……잠깐.”

그렇다는 건.

“What? 우리 여름 휴가 없어요?”

“그런가 봐.”

그냥 휴일 특근이었다고?

‘휴가 특수 철에 일요일 특근이라니.’

정말 끝내주는 세계관이다. K-야근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건가?

“저, 뒷장이 더 있어요…! 그, 비쳐 보여서.”

“아.”

선아현의 말에 류청우가 종이를 뒤집었다.

거기에는 제목 그대로 가지런히 프린트된 근무수칙이 적혀 있었다.

다만, 어디서 많이 본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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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일 납품 할당량을 반드시 지켜주세요.

2. 하계 근무 시 회사의 건물은 7층 사무공간만 개방됩니다. 다른 층의 출입은 통제됩니다.

3. 납품은 각 사무실 입구의 태블릿 PC에서, 부산품은 지하 1층 창고 앞 태블릿 PC에서 등록 가능합니다.

4. 복도 전등이 꺼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전력 절감 현상입니다. 안전에 유의하며 사무실로 복귀하시면 됩니다.

5. 공휴일엔 전력 절감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사원증으로만 작동됩니다.

6. 계단에 가지 마

7. 근무표에 표기되지 않은 직원이 나타날 시, 환영하지 마세요. 반응하지 마세요.

8. 납품 및 부산품 처리가 전부 완료되면 근무가 종료됩니다.

9. 해당 지침서에는 6번이 없습니다.

10. 본사는 자율 근무 체재로 업무 종료 알림이 없습니다. 알림에 반응하는 직원에겐 수면실을 권유해 주세요.

11. 탕비실엔 정직원만 출입이 가능합니다.

위 지침서의 내용을 지키지 않을 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하여 ㈜KIS는 배상 의무가 없음을 고지합니다.

보람찬 근무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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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사무실에 서늘한 침묵이 깔렸다.

“…이거, 이상한데.”

류청우도 손가락으로 종이를 만졌다.

“7층 사무공간에만 있으라면서 왜 지하 1층을 언급하는 거지?”

“이거 6번만 반말로 무섭게… 아니, 또 6번이 없다는 항목도 있네? 뭐지?”

“이상한 문구가 많습니다….”

어딘가 오싹한 내용들이긴 했다.

차유진이 그 내용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우리 일단 나가요! 직접 보는 게 좋아요.”

“으음.”

“그럴까. 사무실도 다 뒤진 것 같고.”

이윽고 선아현의 책상에서 찾아낸 지상 7층의 도면까지 꼼꼼히 살핀 멤버들은 빠르게 합의를 마쳤다.

“반대편 끝에 엘리베이터랑 계단이 둘 다 있네.”

“OK.”

차유진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녀석은 자신의 넥타이를 완전히 끌러서 옆에 걸어 두고, 문에 접근했다.

“마음의 준비 됐어요?”

“으응.”

그리고 살짝 사무실 문이 열린다.

드륵.

공간 활용도가 좋은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대로 차유진이 복도로 고개를 내밀며 외쳤다.

“저 가볼……!!”

아니, 외치려다가 멈췄다.

“…….”

“유진아…?”

그 순간.

차유진은 자신을 뒤따라 머리를 내밀려던 선아현을 꽉 잡아 뒤로 보냈다.

“들어가요!!”

“어…?!”

잠깐.

나는 당장 선아현 어깨 너머로 열린 문 너머를 보았다.

깜박.

복도 불이 점멸했다.

그리고 복도 저 끝.

비상구 앞에, 무언가가 있었다.…….

낡은 오르골 박스였다.

뒤집혀 내용물이 다 보이는 채로, 조율이 뒤틀려 스산한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만이라면 그냥 무서운 소품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저 박스 안에 무언가 튀어나와 있다.

발레리나인지 광대인지 모를, 검고 찐득거리는 팔이 달린 상반신이.

바닥을 기어 온다.

천천히.

기이익.

“으아아악!”

“아악!”

저게 뭐지?

‘사람이… 사람이 들어갈 크기가 아닌데.’

상반신 크기다.

절대 인형 탈이 아니었다. 저런 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란 말인가?

본능적으로 그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주변 녀석들도 눈을 떼지 못하고 진짜 혼란에 빠진 것처럼 외치기 시작했다.

“유진이가 한국어를 잊어버렸다!”

“그냥 문 닫아!”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손을 뻗어 문을 닫으려는 녀석들 사이에서, 류청우의 시선이 돌아가는 것을 보았다.

복도 반대 방향으로.

거기엔 사무실이 아닌 다른 광원이 있었다.

사무실 입구 옆. 검은 거치대.

띠링.

그 위에 빛나는 하얀 사각형.

“잠깐, 왼쪽….”

나는 류청우가 말을 마치기 전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빛나는 사각형을 꽉 쥐자, 차유진이 나를 포함해 내 앞의 녀석들까지 다른 전부 팔로 쓸어 당겼다.

“문!”

김래빈이 절묘하게 문을 닫았다.

쿵.

나는 뒤로 넘어지듯 앉으며 손에 넣은 것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태블릿 PC였다.

“후.”

“잠깐, 잠깐만…… 문대리, 그거 아까 지침서에 있던 거지?”

“예.”

그런 것 같다.

-3. 납품은 각 사무실 입구의 태블릿 PC에서, 부산품은 지하 1층 창고 앞 태블릿 PC에서 등록 가능합니다.

그 사이에도, 서서히 느릿느릿, 오르골이 복도를 가로질러 천천히 사무실로 기어 오고 있다.

소리가 들렸다.

깜박이는 복도의 불빛이, 저 문틈에서 보였다 사라진다.

‘젠장.’

이거 생각보다 오싹한데.

‘빨리 움직이자.’

나는 당장 태블릿 PC로 시선을 내렸다.

거기엔 문구가 떠 있었다.

-납품하시겠습니까?

“뭘 납품한다는 거지?”

“그, 그냥 눌러도, 괜찮을까…?”

“아까 근무지침서 거기에 적혀 있던 것 같긴 한데….”

“눌러요!”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서 말이 터져 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분명 진행단계가 있을 거야.’

침착하자. 이건 예능, 예능이다.

그러니까… 그렇지.

여기서 우리가 눌러도, 엄청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단 누르겠습니다.”

“알았어!”

나는 다른 녀석들을 한번 돌아본 후, 즉시 손가락을 옮겼다.

-납품하시겠습니까?

예.

그렇게, 버튼을 눌렀다….

똑, 똑, 똑, 똑.

“아직이야?”

“잠깐.”

몇 초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초조한 기다림이 흘러가고…….

화면에 문구가 떴다.

그 순간.

문틈에서 깜박이던 복도의 불이 돌아왔다.

오르골 소리도 사라졌다.

“…….”

상황종료였다.

“후.”

“허…….”

멤버들이 긴 숨을 내쉬며, 다 사무실 바닥에 정장이고 나발이고 엉덩이를 대고 주저앉았다.

“끝인가?”

“그런 것 같습니다만….”

정신을 차린 듯, 배세진이 내가 든 태블릿 PC를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이거 그럼… 술래잡기하면서 이 패드 찾아다니면 되나?”

“맙소사.”

“아이고, 특근 한번 제대로 하네요.”

조금 긴장이 풀렸다.

‘후.’

빡세네.

나도 태블릿 PC를 내려놓으며 한숨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거기서부터, 인공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무실 불이 꺼졌다.

“……!!”

위이이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붉은 불빛이 번뜩였다.

이건 또 뭐야.

“다들 괜찮아요?!”

옆에서 이세진이 외치는 소리가 사이렌에 먹혔다.

점멸. 점멸.

그렇게 비상 알람 같은, 재난 같은 몇 초가 갑자기 또 발생한 것이다.

“문대야, 조심…!”

그리고 이번에도 갑자기 고요해졌다.

픽.

사무실 전등에 불이 돌아왔다.

“후우.”

나는 당장 고개를 돌렸다.

사무실은 전과 똑같아 보였다.

“다들 무사해요?”

“방금 뭐였지?”

서로 안부를 확인하는 녀석들도 별다를 게 없어 보였다.

정장을 입은 모습 그대로.

다만…….

“래빈이는…?”

한 명이 없다.

문가에 서 있던 녀석이.

“김래빈 어디 갔어요?”

“…….”

나는 주변을 둘러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없어.”

딩동 딩-동!

…사무실 스피커에서, 알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턴 김래빈. 오늘의 업무가 종료되었습니다.

-부산품을 확인해 주세요.

달칵.

그리고 사무실에 잠겨 있던 서랍 중 하나가 자동으로 개방되며, 그 속에 있던 검은 상자를 보였다.

“…….”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서, 해당 상자를 열었다.

작은 오르골.

그 위로, 김래빈의 사원증이 걸려 있었다.

김래빈 인턴 / 오르골

-Keep it Safe

* * *

“거기서부터 더 흥미진진해지잖아.”

박문대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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