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3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1화
나는 심호흡했다.
…정리하자.
안내 방송에서는 배세진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드론 화면에서는 VTIC 주단이 보인다.
‘장난하나.’
붕괴까지 남은 시간은 12분인데 지하에 한 놈, 어딘지 모르겠지만 안내 방송하는 곳에 한 놈이 있다고.
매니저나 스탭들이 다 X신 새끼들도 아니고 무슨 소속 연예인만 쏙쏙 제외하고 다들 탈출했냐.
[DING- DING-]
“방송이 끝났습니다….”
그 와중에 배세진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일단 계속 확인되는 쪽부터 빠르게 유인한다. 여기서 어버버하다간 다 뒈지는 수가 있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았다.
거기는 주단이… 왜 없냐.
“이놈 또 어디 갔어.”
“…! 그, 그 아마도, 방으로 들어가신 게 아닐…?”
다행히 놈은 다시 화면에 등장했다.
글이 적힌 A4 용지를 들고.
“…?”
-건물 내부에 있는 생존자십니까?
소통의 시도였다.
“헉!”
“이, 이 드론에 음성을 보내는 기능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
“드론 위아래로 조작해.”
“아.”
김래빈의 조작에 따라 드론 시야가 출렁거린다. 그러자 주단이 A4에 새 글을 써서 보여준다.
-탈출로를 찾고 계십니까?
김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희는 사람을 찾고 있으니 정확히 따지자면 우선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잠깐,”
안 된다.
“갇힌 사람이 탈출로를 안 찾는 게 더 이상하잖아. 일단 찾는다고 하자.”
“과연!”
일단 거기서 시작해서 대화를 빠르게 이끌어가야 했다.
‘우리 쪽에 성과가 있는지 물어보거나, 정체를 추측하겠지.’
나는 이놈의 다음 답변 예상안을 꼽으며 대화 내역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러는 동안 드론이 다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놈은 또 A4에 글을 끄적거리더니 완성된 문장을 들어 올렸다.
…기대도 안 했던 문장을.
-이곳, 지하의 직원용 구역에 탈출로가 있습니다.
“…?!”
“어, 어어.”
문장은 끝이 아니었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비상전력이 들어와서 작동됩니다.
“그, 그러면….”
“붕괴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탈출로 확보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으응, 맞아!”
맞는 말이다. 여차하면 남은 인원이라도 내보내야 한다.
문제는….
‘언제부터 작동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보통 이 정도 건물이면 아무리 비상전력이라도 한 시간도 안 갈 텐데, 대체 얼마나 시간이 남은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놈은 문이 있는데 왜 안 나가고 있는 거지?’
하나 더.
…보통 문은 그냥 여는 거지 전력이 필요하진 않을 텐데.
요동치는 드론을 보던 놈이 실시간으로 용지에 한 줄을 더 적어넣는다.
-다만 스탭 출입증이 필요합니다.
‘역시.’
뭐가 있었군.
보안키가 있어야 열리는 스탭용 문을 찾은 것 같다.
-스탭 출입증을 찾아서 지하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계단이 막혔다 이 자식아.
대체 어쩌다가 혼자 낙오돼서 지하로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미션만 갱신됐다.
‘…스탭증을 찾아서 지하로 가기.’
그것도.
[00:10:34]
이 시간 안에.
“…….”
“스탭증이, 아까 편집실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한 번 더 찾아보고 올게…!”
“그렇다면 저는 지하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 문대 형?”
나는 노트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10분 남았다. 둘 다 무리야.”
“…….”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까 챙겨놓은 커튼 밧줄을 움켜쥐었다.
* * *
“어.”
주단은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부터 한 줄기 밝은 라이트가 자신을 비춘다.
[위이이잉-]
현대 재난 아포칼립스 컨텐츠에서 이제는 익숙하게 등장하는 요소, 드론이었다.
‘호오.’
그는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건물에 고립된 생존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갈 길을 찾나 보다.
그렇다면 나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응대해줘야겠지.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서 방에 들어갔다.
“혹시 형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좀 빌릴 수….”
“…….”
대답도 없다.
과연. 뭘 기대했단 말인가.
그는 재빨리 루트를 바꿔 A4 용지를 챙겨 들었다.
-건물 내부 생존자십니까?
드론이 열심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오, 제법 대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단은 흥미를 갖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제법 성의껏 알려주었다.
‘내가 찾으러 가는 건… 음, 그건 좀 무리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주단은 어깨를 으쓱한 뒤, 놀라운 정보에 비틀거리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진 드론을 보았다.
‘놀라서 스탭증을 찾고 있을 확률이 절반 이상.’
이걸로 자신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는 역할은 충분했다.
“형. 방금 드론이 와서 짧게 대화를 했습니다. 구조대는 아니고 이 건물에 갇힌 또 다른 생존자입니다.”
“그래.”
그리고 이런 특이점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일행이 있었다.
지하의 시설관리실.
그곳에 선 청려는 무표정으로 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전력이 나가서 CCTV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무슨 무선 충전된 휴대용 보안기기를 이용해서 기어코 직전 시간 CCTV를 작은 화면으로 몇 가지 돌렸다.
보통 아이돌은 해본 적도 없고 하는 방법을 알 리도 없는 것.
‘저런 게 다 회귀하면서 쌓은 경험치겠지.’
수많은 삶 중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압박감에 짓눌려 살인마로 살았을지도 모르니 앞으로도 예의 있게 대해야겠다고 주단은 결론 내렸다.
그가 그러든 말든, 청려는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빠르게 CCTV를 넘긴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화면, 그리고 또 화면.
“…….”
그러다가,
“아.”
있다.
청려는 응원봉 불빛 덕에 밝혀진 2층 비상계단의 뚫린 벽 너머, 찾던 인영을 확인했다.
박문대.
직후 박문대가 있던 비품실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까지, 그는 미동도 없이 확인했다.
“…….”
그렇게 경험에 기반한 자신의 추리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기쁨은 없었다.
그냥 이미 알던 것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비품실이 쏟아진 것은 붕괴한 무대 위. 본래 방송 장비로 잡히기 때문에 CCTV는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비록 아까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는 혈흔이 없었지만… 그 아래 파묻혔을 수도 있고.
“…….”
청려는 손을 내렸다.
남은 배터리로 주변 관객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거부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용하니까.’
박문대가 살았다면, 아직도 계속 불합리한 재난이 쏟아져야 한다.
하지만 조용하다는 것은… 끝났다는 뜻이다.
“…….”
‘내가 이 추측도 맞았다는 걸 왜 확인해야 하지.’
청려는 표정 없이 가만히 장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주단도 보고 있었다. 좀 멀뚱히.
“…?”
저 형이 과거 회상이라도 하나?
그때였다.
끼이이익키키이과콰쾅!
“…!!”
머리 위, 아니, 좀 더 먼… 위층 어딘가에서 어마어마한 진동과 소음이 내리꽂히며 지하까지 강타했다.
3차 붕괴였다.
“윽!”
물건이 떨어지고, 사방이 흔들린다.
주단은 즉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아래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복선인가?’
드론 날린 주인공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막상 지하로 오니 죽어 있는 역할 말이다.
‘그건 곤란해.’
그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로 마음먹으며, 양심상 고개를 들어서 일행을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
청려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흔들리는 장비와 깜박이는 불빛 속에 가만히 서서 웃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설마 위험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나?’
억측이었다.
그리고 굉음과 붕괴 속에서, 청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찾으러 갈까.”
* * *
붕괴 8분 전.
“무, 문대야?”
“잠깐.”
나는 붕괴한 무대로 돌아와, 그 위로 조심스럽게 다시 올라갔다.
‘아까 우리가 내려온 곳.’
그리고 무대를 포함한 이곳의 구조를 다시 둘러보았다.
2층 구역은 가운데 공간을 차지한 무대 때문에 ‘ㄷ’자 모양이 되어 오른쪽, 왼쪽 딱 반씩 나뉘어 있다.
‘우리가 커튼을 로프 삼아 떨어진 건 오른쪽 대기실 구역.’
오른쪽에선 무너진 벽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 2층은 방송국 직원들과 관계자들이 쓰는 오피스 구역이다.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 하지만 갈 수 없는 곳.
‘후.’
나는 숨을 고르고, 두 녀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탁이 있는데.”
“무, 무슨…?”
“저 위로 다시 올라가야겠는데, 부축해 줄 수 있을까.”
“…!”
대기실 복도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스탭증을 찾아보려는… 거야?”
“비슷해. 그런데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내, 내가 가면…….”
“어떻게 찾을지 설명해 줄 시간이 없어. 빨리!”
선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안 된다고 외칠 것 같았으나, 곧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믿어서, 하는 거야.”
“……그래.”
망할.
나는 쓸데없이 죄책감을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 커튼 밧줄을 내 허리에 묶었다.
중간에 걸어두고 올라가면 혹시 발 헛디뎌도 죽진 않고, 다 올라가서 벽에 한쪽을 묶어두면 이놈들도 나중에 잡고 올라올 수 있겠지.
“확, 기대야 해…!”
“편하게 디디셔야 합니다!”
“알았어.”
나는 두 놈의 허벅지와 어깨를 디뎌서,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뛰었다.
‘잡았…!’
됐다.
철근을 잡은 뒤, 팔 힘과 반동으로 2층 바닥에 반대편 손을 올렸다.
배가 콘크리트 부서진 곳에 거칠게 부딪힌다.
콱.
‘빌어먹을.’
더럽게 아프네. 하지만 중요한 건….
‘도착했다는 거지…!’
“허억.”
나는 구르듯 2층 바닥 위로 올라간 뒤, 커튼 밧줄을 허리에서 풀었다. 밑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괘, 괜찮아?!”
“어! 날카로워서 위험하니까 이제 무대에서 떨어져서 중앙 기둥 쪽에 가 있어, 끝나면 부를 테니까!”
“알겠습니다! 몇 분 남았습니까?”
[00:04:31]
“…8분!”
이러면 체감상 4분 후에도 패닉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놈들이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을 옮겼다.
그리고 손전등을 켠 채 몇 방을 돌며 직원증을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여긴 외부인이 쓰는 공간이니까.
[00:01:57]
‘백스테이지에도 직원증은 없었어.’
역시 구하려면 직원들이 있던 공간이 맞았다. 반대편 2층 구역, 오피스 공간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길이 없다면?
‘…만들어야지.’
나는 무대의 위치를 가늠하며, 빙 돌아 복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여기.
이 작은 대기실 벽 너머가, 반대편 구역이다. 아마도.
“…….”
물론 나한테 이 벽을 부술 능력은 없다. 차라리 밑의 비상계단 앞을 치우는 게 더 현실성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날 노리고 건물이 붕괴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건물이 다시 붕괴한다고 이미 무너진 곳에 쌓인 잔해가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멀쩡한 벽은 무너뜨릴 수도 있다…!’
[00:01:03]
나는 대기실 주변의 무거운 물건을 벽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도 분명 정확히 나를 노리고 벽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큰달(추정)이 모순점을 발견해서 ‘미션 실패’로 명칭을 바꾼 이 재난은 거기서 더 국소적이고 온건해졌을 확률이 높다.
붕괴라고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하지 않냐.
‘역으로 이용한다.’
X발 두 번이나 살았으니 이번에는 더 잘하겠지.
심호흡을 하고, 정신 차리고 준비한다.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다.
[00:00:03]
[00:00:02]
[00:00:01]
뚝.
끊기는 소리.
나는 벽에 기대어 있다가,
[00:00:00]
옆으로 몸을 돌렸다.
“…!”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방이 흔들린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로 앞에 쌓아둔 무거운 가구와 철제 소품이 쏟아졌다.
끼이이익키키이과콰쾅!
묵직한 천장 조명까지.
‘X발.’
순간 미친 짓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스쳤… 아니, 닥쳐. 이것뿐이다. 이게 맞다!
움직여!
“흡,”
나는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몸을 미끄러뜨리며 화장대 아래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잔해가 볼에 튀며 화끈거린다.
찌이이익-
그리고 무너지는 굉음과 흔들림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소리도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아아아악!”
“엄마야!”
비명과 외침.
“…….”
나는 비틀거리며 화장대 밑에서 나왔다.
온갖 물건들이 박살 나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무너진 벽 너머에서, 빛과 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갔다.
잔해를 밟고, 본 벽 너머는….
“힉!”
“어, 여기 사람… 무, 문대??”
엘리베이터 앞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깜박이는 비상등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이어진 복도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나온다.
“누구예요?”
“무슨 일이야 지금?”
“…….”
관객석에 없던 사람들이 다 여기 있었다.
‘뭐야.’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한 박자 늦게… 보았다.
[관리실]
마이크 달린 안내 방송 기기가 보이는, 열린 문에 달린 명패가.
그리고 거기서 넘어지듯 달려 나온 놈이.
“…박문대?”
무대 의상을 입은 큰세진이었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날 보더니, 달려와서 양손으로 내 머리를 잡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대??”
“뭐?”
문 너머에서 다른 놈들도 하나씩 나온다.
“문대 형!!”
“너…, 너…!!”
하네스가 뜯어진 차유진, 팔을 걷어붙인 류청우.
그리고 아까 방송을 하던 배세진까지.
‘…안 돼.’
최악이었다. 이놈들이 다 여기 남았다는 건 악몽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빌어먹게도 반갑다.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이 미친, 미친 새끼야…!”
“…….”
큰세진 이놈이 이런 욕을 하는 건 처음 들었다. 그것도 팬들 앞에서.
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포옹하니까 갈비뼈가 아픈 것도 참을만했다.
‘무겁다 새끼야.’
나는 온갖 의문과 확인할 것들을 잠시 멈추고 재회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팝업은 또다시 갱신되고 있었다.
[돌발!]
미션 실패 : 건물 붕괴
– 붕괴하는 건물의 재난 (완성)
: 마지막 재난까지 00:29:5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1화
나는 심호흡했다.
…정리하자.
안내 방송에서는 배세진이 마이크를 잡고 있고, 드론 화면에서는 VTIC 주단이 보인다.
‘장난하나.’
붕괴까지 남은 시간은 12분인데 지하에 한 놈, 어딘지 모르겠지만 안내 방송하는 곳에 한 놈이 있다고.
매니저나 스탭들이 다 X신 새끼들도 아니고 무슨 소속 연예인만 쏙쏙 제외하고 다들 탈출했냐.
“방송이 끝났습니다….”
그 와중에 배세진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일단 계속 확인되는 쪽부터 빠르게 유인한다. 여기서 어버버하다간 다 뒈지는 수가 있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고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았다.
거기는 주단이… 왜 없냐.
“이놈 또 어디 갔어.”
“…! 그, 그 아마도, 방으로 들어가신 게 아닐…?”
다행히 놈은 다시 화면에 등장했다.
글이 적힌 A4 용지를 들고.
“…?”
-건물 내부에 있는 생존자십니까?
소통의 시도였다.
“헉!”
“이, 이 드론에 음성을 보내는 기능은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
“드론 위아래로 조작해.”
“아.”
김래빈의 조작에 따라 드론 시야가 출렁거린다. 그러자 주단이 A4에 새 글을 써서 보여준다.
-탈출로를 찾고 계십니까?
김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저희는 사람을 찾고 있으니 정확히 따지자면 우선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잠깐,”
안 된다.
“갇힌 사람이 탈출로를 안 찾는 게 더 이상하잖아. 일단 찾는다고 하자.”
“과연!”
일단 거기서 시작해서 대화를 빠르게 이끌어가야 했다.
‘우리 쪽에 성과가 있는지 물어보거나, 정체를 추측하겠지.’
나는 이놈의 다음 답변 예상안을 꼽으며 대화 내역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그러는 동안 드론이 다시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놈은 또 A4에 글을 끄적거리더니 완성된 문장을 들어 올렸다.
…기대도 안 했던 문장을.
-이곳, 지하의 직원용 구역에 탈출로가 있습니다.
“…?!”
“어, 어어.”
문장은 끝이 아니었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비상전력이 들어와서 작동됩니다.
“그, 그러면….”
“붕괴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탈출로 확보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으응, 맞아!”
맞는 말이다. 여차하면 남은 인원이라도 내보내야 한다.
문제는….
‘언제부터 작동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보통 이 정도 건물이면 아무리 비상전력이라도 한 시간도 안 갈 텐데, 대체 얼마나 시간이 남은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놈은 문이 있는데 왜 안 나가고 있는 거지?’
하나 더.
…보통 문은 그냥 여는 거지 전력이 필요하진 않을 텐데.
요동치는 드론을 보던 놈이 실시간으로 용지에 한 줄을 더 적어넣는다.
-다만 스탭 출입증이 필요합니다.
‘역시.’
뭐가 있었군.
보안키가 있어야 열리는 스탭용 문을 찾은 것 같다.
-스탭 출입증을 찾아서 지하로 와주시길 바랍니다.
계단이 막혔다 이 자식아.
대체 어쩌다가 혼자 낙오돼서 지하로 간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미션만 갱신됐다.
‘…스탭증을 찾아서 지하로 가기.’
그것도.
이 시간 안에.
“…….”
“스탭증이, 아까 편집실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한 번 더 찾아보고 올게…!”
“그렇다면 저는 지하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 문대 형?”
나는 노트북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10분 남았다. 둘 다 무리야.”
“…….”
“다른 방법을 써야겠어.”
“예?”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까 챙겨놓은 커튼 밧줄을 움켜쥐었다.
* * *
“어.”
주단은 고개를 들었다.
어두운 복도 끝에서부터 한 줄기 밝은 라이트가 자신을 비춘다.
현대 재난 아포칼립스 컨텐츠에서 이제는 익숙하게 등장하는 요소, 드론이었다.
‘호오.’
그는 턱을 괴고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건물에 고립된 생존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갈 길을 찾나 보다.
그렇다면 나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응대해줘야겠지.
그는 재빨리 뒤를 돌아서 방에 들어갔다.
“혹시 형이 들고 있는 스마트폰을 좀 빌릴 수….”
“…….”
대답도 없다.
과연. 뭘 기대했단 말인가.
그는 재빨리 루트를 바꿔 A4 용지를 챙겨 들었다.
-건물 내부 생존자십니까?
드론이 열심히 위아래로 움직인다.
오, 제법 대응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주단은 흥미를 갖고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제법 성의껏 알려주었다.
‘내가 찾으러 가는 건… 음, 그건 좀 무리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 주단은 어깨를 으쓱한 뒤, 놀라운 정보에 비틀거리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진 드론을 보았다.
‘놀라서 스탭증을 찾고 있을 확률이 절반 이상.’
이걸로 자신의 인간적 도리를 지키는 역할은 충분했다.
“형. 방금 드론이 와서 짧게 대화를 했습니다. 구조대는 아니고 이 건물에 갇힌 또 다른 생존자입니다.”
“그래.”
그리고 이런 특이점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일행이 있었다.
지하의 시설관리실.
그곳에 선 청려는 무표정으로 기기를 조작하고 있었다.
전력이 나가서 CCTV를 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무슨 무선 충전된 휴대용 보안기기를 이용해서 기어코 직전 시간 CCTV를 작은 화면으로 몇 가지 돌렸다.
보통 아이돌은 해본 적도 없고 하는 방법을 알 리도 없는 것.
‘저런 게 다 회귀하면서 쌓은 경험치겠지.’
수많은 삶 중 언젠가 한 번 정도는 압박감에 짓눌려 살인마로 살았을지도 모르니 앞으로도 예의 있게 대해야겠다고 주단은 결론 내렸다.
그가 그러든 말든, 청려는 기계적인 손놀림으로 빠르게 CCTV를 넘긴다.
불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한 화면, 그리고 또 화면.
“…….”
그러다가,
“아.”
있다.
청려는 응원봉 불빛 덕에 밝혀진 2층 비상계단의 뚫린 벽 너머, 찾던 인영을 확인했다.
박문대.
직후 박문대가 있던 비품실이 통째로 무너지는 것까지, 그는 미동도 없이 확인했다.
“…….”
그렇게 경험에 기반한 자신의 추리가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특별한 기쁨은 없었다.
그냥 이미 알던 것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비품실이 쏟아진 것은 붕괴한 무대 위. 본래 방송 장비로 잡히기 때문에 CCTV는 없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확인이 불가능했다.
비록 아까 육안으로 확인했을 때는 혈흔이 없었지만… 그 아래 파묻혔을 수도 있고.
“…….”
청려는 손을 내렸다.
남은 배터리로 주변 관객석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거부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용하니까.’
박문대가 살았다면, 아직도 계속 불합리한 재난이 쏟아져야 한다.
하지만 조용하다는 것은… 끝났다는 뜻이다.
“…….”
‘내가 이 추측도 맞았다는 걸 왜 확인해야 하지.’
청려는 표정 없이 가만히 장비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주단도 보고 있었다. 좀 멀뚱히.
“…?”
저 형이 과거 회상이라도 하나?
그때였다.
끼이이익키키이과콰쾅!
“…!!”
머리 위, 아니, 좀 더 먼… 위층 어딘가에서 어마어마한 진동과 소음이 내리꽂히며 지하까지 강타했다.
3차 붕괴였다.
“윽!”
물건이 떨어지고, 사방이 흔들린다.
주단은 즉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책상 아래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복선인가?’
드론 날린 주인공들에게 좋은 정보를 주고, 막상 지하로 오니 죽어 있는 역할 말이다.
‘그건 곤란해.’
그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기로 마음먹으며, 양심상 고개를 들어서 일행을 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
청려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흔들리는 장비와 깜박이는 불빛 속에 가만히 서서 웃고 있는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설마 위험에서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나?’
억측이었다.
그리고 굉음과 붕괴 속에서, 청려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찾으러 갈까.”
* * *
붕괴 8분 전.
“무, 문대야?”
“잠깐.”
나는 붕괴한 무대로 돌아와, 그 위로 조심스럽게 다시 올라갔다.
‘아까 우리가 내려온 곳.’
그리고 무대를 포함한 이곳의 구조를 다시 둘러보았다.
2층 구역은 가운데 공간을 차지한 무대 때문에 ‘ㄷ’자 모양이 되어 오른쪽, 왼쪽 딱 반씩 나뉘어 있다.
‘우리가 커튼을 로프 삼아 떨어진 건 오른쪽 대기실 구역.’
오른쪽에선 무너진 벽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 2층은 방송국 직원들과 관계자들이 쓰는 오피스 구역이다.
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곳. 하지만 갈 수 없는 곳.
‘후.’
나는 숨을 고르고, 두 녀석에게 고개를 돌렸다.
“부탁이 있는데.”
“무, 무슨…?”
“저 위로 다시 올라가야겠는데, 부축해 줄 수 있을까.”
“…!”
대기실 복도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말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스탭증을 찾아보려는… 거야?”
“비슷해. 그런데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나는 빠르게 말했다.
“내, 내가 가면…….”
“어떻게 찾을지 설명해 줄 시간이 없어. 빨리!”
선아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금방이라도 안 된다고 외칠 것 같았으나, 곧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았어. …믿어서, 하는 거야.”
“……그래.”
망할.
나는 쓸데없이 죄책감을 흘리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 커튼 밧줄을 내 허리에 묶었다.
중간에 걸어두고 올라가면 혹시 발 헛디뎌도 죽진 않고, 다 올라가서 벽에 한쪽을 묶어두면 이놈들도 나중에 잡고 올라올 수 있겠지.
“확, 기대야 해…!”
“편하게 디디셔야 합니다!”
“알았어.”
나는 두 놈의 허벅지와 어깨를 디뎌서, 허공으로 손을 뻗으며 뛰었다.
‘잡았…!’
됐다.
철근을 잡은 뒤, 팔 힘과 반동으로 2층 바닥에 반대편 손을 올렸다.
배가 콘크리트 부서진 곳에 거칠게 부딪힌다.
콱.
‘빌어먹을.’
더럽게 아프네. 하지만 중요한 건….
‘도착했다는 거지…!’
“허억.”
나는 구르듯 2층 바닥 위로 올라간 뒤, 커튼 밧줄을 허리에서 풀었다. 밑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괘, 괜찮아?!”
“어! 날카로워서 위험하니까 이제 무대에서 떨어져서 중앙 기둥 쪽에 가 있어, 끝나면 부를 테니까!”
“알겠습니다! 몇 분 남았습니까?”
“…8분!”
이러면 체감상 4분 후에도 패닉에 빠지진 않을 것이다.
나는 놈들이 들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발을 옮겼다.
그리고 손전등을 켠 채 몇 방을 돌며 직원증을 찾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하다. 여긴 외부인이 쓰는 공간이니까.
‘백스테이지에도 직원증은 없었어.’
역시 구하려면 직원들이 있던 공간이 맞았다. 반대편 2층 구역, 오피스 공간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길이 없다면?
‘…만들어야지.’
나는 무대의 위치를 가늠하며, 빙 돌아 복도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우.”
여기.
이 작은 대기실 벽 너머가, 반대편 구역이다. 아마도.
“…….”
물론 나한테 이 벽을 부술 능력은 없다. 차라리 밑의 비상계단 앞을 치우는 게 더 현실성 있는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말이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날 노리고 건물이 붕괴한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다.
그런데 건물이 다시 붕괴한다고 이미 무너진 곳에 쌓인 잔해가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멀쩡한 벽은 무너뜨릴 수도 있다…!’
나는 대기실 주변의 무거운 물건을 벽 앞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아까도 분명 정확히 나를 노리고 벽이 떨어졌다.’
그렇다면, 큰달(추정)이 모순점을 발견해서 ‘미션 실패’로 명칭을 바꾼 이 재난은 거기서 더 국소적이고 온건해졌을 확률이 높다.
붕괴라고 친절히 알려주기까지 하지 않냐.
‘역으로 이용한다.’
X발 두 번이나 살았으니 이번에는 더 잘하겠지.
심호흡을 하고, 정신 차리고 준비한다.
카운트다운이 들어갔다.
뚝.
끊기는 소리.
나는 벽에 기대어 있다가,
옆으로 몸을 돌렸다.
“…!”
동시에 어마어마한 폭음과 함께, 방이 흔들린다. 그리고 내가 있던 자리로 앞에 쌓아둔 무거운 가구와 철제 소품이 쏟아졌다.
끼이이익키키이과콰쾅!
묵직한 천장 조명까지.
‘X발.’
순간 미친 짓을 저질렀다는 후회가 스쳤… 아니, 닥쳐. 이것뿐이다. 이게 맞다!
움직여!
“흡,”
나는 옆으로 굴렀다.
그리고 몸을 미끄러뜨리며 화장대 아래로 들어갔다.
날카로운 잔해가 볼에 튀며 화끈거린다.
찌이이익-
그리고 무너지는 굉음과 흔들림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소리도 크게 울리기 시작한다.
“아아아악!”
“엄마야!”
비명과 외침.
“…….”
나는 비틀거리며 화장대 밑에서 나왔다.
온갖 물건들이 박살 나서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반쯤 무너진 벽 너머에서, 빛과 소리들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걸어갔다.
잔해를 밟고, 본 벽 너머는….
“힉!”
“어, 여기 사람… 무, 문대??”
엘리베이터 앞에, 열 명이 넘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깜박이는 비상등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이어진 복도 여기저기에서 소리가 나온다.
“누구예요?”
“무슨 일이야 지금?”
“…….”
관객석에 없던 사람들이 다 여기 있었다.
‘뭐야.’
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한 박자 늦게… 보았다.
마이크 달린 안내 방송 기기가 보이는, 열린 문에 달린 명패가.
그리고 거기서 넘어지듯 달려 나온 놈이.
“…박문대?”
무대 의상을 입은 큰세진이었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날 보더니, 달려와서 양손으로 내 머리를 잡았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문대??”
“뭐?”
문 너머에서 다른 놈들도 하나씩 나온다.
“문대 형!!”
“너…, 너…!!”
하네스가 뜯어진 차유진, 팔을 걷어붙인 류청우.
그리고 아까 방송을 하던 배세진까지.
‘…안 돼.’
최악이었다. 이놈들이 다 여기 남았다는 건 악몽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빌어먹게도 반갑다.
나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이 미친, 미친 새끼야…!”
“…….”
큰세진 이놈이 이런 욕을 하는 건 처음 들었다. 그것도 팬들 앞에서.
하지만 화가 나진 않았다. 포옹하니까 갈비뼈가 아픈 것도 참을만했다.
‘무겁다 새끼야.’
나는 온갖 의문과 확인할 것들을 잠시 멈추고 재회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팝업은 또다시 갱신되고 있었다.
미션 실패 : 건물 붕괴
– 붕괴하는 건물의 재난 (완성)
: 마지막 재난까지 00:2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