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51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5화
류청우는 자신의 무의식에 잠겨 있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과, 조건.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나날.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만나 불꽃처럼 훅 타오는 집념.
-청우 씨?
하지만 그것도 끝이었다.
“청우 씨!”
‘아.’
류청우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부르는 것은 낯선 매니저다.
이름을 외운 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그는 그룹 테스타가 최근 새롭게 고용한 매니저라고 했다.
‘그리고 첫 번째 매니저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다고 하던가…….’
이제 와서는 별로 의미 없는 정보다. 류청우는 어쩐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평이하게 대응한다.
“네.”
“음료 좀 사오려고 하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는 이 매니저가 테스타의 스케줄이 시작되는 아침, 그리고 점심 식사 이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또 한 번 정기적으로 음료를 사 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 특수 상황이었다.
연습실은 촬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라떼….”
회사의 다른 직원들에게 음료 질문을 받은 제작진들이 작게 대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는 연습실 외곽을 가득 채운 의 스탭들을 무미건조하게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주문하시기 편한 걸로 부탁합니다.”
그걸로 충분했다.
스티어 류청우의 최종 기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본래 스티어 류청우는 ‘기억을 되찾겠다’라는 말을 꺼낸 그 날,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사라질… 아니, ‘기억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건 힘든데요.
박문대. 전에는 자신의 친척이었다는 낯선 멤버가 난색을 표한 것이다.
이유로 든 것은 ‘변수 리스크’.
-기억을 되찾으시면 잠깐은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경연 프로그램 출연 중에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카메라 붙을 일이 많아서.
논리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류청우는 현재 아무 의미 없이 여기 앉아 있는 것이다.
사실 내 알 바냐고 대꾸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진 않았다.
‘무대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며칠간 빈자리만 채우는 거라면 그저 대기 시간일 뿐이었다. 피곤하지만.
류청우는 할당받은 음료를 마셨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였다.
“그거 디카페인이라고 합니다.”
“…….”
“세진 형이요.”
멀뚱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건 것은 자신처럼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기도 했다.
‘박문대.’
이 멤버는 자신과 김래빈처럼 이번 경연에서 빠졌다.
왜 빠진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무려면 어떠냐 싶었다.
전이었다면 이쪽을 신경 써서 빠진 건 아닌지, 무슨 계획을 세운 것인지 어떻게든 과하지 않아 보이는 방법으로 확인하려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그럴 원동력은 없었다.
류청우는 그냥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아메리카노를 마실 뿐이었다.
박문대도 별말 없이 자신의 음료를 들고, 카메라가 찍고 있는 이번 ‘테스타 유닛’ 멤버들의 연습 장면을 바라보았다.
“…….”
적막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어, 커피!”
“제 케이크예요? Wow.”
그리고 연습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연습 장면 촬영이 충분히 끝났는지, 안무를 중단한 ‘테스타 유닛’은 웃으며 음료와 간식을 받아들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던 박문대도 슬슬 때가 되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도 움직이죠. 준비도 끝났으니까.”
“…준비?”
“촬영 준비요.”
“이번 경연 무대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무슨 촬영이란 말인가.
하지만 박문대는 오히려 희한하다는 듯이 자신을 돌아보았다.
거의 황당하다는 눈빛이다.
“무대를 안 한다고 저희가 프로그램에도 안 나오는 건 아닌데요.”
“…….”
“무대 만드는 데에 참여해야죠. 무대 완성하려면 퍼포먼스하는 하는 것 말고도 갈아 넣어야 하는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류청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어느새 박문대, 김래빈과 함께 인터뷰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짜잔. 이번 경연 1회 계약직 프로듀서 3인입니다.”
‘……?’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짝짝짝.
박수 치는 박문대를 센터로, 반대편의 김래빈이 얼결에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
같이 쳐줘야 하나?
하지만 그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박문대의 말이 휘몰아쳤다.
김래빈의 편곡, 박문대의 테마 선정.
“저희가 앨범을 셀프 프로듀싱하는 그룹이다 보니 그런 모습들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잘된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가 프로듀싱에서는 이 그룹 최정예 3인입니다.”
“진심으로요?”
“그럼요. 완벽한 진실입니다.”
PD의 웃음기 어린 질문에 냉큼 뻔뻔하게 대답하는 박문대의 말에 카메라맨까지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여기 청우 형께서 총괄 그림 및 리뷰를 맡아주실 예정입니다. 피드백이요.”
와아아.
박문대의 주도로 제작진들이 호응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류청우에게도 결국 역할이 주어졌다.
-총괄 프로듀서.
말만 그렇지, 무대만 보고 아무것도 하는 건 없는 직함이라는 건 바로 깨달았다.
그 후로 며칠간 류청우에게 다른 요구는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란 단어도 명목상 붙인 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류청우는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살면서 이랬던 적이 있나 싶었다. 극한의 단련을 통한 성취와, 미끄러져 내리는 추락을 반복하는 바쁜 삶이었기 때문에.
‘양궁을 그만뒀을 때가 그나마 비슷한가.’
하지만 그때는 이토록 소진된 듯 부유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고통은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고민해야 하는 고통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다음 촬영 날이 왔다.
놀랍게도 사흘 만에 퍼포먼스 형태가 나왔다고 한다.
“퍼포먼스 보는 저희 리액션도 필요하다고 하셔서 저희도 같이 찍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강의실 형태의 회사 공간으로 이동했다.
“잘 돼가냐.”
“그럼~”
씩 웃는 테스타의 멤버들은 중앙의 강단을 치워 만든 간이 무대에 서 있었고, 박문대는 잡담을 주고받으며 강단 맨 앞자리에 앉았다.
“저기, 래빈아…! 곡, 정말 좋았어!”
“…!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심지어 김래빈도 차유진이 아닌 다른 낯선 멤버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게, 아마 편곡 작업을 하면서 ‘테스타’와 자주 소통한 모양이었다.
‘저런 게 정말 자연스러운 적응이었나.’
류청우는 스스로에게 실소하며 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억울하지도 않았다.
무대는 몇 가지 정비 후, 곧장 시작되었다.
“아, 근데 우리가 이렇게 서보니까… 음, 이게 균형이 조금 안 맞는 것 같기도 한데요~”
하필 유닛으로 묶인 넷이 댄스가 포지션인 셋과 보컬 포지션인 하나의 조합이었다.
심지어 댄스 포지션인 셋이 키가 훌쩍 큰 탓에 묘한 괴리감을 조성했다.
“……나?”
끄덕끄덕.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배세진의 음울한 물음에 결국 위치가 재조정되었다.
“센터~!”
“Oh! Center!”
“……!”
멤버의 호응에 맞추어, 배세진은 삐걱거리며 가운데로 이동했다.
그리고 배세진이 센터에 서자… 과연 밸런스가 맞았다.
“으하하!”
“웃어?”
“…….”
작가들이 필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선아현도 웃음을 참는 듯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그렇다. 배세진은 열받는 것처럼 반응했지만, 그건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좋은 팀이 가질 법한, 허물없는 관계에서 나오는 솔직함.
‘…….’
이 분위기에 소속될 수도 있었다.
그는 다시 어렴풋이 번쩍이는 충동을 느꼈지만, 곧 사라졌다.
“그래서! 저희 동선이 막 조절한 임시인 거 고려하고 봐주세요~”
그리고 시작하는 무대.
밝고 쾌활한 밴드 반주와 함께, 다소 뮤지컬스러운 구성의 레트로 테마가 펼쳐진다.
개인 역량의 차이를 고려하여 파트 분배를 세련되게 뽑은 것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꼴에 직업병 같은 게 생기기라도 한 건가. 류청우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우리 사이엔 마치
특별한 공백이 있는 것처럼]
음악이 울린다.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저 틈에서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 수준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하고 피곤한 고민.
그런 것이 없이 보는 무대는… 편안했다.
[이 간격이 어떻게 될지
아직 모르지
That’s true]
류청우는 아주 오랜만에, 경쟁자의 무대를 아무 생각 없이 관람했다.
[Yes!]
1분짜리 데모 버전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끝났다.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여운에 짧게 휩싸여 있을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박문대의 무심한 말이 치고 들어왔다.
“형, 피드백이요.”
“…….”
류청우는 약간의 거부감과 난감함을 느꼈다.
정말로 피드백을 요구할 줄이야.
‘직함만 준 게 아니었나?’
하지만 박문대의 얼굴은 다소 심드렁했다. 그냥 방송에 말할 내용이 필요해서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그리 치열하고 정확한 피드백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류청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문대가 즉시 물었다.
“우선 좋았던 부분부터 부탁드립니다.”
류청우는 긴 생각 없이 답변했다.
“움직임이 가볍던데.”
“그렇긴 했죠. 거기 맞게 라이브 밴드를 쓰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순간,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는 생각이 잠깐 류청우의 머리를 스쳤다. 희미한 반가움과 함께.
하지만 박문대는 굳이 동의를 요구하지 않고 물 흐르듯 대화를 이었다.
“뭐, 아무튼. 안무에 대한 감상은 어떠신가요.”
“괜찮았어.”
“예. 잘 뽑힌 편이긴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진 않았는데.
류청우는 순간적으로 아까 답변한 부분에서 연결점을 찾아냈다.
“동작이 음악에 비해 화려했던가.”
“그렇죠. 아직 완성된 악곡이 아니니까.”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마시던 퍼포먼스 인원들을 보다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게 래빈이가 지금 작업 중인 버전인데요. 아, 래빈아. 틀어도 괜찮을까.”
“예…!”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내던 김래빈이 화들짝 놀라며 긍정했다. 그리고 박문대는 무심히 스마트폰을 재생하며, 주머니에서 무선 이어폰을 넘겼다.
류청우는 그 당연하다는 듯한 동작에 휘말려서 어느새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
하지만 거절할 만큼 유난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게 되었다.
“좀 화려해졌죠.”
“그렇네.”
“저는 이 파트에 현악기가 좀 더 들어갔으면 하는데요.”
“아.”
“금관이 나을까요.”
현악기와 금관.
‘흠.’
류청우는 순간 음악에 집중했다.
“…….”
그리고 박문대는 그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의 판단을 한 번 더 긍정하면서.
며칠 전, 스티어 류청우의 ‘기억을 되찾겠다’라는 선언을 들었을 때 했던 판단 말이다.
-이렇게는 아니야.
저렇게 사람이 번아웃된 상태로 기억이 돌아와봤자, 썩 좋은 꼴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본래 멘탈이 강하고 그 속을 알기 힘들 정도로 속 깊은 멤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왜 과거 스티어 류청우는 이렇게까지 번아웃 됐느냐.
그에 대해서는 명쾌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상이 안 돌아오는 일을 너무 오래 했어.’
심지어 자신과 맞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당연히 진절머리가 나기 마련이다.
아무 결실 없이 끝나기까지 했다면 더더욱.
류청우의 정신력이 강인해서 대단히 오래 버텼다는 게 더 문제였다.
배세진도 동의했다.
-게다가 나… 그러니까 과거의 나한테서 승소 소식을 들었던 것도 마음에 걸려.
자신이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든 계기의 결말을 보는 것.
시원한 게 아니라, 허무해진 것이다.
‘그게 아예 류청우의 원동력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박문대는 배세진과의 상의 후, 앞으로의 방침에 대한 계획을 확정했다.
일명 ‘패턴 바꾸기’.
첫 번째.
-아이돌 멤버로서, 그룹 리더로서의 전형적인 역할 패턴을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다음이 중요했다.
-하지만 일에서 오는 효능감은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녀석은 이미 그 루트에 발을 들였다.’
박문대는 다시 한번 그것을 떠올리며, 류청우를 보았다.
마침 녀석이 입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금관이 낫겠는데.”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
박문대는 내심 웃었으나, 티 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역시 그런가…. 예. 래빈이가 내일 아침에 이어서 한다는데, 한번 체크 해보겠습니다.”
“음, 그래.”
그렇게 류청우는 가랑비에 물이 젖듯이, 차근차근 무대 완성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박문대는 진짜 류청우에게 총괄 프로듀서를 시켜 버릴 생각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15화
류청우는 자신의 무의식에 잠겨 있었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과, 조건.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나날.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만나 불꽃처럼 훅 타오는 집념.
-청우 씨?
하지만 그것도 끝이었다.
“청우 씨!”
‘아.’
류청우는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부르는 것은 낯선 매니저다.
이름을 외운 지도 얼마 지나지 않은 그는 그룹 테스타가 최근 새롭게 고용한 매니저라고 했다.
‘그리고 첫 번째 매니저는, 교통사고를 일으켰다고 하던가…….’
이제 와서는 별로 의미 없는 정보다. 류청우는 어쩐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평이하게 대응한다.
“네.”
“음료 좀 사오려고 하는데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는 이 매니저가 테스타의 스케줄이 시작되는 아침, 그리고 점심 식사 이후 2시에서 3시 사이에 또 한 번 정기적으로 음료를 사 온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은 두 경우에 모두 해당하지 않는 특수 상황이었다.
연습실은 촬영 중이었기 때문이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라떼….”
회사의 다른 직원들에게 음료 질문을 받은 제작진들이 작게 대답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는 연습실 외곽을 가득 채운 의 스탭들을 무미건조하게 확인한 뒤, 입을 열었다.
“주문하시기 편한 걸로 부탁합니다.”
그걸로 충분했다.
스티어 류청우의 최종 기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본래 스티어 류청우는 ‘기억을 되찾겠다’라는 말을 꺼낸 그 날,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사라질… 아니, ‘기억을 되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건 힘든데요.
박문대. 전에는 자신의 친척이었다는 낯선 멤버가 난색을 표한 것이다.
이유로 든 것은 ‘변수 리스크’.
-기억을 되찾으시면 잠깐은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 경연 프로그램 출연 중에는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카메라 붙을 일이 많아서.
논리적인 말이었다.
그래서 류청우는 현재 아무 의미 없이 여기 앉아 있는 것이다.
사실 내 알 바냐고 대꾸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진 않았다.
‘무대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며칠간 빈자리만 채우는 거라면 그저 대기 시간일 뿐이었다. 피곤하지만.
류청우는 할당받은 음료를 마셨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였다.
“그거 디카페인이라고 합니다.”
“…….”
“세진 형이요.”
멀뚱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을 건 것은 자신처럼 카메라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이기도 했다.
‘박문대.’
이 멤버는 자신과 김래빈처럼 이번 경연에서 빠졌다.
왜 빠진 것인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무려면 어떠냐 싶었다.
전이었다면 이쪽을 신경 써서 빠진 건 아닌지, 무슨 계획을 세운 것인지 어떻게든 과하지 않아 보이는 방법으로 확인하려 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그럴 원동력은 없었다.
류청우는 그냥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아메리카노를 마실 뿐이었다.
박문대도 별말 없이 자신의 음료를 들고, 카메라가 찍고 있는 이번 ‘테스타 유닛’ 멤버들의 연습 장면을 바라보았다.
“…….”
적막이 흘렀다.
“감사합니다~ 어, 커피!”
“제 케이크예요? Wow.”
그리고 연습실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연습 장면 촬영이 충분히 끝났는지, 안무를 중단한 ‘테스타 유닛’은 웃으며 음료와 간식을 받아들고 있었다.
그 순간, 옆에 앉아 있던 박문대도 슬슬 때가 되었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희도 움직이죠. 준비도 끝났으니까.”
“…준비?”
“촬영 준비요.”
“이번 경연 무대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무슨 촬영이란 말인가.
하지만 박문대는 오히려 희한하다는 듯이 자신을 돌아보았다.
거의 황당하다는 눈빛이다.
“무대를 안 한다고 저희가 프로그램에도 안 나오는 건 아닌데요.”
“…….”
“무대 만드는 데에 참여해야죠. 무대 완성하려면 퍼포먼스하는 하는 것 말고도 갈아 넣어야 하는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류청우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이때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어느새 박문대, 김래빈과 함께 인터뷰까지 진행하고 있었다.
“짜잔. 이번 경연 1회 계약직 프로듀서 3인입니다.”
‘……?’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짝짝짝.
박수 치는 박문대를 센터로, 반대편의 김래빈이 얼결에 박수를 치는 모습이 보였다.
“…….”
같이 쳐줘야 하나?
하지만 그 의문이 끝나기도 전에 박문대의 말이 휘몰아쳤다.
김래빈의 편곡, 박문대의 테마 선정.
“저희가 앨범을 셀프 프로듀싱하는 그룹이다 보니 그런 모습들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잘된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저희가 프로듀싱에서는 이 그룹 최정예 3인입니다.”
“진심으로요?”
“그럼요. 완벽한 진실입니다.”
PD의 웃음기 어린 질문에 냉큼 뻔뻔하게 대답하는 박문대의 말에 카메라맨까지 웃음을 참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시선이 돌아왔다.
“여기 청우 형께서 총괄 그림 및 리뷰를 맡아주실 예정입니다. 피드백이요.”
와아아.
박문대의 주도로 제작진들이 호응을 보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류청우에게도 결국 역할이 주어졌다.
-총괄 프로듀서.
말만 그렇지, 무대만 보고 아무것도 하는 건 없는 직함이라는 건 바로 깨달았다.
그 후로 며칠간 류청우에게 다른 요구는 일절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듀서란 단어도 명목상 붙인 말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류청우는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살면서 이랬던 적이 있나 싶었다. 극한의 단련을 통한 성취와, 미끄러져 내리는 추락을 반복하는 바쁜 삶이었기 때문에.
‘양궁을 그만뒀을 때가 그나마 비슷한가.’
하지만 그때는 이토록 소진된 듯 부유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고통은 시간을 느리게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고민해야 하는 고통이 없었기에, 순식간에 다음 촬영 날이 왔다.
놀랍게도 사흘 만에 퍼포먼스 형태가 나왔다고 한다.
“퍼포먼스 보는 저희 리액션도 필요하다고 하셔서 저희도 같이 찍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강의실 형태의 회사 공간으로 이동했다.
“잘 돼가냐.”
“그럼~”
씩 웃는 테스타의 멤버들은 중앙의 강단을 치워 만든 간이 무대에 서 있었고, 박문대는 잡담을 주고받으며 강단 맨 앞자리에 앉았다.
“저기, 래빈아…! 곡, 정말 좋았어!”
“…! 정말이십니까?! 감사합니다!”
심지어 김래빈도 차유진이 아닌 다른 낯선 멤버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게, 아마 편곡 작업을 하면서 ‘테스타’와 자주 소통한 모양이었다.
‘저런 게 정말 자연스러운 적응이었나.’
류청우는 스스로에게 실소하며 자리에 앉았다. 특별히 억울하지도 않았다.
무대는 몇 가지 정비 후, 곧장 시작되었다.
“아, 근데 우리가 이렇게 서보니까… 음, 이게 균형이 조금 안 맞는 것 같기도 한데요~”
하필 유닛으로 묶인 넷이 댄스가 포지션인 셋과 보컬 포지션인 하나의 조합이었다.
심지어 댄스 포지션인 셋이 키가 훌쩍 큰 탓에 묘한 괴리감을 조성했다.
“……나?”
끄덕끄덕.
그리고 ‘나머지 하나’인 배세진의 음울한 물음에 결국 위치가 재조정되었다.
“센터~!”
“Oh! Center!”
“……!”
멤버의 호응에 맞추어, 배세진은 삐걱거리며 가운데로 이동했다.
그리고 배세진이 센터에 서자… 과연 밸런스가 맞았다.
“으하하!”
“웃어?”
“…….”
작가들이 필사적으로 입을 가렸다. 선아현도 웃음을 참는 듯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그렇다. 배세진은 열받는 것처럼 반응했지만, 그건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좋은 팀이 가질 법한, 허물없는 관계에서 나오는 솔직함.
‘…….’
이 분위기에 소속될 수도 있었다.
그는 다시 어렴풋이 번쩍이는 충동을 느꼈지만, 곧 사라졌다.
“그래서! 저희 동선이 막 조절한 임시인 거 고려하고 봐주세요~”
그리고 시작하는 무대.
밝고 쾌활한 밴드 반주와 함께, 다소 뮤지컬스러운 구성의 레트로 테마가 펼쳐진다.
개인 역량의 차이를 고려하여 파트 분배를 세련되게 뽑은 것이 곧바로 눈에 들어왔다.
꼴에 직업병 같은 게 생기기라도 한 건가. 류청우는 쓰게 웃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특별한 공백이 있는 것처럼]
음악이 울린다.
퍼포먼스가 이어진다.
저 틈에서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 수준을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하고 피곤한 고민.
그런 것이 없이 보는 무대는… 편안했다.
아직 모르지
That’s true]
류청우는 아주 오랜만에, 경쟁자의 무대를 아무 생각 없이 관람했다.
1분짜리 데모 버전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끝났다.
“여기까지입니다~ 감사합니다!”
그 여운에 짧게 휩싸여 있을 무렵.
기다렸다는 듯이 박문대의 무심한 말이 치고 들어왔다.
“형, 피드백이요.”
“…….”
류청우는 약간의 거부감과 난감함을 느꼈다.
정말로 피드백을 요구할 줄이야.
‘직함만 준 게 아니었나?’
하지만 박문대의 얼굴은 다소 심드렁했다. 그냥 방송에 말할 내용이 필요해서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그리 치열하고 정확한 피드백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류청우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문대가 즉시 물었다.
“우선 좋았던 부분부터 부탁드립니다.”
류청우는 긴 생각 없이 답변했다.
“움직임이 가볍던데.”
“그렇긴 했죠. 거기 맞게 라이브 밴드를 쓰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순간, 비슷한 감상을 느꼈다는 생각이 잠깐 류청우의 머리를 스쳤다. 희미한 반가움과 함께.
하지만 박문대는 굳이 동의를 요구하지 않고 물 흐르듯 대화를 이었다.
“뭐, 아무튼. 안무에 대한 감상은 어떠신가요.”
“괜찮았어.”
“예. 잘 뽑힌 편이긴 하지만… 아쉬운 부분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진 않았는데.
류청우는 순간적으로 아까 답변한 부분에서 연결점을 찾아냈다.
“동작이 음악에 비해 화려했던가.”
“그렇죠. 아직 완성된 악곡이 아니니까.”
박문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을 마시던 퍼포먼스 인원들을 보다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이게 래빈이가 지금 작업 중인 버전인데요. 아, 래빈아. 틀어도 괜찮을까.”
“예…!”
멤버들에게 박수를 보내던 김래빈이 화들짝 놀라며 긍정했다. 그리고 박문대는 무심히 스마트폰을 재생하며, 주머니에서 무선 이어폰을 넘겼다.
류청우는 그 당연하다는 듯한 동작에 휘말려서 어느새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
하지만 거절할 만큼 유난스러운 일도 아니었기에 그는 의식하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음악을 듣게 되었다.
“좀 화려해졌죠.”
“그렇네.”
“저는 이 파트에 현악기가 좀 더 들어갔으면 하는데요.”
“아.”
“금관이 나을까요.”
현악기와 금관.
‘흠.’
류청우는 순간 음악에 집중했다.
“…….”
그리고 박문대는 그것을 유심히 관찰했다.
자신의 판단을 한 번 더 긍정하면서.
며칠 전, 스티어 류청우의 ‘기억을 되찾겠다’라는 선언을 들었을 때 했던 판단 말이다.
-이렇게는 아니야.
저렇게 사람이 번아웃된 상태로 기억이 돌아와봤자, 썩 좋은 꼴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본래 멘탈이 강하고 그 속을 알기 힘들 정도로 속 깊은 멤버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렇다면 왜 과거 스티어 류청우는 이렇게까지 번아웃 됐느냐.
그에 대해서는 명쾌한 대답이 준비되어 있었다.
‘보상이 안 돌아오는 일을 너무 오래 했어.’
심지어 자신과 맞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일을 계속 수행하는 것은 당연히 진절머리가 나기 마련이다.
아무 결실 없이 끝나기까지 했다면 더더욱.
류청우의 정신력이 강인해서 대단히 오래 버텼다는 게 더 문제였다.
배세진도 동의했다.
-게다가 나… 그러니까 과거의 나한테서 승소 소식을 들었던 것도 마음에 걸려.
자신이 그런 일을 하도록 만든 계기의 결말을 보는 것.
시원한 게 아니라, 허무해진 것이다.
‘그게 아예 류청우의 원동력이 사라지는 계기가 됐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박문대는 배세진과의 상의 후, 앞으로의 방침에 대한 계획을 확정했다.
일명 ‘패턴 바꾸기’.
첫 번째.
-아이돌 멤버로서, 그룹 리더로서의 전형적인 역할 패턴을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이다음이 중요했다.
-하지만 일에서 오는 효능감은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 녀석은 이미 그 루트에 발을 들였다.’
박문대는 다시 한번 그것을 떠올리며, 류청우를 보았다.
마침 녀석이 입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금관이 낫겠는데.”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지.’
박문대는 내심 웃었으나, 티 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역시 그런가…. 예. 래빈이가 내일 아침에 이어서 한다는데, 한번 체크 해보겠습니다.”
“음, 그래.”
그렇게 류청우는 가랑비에 물이 젖듯이, 차근차근 무대 완성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박문대는 진짜 류청우에게 총괄 프로듀서를 시켜 버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