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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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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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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8화
전화 너머의 소리가 톤이 바뀌더니, 부드럽게 울린다.
-안녕하세요. 저희 구면이죠?
다시 들어도 청려 목소리가 맞다. 소름이 다 끼치는군.
‘이 새끼가 왜 여기서 나와.’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다른데 이게 X발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구면은 또 무슨 소리고.
-기숙사방 새로 입주하는 사람인데, 인사했잖아요. 건우 씨 맞으시죠?
“…?”
-다른 게 아니라, 방에 두고 가신 걸 찾았거든요. 택배로 부칠 건데 주소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학원에서 개인정보라고 전화번호만 알려주셔서요.
“…….”
보이스피싱이냐?
나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가, 혹시 정말 다른 사람일 확률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적확한 답을 내놨다.
“택배 괜찮고, 제가 오늘 들러서 가져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의외로 쉽게 물러나는군. 아니, 설마 정말 목소리만 비슷한 다른 인물….
-평일이라 낮엔 강의를 들어야 하니까… 오후 9시에 학원 앞에서 뵐까요?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작작 해라.”
-무슨 말씀이시죠?
“작작 하라고 신재현.”
-…!
마지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명을 안 불렀다만, 반응 보니 본인 맞는 것 같군.
전화기 너머에서는 짧게 침묵이 흘렀으나, 곧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후배님이시네.
“…!”
-음… 반응을 보니 나를 아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두 몸을 쓰고 있어요?
눈치는 빨라서 더 짜증 나는군. 아무리 그래도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바로 추리할 만큼인가 싶다만… 먼저 질문부터.
“무슨 수로 이 연락처 알았냐.”
-VTIC 사인회에 왔었잖아요.
“사인회를 수천 번은 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핑계 대지 말고.”
광고 모델 사인회라고 해도 한두 번 한 것도 아닐 텐데, 1년도 더 전에 이름도 안 대고 사인받은 놈을 무슨 수로 구분해 냈다는 말이냐.
그러나 목소리는 태연했다.
-음, 상당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게다가 이름을 두 번이나 바꿔서 닉네임으로 만드는 사람도 흔치 않아서.
“뭐?”
놈은 당시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기억해 설명했다.
자동으로 머릿속에 공명의 어투로 해당 문구가 재구성되어 재생된다.
‘박문… 아니, 류건우……. 아, 죄송해요. 그냥 큰달로 부탁드립니다!’
-후배님의 두 이름을 다 말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후배님한테 인상착의를 듣고 바로 떠올랐죠.
“…….”
-일부러 알려준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이 망할….
나는 쌍욕을 참으며 묵묵히 분노를 견뎠다. 아무것도 모르던 ‘박문대’에게 욕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근본적으로 이 자리에 없으니까 결국 같은 물음으로 돌아온다.
‘대체 이놈 어디로 갔냐.’
그래도 하나는 말해둬야겠군.
“그거 나 아니다.”
-닉네임까지 큰달이었는데 그런 변명은 재밌네요.
“아니라니까.”
나는 지근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그건… 진짜 박문대니까. 내가 아니라.”
-…….
전화 너머의 청려는 한동안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 * *
한 시간 반 후.
나는 서울 외곽의 주택형 카페에서 개를 데리고 있는 놈과 대면했다.
지난번에 놈과 만났던 곳과 장소도 똑같고 개까지 대동하니 지극히 유사한 상황이다.
‘본인이 맞는지 한 번 더 시험해 보는 건가.’
대가리를 끈질기게 굴리는군. 나는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자주 오나 보지.”
“시간이 나면 가끔은요.”
청려는 공을 물고 있는 개를 쓰다듬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의심하는 기색은 없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이 새끼랑 또 독대를 하다니 좀 회의감이 들긴 하다만… 특수상황을 겪어본 놈의 뇌세포다.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 와중에 놈은 내 꼴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성격과 어울리는 외양이네요.”
욕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넘어가서 화낼 시간도 자원도 없으니 생략하겠다.
나는 고개를 까닥거렸고, 놈은 질문을 바꿨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하고. 몸을 바꿔가며 사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후배님 활동할 때는 항상 후배님이었던 것 같은데요.”
“언제부터 보이스피싱에 취미 붙였는지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말이 너무한데요. 보이스피싱이라니… 난 거짓말한 적이 없어서.”
청려는 테이블 위로 무언가를 올렸다.
“이걸 두고 갔더라고요.”
“……!”
그건… 컴펙트 카메라였다.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제품.
그리고 내가 ‘박문대’에게 했던 조언이 떠오른다.
-관심 있으면 너도 카메라 하나 사서 찍고 다녀 봐도 될 것 같은데. 물론 이 시험이 다 끝나면.
‘동기부여용으로 사둔 건가.’
나는 뭐라 말하기 복잡한 기분으로 한숨을 쉬었다. 청려는 빙긋 웃었다.
“그냥 목격담 위주로 추적해 보니까 기숙학원이 나와서 사람 쓴 거예요. 사기는 없어요.”
“그리고 전화는 굳이 직접하고?”
“그럼요. 원래 결정적인 건 다른 사람 손 빌리면 안 되거든요.”
용의주도한 새끼였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과정을 생각해도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만나기로 합의를 보자마자 이놈이 했던 말을 봐라.
-좋아요. 오피스텔 쪽에 차를 보내면 타고 올래요?
무심코 수긍하려다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주소를 이미 알고 있었군.
-하하. 인간관계에서 절차가 중요하잖아요.
같은 시간대를 여러 번 반복한 놈답게 가진 패를 잘 쓸 줄 알았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패를 알려주는 게 썩 달갑진 않다만… 이 판국엔 알려주는 게 득이 더 크긴 하겠군.
나는 골드 2와의 사건에서 보여줬던 놈의 협조성에 약간 더 점수를 주기로 했다.
“들어라.”
나는 몸을 뒤로 기댔다.
“난 미션을 활자로 확인할 수 있었어.”
“…….”
“나한테는 ‘상태이상’이란 단어로 직접 눈앞에 떴었다. 게임 창처럼.”
정적이 흘렀다.
청려는 고개를 옆으로 숙이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래요?”
별로 놀라진 않은 눈치다. 나는 혀를 찼다.
“티가 났나.”
“좀 그렇기도 했지만. 균형을 생각해도 이해가 가능한 말이라서.”
“균형?”
“보세요. 재시작하게 해주는 대신 미션… ‘상태이상’이 붙잖아요. 하나를 주면 하나가 패널티로 따라오는 형태인데.”
청려가 테이블에 손가락으로 천천히 선을 그었다.
“후배님은 몸과 직업이 모두 바뀐 거잖아요? 큰 패널티죠. 그 대신 도움말이 주어졌다고 해도 어색하진 않네요.”
“…….”
그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군.
청려는 정말 궁금하단 듯이 이어 물었다.
“음… 명문대 출신이던데 기반 포기하기 아깝지 않았어요?”
“공시생이었는데 무슨.”
“하하.”
청려는 불길할 정도로 부드럽게 물었다.
“후배님은 죽으면 다 끝이라는 것도 그 도움말에서 유추한 건가요?”
“…그래.”
“흠, 그것도 패널티로 봐야 하나.”
이러다 레벨업 시스템까지 다 털리겠군. 나는 한숨을 참았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나 확인해 봐야겠다.
“일단… 따라 해봐라.”
“음?”
“…‘상태창’이라고 외쳐.”
“…….”
놈은 드물게 표정이 없어진 채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폭소했다.
“하하하하!”
웃지 마, X발.
남 앞에서 직접 말하니까 혀가 오그라 붙는 느낌이다. 나는 안경을 벗어서 미간을 눌렀다.
“후배님, 상상력이 풍부하신가 봐요.”
“닥쳐.”
“아니, 나도 해봤어요.”
청려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온갖 컨텐츠와 미신을 다 해봤죠. 로그아웃이니 코마니…. 음, 그게 9번째였던가, 10번째였던가.”
“…….”
“내가 그런 걸 몇 번이나 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안 통해요.”
청려가 실실 웃었다.
“아무것도.”
“…….”
“그래서… 음, 그래도 상태창은 또 외쳐볼까요?”
“됐다.”
나는 눈을 눌렀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결국 다음 말을 뱉었다.
“고생했다.”
“…….”
쓸데없는 짓이었다.
‘…‘박문대’ 공부시키던 게 습관이 됐나.’
이 새끼라면 ‘말로 하지 말고 곡으로 줄래요?’ 같은 소리를 할 놈이…….
“…고마워요.”
“…….”
“후배님 지금 상태에 대한 설명은 이제 들을 수 있나요?”
“그래.”
나는 내 발밑에 앉은 개를 무시하고 드디어 본론에 들어갔다.
나는 ‘상태이상’이 끝난 후, 내가 자체적으로 미션을 받아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적당히 생략해 말했다.
‘미션을 자체적으로 받았다’는 소리에 놈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으나, 그래도 설명에 대한 감상부터 튀어나오긴 했다.
별로 쓸모는 없었지만.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한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렇게 말 던져서 알겠냐.
청려가 테이블을 손가락을 두드렸다.
“보세요. 후배님이든 나든, 재시작했을 때 이전의 시간은 없던 일이 됐죠.”
“그래.”
“그런데 이번에는 둘이 한 시간 선에서 함께 존재하고, 서로 영향을 주잖아요. 아예 종류가 다른데요.”
“그 말은?”
“다른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거죠. 그 과정에서 타임 패러독스도 발생한 것 같고. 음, 흥미로운데.”
이 새끼가 흥미롭든 말든 그건 당장 결론이 나올 건 아니고, 중요한 건 이 상황의 결과다.
“어쨌든, 시험에 붙는 상태이상이 끝난 뒤에 이 몸으로 깨어나니까 ‘박문대’가 사라졌다는 거지.”
“아, 그 몸에 들어갔다던?”
“그래.”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인지 힌트라도 긁어야겠거든.
“혹시 재시작하는 중에 누가 뜬금없이 사라졌던 적이 있는지 묻고 싶은데.”
“아니. 언제나 똑같았죠.”
놈은 고려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뭐?
“들어보니 후배님은 오늘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거든요. 그 후에 알아서 그 몸에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닐 수도 있지.”
“아니어도 편할 것 같은데. 아, 원래 몸이 사라질까 봐 신경 쓰는 건가요?”
“지금….”
이 미친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쓸데없이 윤리적 고민할 시간을 줄여줬잖아요. 잘 생각해 봐요. 후배님, 그… ‘큰달’이, 후배님에게 원래 몸을 돌려달라고 나오면?”
“…….”
나는 다 식은 커피를 삼킨 뒤, 잔을 테이블에 올렸다.
“원한다면 생각은 해봐야겠지.”
“방법이 없잖아요?”
“시도해 볼 만한 건 있어.”
이놈에게 말할 생각은 없다만, 생각해둔 건 있다.
‘미션.’
또 미션을 받아서… ‘몸 바꾸기’를 보상으로 걸면 된다.
“그리고 박문대는 본인 몸이니까 권리는 있지.”
내가 이걸 하냐 안 하냐와는 별개로, 권한만 따지자면 그렇지 않나.
그러나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놈은… 심드렁했다.
“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박문대가 가진 모든 건 후배님이 성취한 거예요. 그 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머리에 든 건 네 정신이고, 네가 만든 거야.”
“…….”
“근데 뭐하러 그걸 줄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더 효과적으로 안 엮일 방법을 떠올리는 게 맞지….”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옵션을….”
“그런 옵션을 뭐하러 열어둬.”
“…….”
“들어요. 지금까지 후배님 행적을 말해볼 테니까.”
청려의 손가락이 다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원래 없었던 사람을 자기 몸으로 살려주고, 공부를 도와주고, 지금까지 살아남게 계획을 세워줬죠. 음, 도덕적으로도 충분히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
“죽이자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대로 둬도 괜찮지 않나 해서.”
청려가 눈을 마주쳤다.
“안 그래요?”
나는 주먹을 쥐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8화

전화 너머의 소리가 톤이 바뀌더니, 부드럽게 울린다.

-안녕하세요. 저희 구면이죠?

다시 들어도 청려 목소리가 맞다. 소름이 다 끼치는군.

‘이 새끼가 왜 여기서 나와.’

심지어 전화번호까지 다른데 이게 X발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 와중에 구면은 또 무슨 소리고.

-기숙사방 새로 입주하는 사람인데, 인사했잖아요. 건우 씨 맞으시죠?

“…?”

-다른 게 아니라, 방에 두고 가신 걸 찾았거든요. 택배로 부칠 건데 주소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학원에서 개인정보라고 전화번호만 알려주셔서요.

“…….”

보이스피싱이냐?

나는 잠시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다물었다가, 혹시 정말 다른 사람일 확률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적확한 답을 내놨다.

“택배 괜찮고, 제가 오늘 들러서 가져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의외로 쉽게 물러나는군. 아니, 설마 정말 목소리만 비슷한 다른 인물….

-평일이라 낮엔 강의를 들어야 하니까… 오후 9시에 학원 앞에서 뵐까요?

그럴 리가 없지.

나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작작 해라.”

-무슨 말씀이시죠?

“작작 하라고 신재현.”

-…!

마지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명을 안 불렀다만, 반응 보니 본인 맞는 것 같군.

전화기 너머에서는 짧게 침묵이 흘렀으나, 곧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후배님이시네.

“…!”

-음… 반응을 보니 나를 아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무슨 수로 두 몸을 쓰고 있어요?

눈치는 빨라서 더 짜증 나는군. 아무리 그래도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을 바로 추리할 만큼인가 싶다만… 먼저 질문부터.

“무슨 수로 이 연락처 알았냐.”

-VTIC 사인회에 왔었잖아요.

“사인회를 수천 번은 했을 텐데 말도 안 되는 핑계 대지 말고.”

광고 모델 사인회라고 해도 한두 번 한 것도 아닐 텐데, 1년도 더 전에 이름도 안 대고 사인받은 놈을 무슨 수로 구분해 냈다는 말이냐.

그러나 목소리는 태연했다.

-음, 상당히 인상적이었거든요. 게다가 이름을 두 번이나 바꿔서 닉네임으로 만드는 사람도 흔치 않아서.

“뭐?”

놈은 당시 상황을 꽤 구체적으로 기억해 설명했다.

자동으로 머릿속에 공명의 어투로 해당 문구가 재구성되어 재생된다.

‘박문… 아니, 류건우……. 아, 죄송해요. 그냥 큰달로 부탁드립니다!’

-후배님의 두 이름을 다 말했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요. 후배님한테 인상착의를 듣고 바로 떠올랐죠.

“…….”

-일부러 알려준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이 망할….

나는 쌍욕을 참으며 묵묵히 분노를 견뎠다. 아무것도 모르던 ‘박문대’에게 욕해봤자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애초에, 근본적으로 이 자리에 없으니까 결국 같은 물음으로 돌아온다.

‘대체 이놈 어디로 갔냐.’

그래도 하나는 말해둬야겠군.

“그거 나 아니다.”

-닉네임까지 큰달이었는데 그런 변명은 재밌네요.

“아니라니까.”

나는 지근거리는 머리를 눌렀다.

“그건… 진짜 박문대니까. 내가 아니라.”

-…….

전화 너머의 청려는 한동안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자세한 대화가 필요할 것 같은데.

* * *

한 시간 반 후.

나는 서울 외곽의 주택형 카페에서 개를 데리고 있는 놈과 대면했다.

지난번에 놈과 만났던 곳과 장소도 똑같고 개까지 대동하니 지극히 유사한 상황이다.

‘본인이 맞는지 한 번 더 시험해 보는 건가.’

대가리를 끈질기게 굴리는군. 나는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여기 자주 오나 보지.”

“시간이 나면 가끔은요.”

청려는 공을 물고 있는 개를 쓰다듬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의심하는 기색은 없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이 새끼랑 또 독대를 하다니 좀 회의감이 들긴 하다만… 특수상황을 겪어본 놈의 뇌세포다. 없는 것보단 낫겠지.

그 와중에 놈은 내 꼴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뭐라고 해야 하나… 성격과 어울리는 외양이네요.”

욕하는 것 같은데 거기에 넘어가서 화낼 시간도 자원도 없으니 생략하겠다.

나는 고개를 까닥거렸고, 놈은 질문을 바꿨다.

“그리고 신기하기도 하고. 몸을 바꿔가며 사는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후배님 활동할 때는 항상 후배님이었던 것 같은데요.”

“언제부터 보이스피싱에 취미 붙였는지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말이 너무한데요. 보이스피싱이라니… 난 거짓말한 적이 없어서.”

청려는 테이블 위로 무언가를 올렸다.

“이걸 두고 갔더라고요.”

“……!”

그건… 컴펙트 카메라였다. 아직 포장을 뜯지도 않은 새 제품.

그리고 내가 ‘박문대’에게 했던 조언이 떠오른다.

-관심 있으면 너도 카메라 하나 사서 찍고 다녀 봐도 될 것 같은데. 물론 이 시험이 다 끝나면.

‘동기부여용으로 사둔 건가.’

나는 뭐라 말하기 복잡한 기분으로 한숨을 쉬었다. 청려는 빙긋 웃었다.

“그냥 목격담 위주로 추적해 보니까 기숙학원이 나와서 사람 쓴 거예요. 사기는 없어요.”

“그리고 전화는 굳이 직접하고?”

“그럼요. 원래 결정적인 건 다른 사람 손 빌리면 안 되거든요.”

용의주도한 새끼였다.

내가 여기 오기까지 과정을 생각해도 평가는 변하지 않는다.

만나기로 합의를 보자마자 이놈이 했던 말을 봐라.

-좋아요. 오피스텔 쪽에 차를 보내면 타고 올래요?

무심코 수긍하려다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주소를 이미 알고 있었군.

-하하. 인간관계에서 절차가 중요하잖아요.

같은 시간대를 여러 번 반복한 놈답게 가진 패를 잘 쓸 줄 알았다.

그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패를 알려주는 게 썩 달갑진 않다만… 이 판국엔 알려주는 게 득이 더 크긴 하겠군.

나는 골드 2와의 사건에서 보여줬던 놈의 협조성에 약간 더 점수를 주기로 했다.

“들어라.”

나는 몸을 뒤로 기댔다.

“난 미션을 활자로 확인할 수 있었어.”

“…….”

“나한테는 ‘상태이상’이란 단어로 직접 눈앞에 떴었다. 게임 창처럼.”

정적이 흘렀다.

청려는 고개를 옆으로 숙이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그래요?”

별로 놀라진 않은 눈치다. 나는 혀를 찼다.

“티가 났나.”

“좀 그렇기도 했지만. 균형을 생각해도 이해가 가능한 말이라서.”

“균형?”

“보세요. 재시작하게 해주는 대신 미션… ‘상태이상’이 붙잖아요. 하나를 주면 하나가 패널티로 따라오는 형태인데.”

청려가 테이블에 손가락으로 천천히 선을 그었다.

“후배님은 몸과 직업이 모두 바뀐 거잖아요? 큰 패널티죠. 그 대신 도움말이 주어졌다고 해도 어색하진 않네요.”

“…….”

그런 시각으로도 볼 수 있군.

청려는 정말 궁금하단 듯이 이어 물었다.

“음… 명문대 출신이던데 기반 포기하기 아깝지 않았어요?”

“공시생이었는데 무슨.”

“하하.”

청려는 불길할 정도로 부드럽게 물었다.

“후배님은 죽으면 다 끝이라는 것도 그 도움말에서 유추한 건가요?”

“…그래.”

“흠, 그것도 패널티로 봐야 하나.”

이러다 레벨업 시스템까지 다 털리겠군. 나는 한숨을 참았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나 확인해 봐야겠다.

“일단… 따라 해봐라.”

“음?”

“…‘상태창’이라고 외쳐.”

“…….”

놈은 드물게 표정이 없어진 채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폭소했다.

“하하하하!”

웃지 마, X발.

남 앞에서 직접 말하니까 혀가 오그라 붙는 느낌이다. 나는 안경을 벗어서 미간을 눌렀다.

“후배님, 상상력이 풍부하신가 봐요.”

“닥쳐.”

“아니, 나도 해봤어요.”

청려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온갖 컨텐츠와 미신을 다 해봤죠. 로그아웃이니 코마니…. 음, 그게 9번째였던가, 10번째였던가.”

“…….”

“내가 그런 걸 몇 번이나 해봤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것도 안 통해요.”

청려가 실실 웃었다.

“아무것도.”

“…….”

“그래서… 음, 그래도 상태창은 또 외쳐볼까요?”

“됐다.”

나는 눈을 눌렀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결국 다음 말을 뱉었다.

“고생했다.”

“…….”

쓸데없는 짓이었다.

‘…‘박문대’ 공부시키던 게 습관이 됐나.’

이 새끼라면 ‘말로 하지 말고 곡으로 줄래요?’ 같은 소리를 할 놈이…….

“…고마워요.”

“…….”

“후배님 지금 상태에 대한 설명은 이제 들을 수 있나요?”

“그래.”

나는 내 발밑에 앉은 개를 무시하고 드디어 본론에 들어갔다.

나는 ‘상태이상’이 끝난 후, 내가 자체적으로 미션을 받아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을 적당히 생략해 말했다.

‘미션을 자체적으로 받았다’는 소리에 놈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으나, 그래도 설명에 대한 감상부터 튀어나오긴 했다.

별로 쓸모는 없었지만.

“이상한데요.”

“뭐가.”

이상한 게 한두 가지도 아니고, 그렇게 말 던져서 알겠냐.

청려가 테이블을 손가락을 두드렸다.

“보세요. 후배님이든 나든, 재시작했을 때 이전의 시간은 없던 일이 됐죠.”

“그래.”

“그런데 이번에는 둘이 한 시간 선에서 함께 존재하고, 서로 영향을 주잖아요. 아예 종류가 다른데요.”

“그 말은?”

“다른 힘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거죠. 그 과정에서 타임 패러독스도 발생한 것 같고. 음, 흥미로운데.”

이 새끼가 흥미롭든 말든 그건 당장 결론이 나올 건 아니고, 중요한 건 이 상황의 결과다.

“어쨌든, 시험에 붙는 상태이상이 끝난 뒤에 이 몸으로 깨어나니까 ‘박문대’가 사라졌다는 거지.”

“아, 그 몸에 들어갔다던?”

“그래.”

이게 대체 무슨 지랄인지 힌트라도 긁어야겠거든.

“혹시 재시작하는 중에 누가 뜬금없이 사라졌던 적이 있는지 묻고 싶은데.”

“아니. 언제나 똑같았죠.”

놈은 고려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그리고 잘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뭐?

“들어보니 후배님은 오늘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 같거든요. 그 후에 알아서 그 몸에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닐 수도 있지.”

“아니어도 편할 것 같은데. 아, 원래 몸이 사라질까 봐 신경 쓰는 건가요?”

“지금….”

이 미친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지?

“쓸데없이 윤리적 고민할 시간을 줄여줬잖아요. 잘 생각해 봐요. 후배님, 그… ‘큰달’이, 후배님에게 원래 몸을 돌려달라고 나오면?”

“…….”

나는 다 식은 커피를 삼킨 뒤, 잔을 테이블에 올렸다.

“원한다면 생각은 해봐야겠지.”

“방법이 없잖아요?”

“시도해 볼 만한 건 있어.”

이놈에게 말할 생각은 없다만, 생각해둔 건 있다.

‘미션.’

또 미션을 받아서… ‘몸 바꾸기’를 보상으로 걸면 된다.

“그리고 박문대는 본인 몸이니까 권리는 있지.”

내가 이걸 하냐 안 하냐와는 별개로, 권한만 따지자면 그렇지 않나.

그러나 테이블 맞은편에 앉은 놈은… 심드렁했다.

“뭘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박문대가 가진 모든 건 후배님이 성취한 거예요. 그 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머리에 든 건 네 정신이고, 네가 만든 거야.”

“…….”

“근데 뭐하러 그걸 줄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더 효과적으로 안 엮일 방법을 떠올리는 게 맞지….”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라, 옵션을….”

“그런 옵션을 뭐하러 열어둬.”

“…….”

“들어요. 지금까지 후배님 행적을 말해볼 테니까.”

청려의 손가락이 다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원래 없었던 사람을 자기 몸으로 살려주고, 공부를 도와주고, 지금까지 살아남게 계획을 세워줬죠. 음, 도덕적으로도 충분히 할 만큼 한 것 같은데.”

“…….”

“죽이자는 게 아니에요. 그냥… 이대로 둬도 괜찮지 않나 해서.”

청려가 눈을 마주쳤다.

“안 그래요?”

나는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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