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17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6화
우선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특성이 터진다고 만능 설득이 가능한 스킬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성 설명을 다시 보자.
[특성 :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A)]
-듣는 이에게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 발동 확률 60%, 기본 활성화 상태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아무 소리나 지껄인다고 납득해 준단 뜻은 아니다.
즉, 이건 무대부터 대화까지 각종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의 보조 바퀴였다.
고로 이 미국뽕이 찬 본부장을 좌초시키기 위해선 이놈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가져와야 했다.
그럼 뭘 찔러야 하는가?
굳이 미국에 가려는 이놈의 내심을 자극해야 했다.
‘이미지’ 말이다.
“미국에서 잘 되면 저희야 정말 좋지만… 기간을 어느 정도로 계획하고 계신가요.”
벌써 계획을 다 세웠는지, 본부장의 대답이 거침없었다.
“저는 짧으면 2년, 길면 3년 정도 보고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플랜이에요.”
계약 끝나기 전까지 기간 꽉꽉 채워서 해먹겠다는 뜻이다.
‘안 되지.’
나는 곧바로 질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길게 미국에서 활동하면, 한국 팬분들이 다 떠나지 않을까요.”
“하하, 그거야 다 예전 일이죠. 요새야 다 위튜브나 SNS로 세계 소식을 속속들이 아는 시대 아닙니까. 어차피 여러분 다 한국어 쓰시잖아요? 한국 팬들이 오히려 접근성이 좋죠.”
“음… 그럼 더 싫어하실 것 같은데.”
“예?”
“아뇨. 저희 미국으로 가면 인지도 없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그걸 다 보면 오히려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나는 일부러 한 텀 쉬고 덧붙였다.
“대단한 팀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선 바닥부터면 확 깨지 않을까요.”
“…!”
“한국에서 잘되는 것도 2~3년이나 못 보면 이미지가 잘 회복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러게요~ 저희가 원래 하던 자리에서 훨씬 잘하니까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도 반응이 오는 것 같아요! 본부장님 말씀하신 대로 요새는 뭐든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다 알잖아요~”
큰세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해 주신 일본에서의 반응도, 이후에 저희가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걸 아시니까 더 프로그램에 몰입하시지 않았을까요.”
“…으음.”
본부장의 얼굴에 대학도 안 나온 어린 무지렁이들에게 말대꾸 당한 불쾌감과 함께 묘한 기색이 지나갔다.
바로 마음에 걸리는 소리가 정확히 들어왔을 때의 동요였다.
그리고 그 순간, 팝업이 떴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A)’ 발동!]
‘됐다.’
미국에 전념하는 2~3년간 국내에서 테스타의 브랜드 이미지를 조지며 이미 잡은 한국 시장이 흔들릴 것이라는 예측이 그럴싸하게 들리긴 한 모양이다.
본래라면 아집으로 ‘내 마스터 플랜 대로라면 미국에서 성공할 테니 상관없어!’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거기서 특성이 터지며 동요가 심해졌다.
‘이젠 본부장이 너그럽게 져줄 수 있는 판만 짜면 된다.’
슬그머니 물러나면서도 ‘소속 가수를 배려해서’ 같은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말이다.
“…저희가 불안해서 그래요.”
“마, 맞아요.”
“아직은 국내에서도 성장하는 중이니 좀 더 정상을 향해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멤버들로부터 지원사격도 잘 들어온다.
이놈들과 이미 지난 미팅 이후로 다 합의가 된 상황이었으니까.
-리얼리티를 미국에서 찍는 건 좋지만, 아예 미국 타겟은 좀…….
-이상해. 쓸데없이 할리우드 노린다고 어설프게 그쪽 감성으로 영화 찍는 것 같다고.
-적절한 비유였던 같습니다, 형님!
-뭐, 뭘…!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혹시라도 미국 이야기가 더 나오면 끊자고 이야기 이미 끝났지.
여기에 류청우가 마지막 말을 진중하게 얹었다.
“한국에서 대상은 받은 정도로 위치가 공고해졌을 때까진… 좀 더 생각해보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
본부장은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대인배라도 된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엔터테이먼트 사업이니, 당사자들의 생각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중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자리를 뜨면 된다.
“휴.”
본부장실을 나오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진짜 보내 버리려고 하셨을 줄이야.”
“노, 놀랐어.”
‘적어도 올해 연말까진 시간을 벌었다.’
혹시라도 이번에 대상을 수상하면… 뭐, 그때는 이쪽 발언권이 더 강해졌을 테니 오히려 협상이 수월해진다.
류청우가 살짝 나와 큰세진의 등을 쳤다.
“고생했다.”
“뭘요.”
“어휴.”
“그래도 미국 가요? 제집 가요?”
“그래, 거긴 간다.”
리얼리티 촬영까지는 별수 없었다.
“와!!”
차유진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너라도 행복하니 다행이라는 시선이 슬쩍 차유진에게 쏟아졌다가 가셨다.
‘그래도 순조로운 편이다.’
본부장과 면담을 하고 확신했다. 자기 일을 과신하는 타입이긴 한데, 다루기는 까다롭지 않다.
‘자기가 베푸는 입장으로 만들어주면 되는군.’
무엇보다 테스타를 T1을 위해 잘 써먹을 생각보단 테스타 자체를 키우고 싶어 하니 차라리 나았다.
‘방향만 잘 틀어주면 되겠어.’
나는 기지개를 켰다. 어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어휴, 안마라도 해줘?”
“됐어.”
‘행차’ 때부터 지금 ‘피크닉’ 리패키지까지 쉴 틈 없이 몰아치다 보니 몸이 좀 축나는 것 같다.
‘그래도 성적은 좋아.’
이번 앨범은 음악방송 활동이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음원 성적이 잘 나왔다.
‘막판에 VTIC에게 밀리긴 했다만.’
어제 동일 작곡가의 곡을 선공개로 쓴 VTIC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음원 차트를 비집고 올라왔다.
‘어쩔 수 없지.’
다만 어제 받은 문자는 좀 열받긴 했다.
-곡 고마워요 후배님^^
이 새끼 음원 차트 캡처까지 넣어서 보냈더라.
순간 빡침이 올라왔으나, 처리할 것이 없는 평온한 현 상태를 깨닫고 도로 내려갔다.
‘이제… 콘서트 유닛 무대 관련만 정하면 되나.’
유닛 무대를 구성에 추가할 건지, 할 거라면 누구랑 짤 것인지 말이다.
이건 뭐 특별히 엄청난 지뢰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콘서트 질과 차유진 사기만 고려하면 된다.
‘웬만하면 다른 놈이랑 유닛 하고 싶긴 한데, 뭐, 김래빈이나.’
나는 원래 떠올렸던 유닛 후보군을 생각하며, 차유진을 잘 떼어놓을 방법을 고민했다.
다만 이걸 최종결정할 미팅 전,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일이 발생했다.
바로 차유진과 함께했던 공포의 방탈출 편집본이 업로드된 것이다.
* * *
[문댕댕과 차고영의 공포 탈출 넘버원│테스타 룸메이트 번외 EP.1]
박문대가 들었던 예비 제목에서 약간 더 특징이 가미된 이 동영상은 당시 실시간 W라이브와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실시간으로 볼 때는 영상이 흔들리는 스마트폰 카메라 하나로 송출된 탓에, 무슨 파운드 푸티지 스타일의 페이크 다큐스러웠다.
그런데 이 동영상에서는 그 느낌이 쭉 빠지고 예능 편집이 더해진 것이다.
그래서 공포 방탈출에 대한 몰입보단, 둘의 캐릭터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이 방의 테마는… 이상한 인형을 주워 온 아이가 꾸는 악몽……. 음, 이래서 분리수거가 중요하죠.]
[인형 무서워요? 악몽 싫어요!]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박문대는 담담했고 차유진이 호들갑을 떠는 구도였다.
이 구도는 들어가서도 비슷했으나, 포지션은 반대가 되었다.
[형형!! 저기 머리카락! TeddyBear가 사람 머리카락이에요! 안 이뻐요!]
[내려놔 그거 내려놔 유진아.]
차유진은 신나게 호들갑을 떨고 박문대는 담담하게 기겁한 것이다.
그리고 막판에 가서는 초반 구도를 집어치우고 아예 둘 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스토리에 몰입한 탓이었으나, 편집으로 인해 거기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팬들에게는 그런 개그가 따로 없었다.
[이렇게… 맞추면. 영어 문장인가?]
[맞아요! Umm~ THIS IS NOT A DREAM… 꿈이 아니래!! 꿈이 아니래요!!]
[자, 잠깐, 잠깐만.]
구구구구궁!
갑자기 조명이 붉게 번뜩이더니, 구석에 있던 조잡한 마네킹의 목이 돌아갔다.
[히이이익!!]
거의 부둥켜안은 채로 뒤로 펄쩍 뛰어오르는 둘의 모습은 적외선 카메라에서도 정말 볼 만했다.
그리고 영상 테마를 보자마자 기대했던 그림에 사람들은 흡족해했다.
-(00:57)(05:14)(13:09) 시간이 지날수록 둘 다 눈이 커져ㅋㅋㅋㅋㅋ
-이건 마네킹이 잘못했다 쫄보 둘을 위협했어
-ㅅㅂ박문대 차유진 저렇게 의지하는 거 처음봄ㅋㅋㅋㅋㅠㅠㅠ
-기물 파손 안 하겠다고 서로 옷만 잡아당기는 모습이 훈훈하다 역시 준법 아이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둘 다 멘탈이 강해 보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미지였던 데다가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골랐다는 부가 설명까지 붙은 덕에, 특별히 거북해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재밌었어요. 신선했습니다.]
[우리 또 하러 와요!!]
[그래.]
탈출한 뒤엔 마치 수월히 해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좋아하는 모습까지, 훌륭한 아이돌 자체 컨텐츠의 표본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건 박문대의 예상 이상으로 잘 정착해 버린다.
-쫄보즈 앞으로도 공포길만 걸어…
‘쫄보즈’란 별명으로 말이다.
사실 1, 2위 둘을 묶어서 같이 좋아해 보고 싶었으나 특별한 커넥션이 없던 사람들을 쿡 찔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밑에서 서로 이빨을 드러내던 격렬한 개인 팬들의 싸움이 눈치를 볼 만큼, 둘 모두에게 호감이 있던 사람들의 반향이 거셌다.
“…….”
결국, 적당히 모니터링만 해본 박문대도 차유진에게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야, 유닛 하자.”
“와우!!”
담백한 항복 선언이었다.
다만 지난번 콘서트의 유닛과 직접적인 비교를 피하기 위해, 유닛 무대의 시기에 대해서는 살짝 조절이 들어갔다.
“그럼 유닛 무대는 나중에 앵콜 콘서트 때 공개로?”
“좋아 좋아~”
마지막 콘서트 컨셉 회의에서 난 결론이었다.
대신 그들은 이번 투어에 깜짝 이벤트를 좀 추가했다.
“사람들 놀라겠지?”
“웃다 넘어지실 것 같은데.”
모든 게 깔끔했다.
테스타는 특별한 갈등 없이 차근차근 콘서트 준비를 마무리해갔다.
심지어 새로 온 본부장의 지시로, 소속사는 투어 최종 연습 전 테스타에게 열흘간의 긴 휴가까지 주었다.
‘아티스트의 컨디션 관리도 회사의 의무’라는 멋진 말과 함께였다.
‘기선 제압인가.’
박문대는 별 감흥을 받진 않았으나, 어쨌든 휴가는 환영했다.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할 타이밍이었다.
* * *
“오랜만에 집 간다~”
“푹 쉬고 오자.”
“자주 안부 인사드리겠습니다.”
누가 보면 한 반년은 헤어지는 것처럼 요란한 인사 후에야 놈들은 숙소를 나갔다.
-괘, 괜찮으면… 놀러 올래?
-할머님께서 5월의 신랑을 감명 깊게 보셨다고 합니다.
-…엄마랑 이사 갈 집 알아볼 건데, 아니, 그, 너도 계획 있으면 공유하는 게 좋지 않나 해서!
몇 명 본인 집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권유한 놈도 있었으나, 적당히 사양했다.
‘드디어 혼자다.’
나는 열흘간의 칩거 계획을 검토하며, 쾌재를 불렀다.
혹시라도 아플 때를 대비해서 회사와 비상 연락망도 잘 구축해 뒀고, 구급약도 잘 받아뒀다. 죽도 사뒀고.
‘몸살감기 정도야 뭐.’
혹시 걸려도 이젠 상관없었다. 열흘이나 되니, 한 사흘쯤 앓아도 일주일은 멀쩡한 정신으로 쉴 수 있겠지.
‘모니터링은 너무 자주하지 말자.’
웃기지만, 이번엔 차유진과의 충고를 한번 반영해 보기로 했다.
‘며칠 정도는 쉬어도 되겠지.’
이번 본부장은 테스타에 관심이 과하니, 분명 회사 내 인터넷 모니터링 작업도 강화했을 것이다.
혹시 문제가 터져도 연락이 올 기대가 생겼다는 뜻이다.
“좋아.”
스마트폰도 비상 연락을 제외하면 전부 무음으로 바꿔놨다. 심지어 답지 않게 상태 메시지까지 띄워 놓은 상태다.
-휴가. 확인 느립니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재확인을 위해 스마트폰을 집어 들다가, 이미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VTIC 신청려 선배님]
정말 안 반갑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176화
우선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특성이 터진다고 만능 설득이 가능한 스킬은 아니라는 점이다.
특성 설명을 다시 보자.
-듣는 이에게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 발동 확률 60%, 기본 활성화 상태
‘감정적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지, 아무 소리나 지껄인다고 납득해 준단 뜻은 아니다.
즉, 이건 무대부터 대화까지 각종 커뮤니케이션 상황에서의 보조 바퀴였다.
고로 이 미국뽕이 찬 본부장을 좌초시키기 위해선 이놈이 납득할 만한 근거를 가져와야 했다.
그럼 뭘 찔러야 하는가?
굳이 미국에 가려는 이놈의 내심을 자극해야 했다.
‘이미지’ 말이다.
“미국에서 잘 되면 저희야 정말 좋지만… 기간을 어느 정도로 계획하고 계신가요.”
벌써 계획을 다 세웠는지, 본부장의 대답이 거침없었다.
“저는 짧으면 2년, 길면 3년 정도 보고 있습니다. 충분히 가능한 플랜이에요.”
계약 끝나기 전까지 기간 꽉꽉 채워서 해먹겠다는 뜻이다.
‘안 되지.’
나는 곧바로 질문했다.
“그런데 그렇게 길게 미국에서 활동하면, 한국 팬분들이 다 떠나지 않을까요.”
“하하, 그거야 다 예전 일이죠. 요새야 다 위튜브나 SNS로 세계 소식을 속속들이 아는 시대 아닙니까. 어차피 여러분 다 한국어 쓰시잖아요? 한국 팬들이 오히려 접근성이 좋죠.”
“음… 그럼 더 싫어하실 것 같은데.”
“예?”
“아뇨. 저희 미국으로 가면 인지도 없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그걸 다 보면 오히려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나는 일부러 한 텀 쉬고 덧붙였다.
“대단한 팀인 줄 알았는데, 미국에선 바닥부터면 확 깨지 않을까요.”
“…!”
“한국에서 잘되는 것도 2~3년이나 못 보면 이미지가 잘 회복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러게요~ 저희가 원래 하던 자리에서 훨씬 잘하니까 오히려 다른 나라에서도 반응이 오는 것 같아요! 본부장님 말씀하신 대로 요새는 뭐든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다 알잖아요~”
큰세진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아까 말씀해 주신 일본에서의 반응도, 이후에 저희가 한국에서 성공했다는 걸 아시니까 더 프로그램에 몰입하시지 않았을까요.”
“…으음.”
본부장의 얼굴에 대학도 안 나온 어린 무지렁이들에게 말대꾸 당한 불쾌감과 함께 묘한 기색이 지나갔다.
바로 마음에 걸리는 소리가 정확히 들어왔을 때의 동요였다.
그리고 그 순간, 팝업이 떴다.
‘됐다.’
미국에 전념하는 2~3년간 국내에서 테스타의 브랜드 이미지를 조지며 이미 잡은 한국 시장이 흔들릴 것이라는 예측이 그럴싸하게 들리긴 한 모양이다.
본래라면 아집으로 ‘내 마스터 플랜 대로라면 미국에서 성공할 테니 상관없어!’ 같은 소리를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거기서 특성이 터지며 동요가 심해졌다.
‘이젠 본부장이 너그럽게 져줄 수 있는 판만 짜면 된다.’
슬그머니 물러나면서도 ‘소속 가수를 배려해서’ 같은 합리화를 할 수 있게 말이다.
“…저희가 불안해서 그래요.”
“마, 맞아요.”
“아직은 국내에서도 성장하는 중이니 좀 더 정상을 향해 노력해 보고 싶습니다.”
멤버들로부터 지원사격도 잘 들어온다.
이놈들과 이미 지난 미팅 이후로 다 합의가 된 상황이었으니까.
-리얼리티를 미국에서 찍는 건 좋지만, 아예 미국 타겟은 좀…….
-이상해. 쓸데없이 할리우드 노린다고 어설프게 그쪽 감성으로 영화 찍는 것 같다고.
-적절한 비유였던 같습니다, 형님!
-뭐, 뭘…!
이런 과정을 거쳐서, 혹시라도 미국 이야기가 더 나오면 끊자고 이야기 이미 끝났지.
여기에 류청우가 마지막 말을 진중하게 얹었다.
“한국에서 대상은 받은 정도로 위치가 공고해졌을 때까진… 좀 더 생각해보면 안 될까요. 부탁드립니다.”
“…….”
본부장은 잠시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대인배라도 된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엔터테이먼트 사업이니, 당사자들의 생각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존중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자리를 뜨면 된다.
“휴.”
본부장실을 나오자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들렸다.
“진짜 보내 버리려고 하셨을 줄이야.”
“노, 놀랐어.”
‘적어도 올해 연말까진 시간을 벌었다.’
혹시라도 이번에 대상을 수상하면… 뭐, 그때는 이쪽 발언권이 더 강해졌을 테니 오히려 협상이 수월해진다.
류청우가 살짝 나와 큰세진의 등을 쳤다.
“고생했다.”
“뭘요.”
“어휴.”
“그래도 미국 가요? 제집 가요?”
“그래, 거긴 간다.”
리얼리티 촬영까지는 별수 없었다.
“와!!”
차유진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너라도 행복하니 다행이라는 시선이 슬쩍 차유진에게 쏟아졌다가 가셨다.
‘그래도 순조로운 편이다.’
본부장과 면담을 하고 확신했다. 자기 일을 과신하는 타입이긴 한데, 다루기는 까다롭지 않다.
‘자기가 베푸는 입장으로 만들어주면 되는군.’
무엇보다 테스타를 T1을 위해 잘 써먹을 생각보단 테스타 자체를 키우고 싶어 하니 차라리 나았다.
‘방향만 잘 틀어주면 되겠어.’
나는 기지개를 켰다. 어깨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어휴, 안마라도 해줘?”
“됐어.”
‘행차’ 때부터 지금 ‘피크닉’ 리패키지까지 쉴 틈 없이 몰아치다 보니 몸이 좀 축나는 것 같다.
‘그래도 성적은 좋아.’
이번 앨범은 음악방송 활동이 다 끝났는데도 여전히 음원 성적이 잘 나왔다.
‘막판에 VTIC에게 밀리긴 했다만.’
어제 동일 작곡가의 곡을 선공개로 쓴 VTIC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음원 차트를 비집고 올라왔다.
‘어쩔 수 없지.’
다만 어제 받은 문자는 좀 열받긴 했다.
-곡 고마워요 후배님^^
이 새끼 음원 차트 캡처까지 넣어서 보냈더라.
순간 빡침이 올라왔으나, 처리할 것이 없는 평온한 현 상태를 깨닫고 도로 내려갔다.
‘이제… 콘서트 유닛 무대 관련만 정하면 되나.’
유닛 무대를 구성에 추가할 건지, 할 거라면 누구랑 짤 것인지 말이다.
이건 뭐 특별히 엄청난 지뢰가 숨어 있는 것도 아니고, 순수하게 콘서트 질과 차유진 사기만 고려하면 된다.
‘웬만하면 다른 놈이랑 유닛 하고 싶긴 한데, 뭐, 김래빈이나.’
나는 원래 떠올렸던 유닛 후보군을 생각하며, 차유진을 잘 떼어놓을 방법을 고민했다.
다만 이걸 최종결정할 미팅 전,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일이 발생했다.
바로 차유진과 함께했던 공포의 방탈출 편집본이 업로드된 것이다.
* * *
박문대가 들었던 예비 제목에서 약간 더 특징이 가미된 이 동영상은 당시 실시간 W라이브와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실시간으로 볼 때는 영상이 흔들리는 스마트폰 카메라 하나로 송출된 탓에, 무슨 파운드 푸티지 스타일의 페이크 다큐스러웠다.
그런데 이 동영상에서는 그 느낌이 쭉 빠지고 예능 편집이 더해진 것이다.
그래서 공포 방탈출에 대한 몰입보단, 둘의 캐릭터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박문대는 담담했고 차유진이 호들갑을 떠는 구도였다.
이 구도는 들어가서도 비슷했으나, 포지션은 반대가 되었다.
차유진은 신나게 호들갑을 떨고 박문대는 담담하게 기겁한 것이다.
그리고 막판에 가서는 초반 구도를 집어치우고 아예 둘 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벌벌 떨었다.
스토리에 몰입한 탓이었으나, 편집으로 인해 거기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있는 팬들에게는 그런 개그가 따로 없었다.
구구구구궁!
갑자기 조명이 붉게 번뜩이더니, 구석에 있던 조잡한 마네킹의 목이 돌아갔다.
거의 부둥켜안은 채로 뒤로 펄쩍 뛰어오르는 둘의 모습은 적외선 카메라에서도 정말 볼 만했다.
그리고 영상 테마를 보자마자 기대했던 그림에 사람들은 흡족해했다.
-(00:57)(05:14)(13:09) 시간이 지날수록 둘 다 눈이 커져ㅋㅋㅋㅋㅋ
-이건 마네킹이 잘못했다 쫄보 둘을 위협했어
-ㅅㅂ박문대 차유진 저렇게 의지하는 거 처음봄ㅋㅋㅋㅋㅠㅠㅠ
-기물 파손 안 하겠다고 서로 옷만 잡아당기는 모습이 훈훈하다 역시 준법 아이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친
둘 다 멘탈이 강해 보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미지였던 데다가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골랐다는 부가 설명까지 붙은 덕에, 특별히 거북해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탈출한 뒤엔 마치 수월히 해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좋아하는 모습까지, 훌륭한 아이돌 자체 컨텐츠의 표본다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건 박문대의 예상 이상으로 잘 정착해 버린다.
-쫄보즈 앞으로도 공포길만 걸어…
‘쫄보즈’란 별명으로 말이다.
사실 1, 2위 둘을 묶어서 같이 좋아해 보고 싶었으나 특별한 커넥션이 없던 사람들을 쿡 찔러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밑에서 서로 이빨을 드러내던 격렬한 개인 팬들의 싸움이 눈치를 볼 만큼, 둘 모두에게 호감이 있던 사람들의 반향이 거셌다.
“…….”
결국, 적당히 모니터링만 해본 박문대도 차유진에게 이렇게 말하게 되었다.
“야, 유닛 하자.”
“와우!!”
담백한 항복 선언이었다.
다만 지난번 콘서트의 유닛과 직접적인 비교를 피하기 위해, 유닛 무대의 시기에 대해서는 살짝 조절이 들어갔다.
“그럼 유닛 무대는 나중에 앵콜 콘서트 때 공개로?”
“좋아 좋아~”
마지막 콘서트 컨셉 회의에서 난 결론이었다.
대신 그들은 이번 투어에 깜짝 이벤트를 좀 추가했다.
“사람들 놀라겠지?”
“웃다 넘어지실 것 같은데.”
모든 게 깔끔했다.
테스타는 특별한 갈등 없이 차근차근 콘서트 준비를 마무리해갔다.
심지어 새로 온 본부장의 지시로, 소속사는 투어 최종 연습 전 테스타에게 열흘간의 긴 휴가까지 주었다.
‘아티스트의 컨디션 관리도 회사의 의무’라는 멋진 말과 함께였다.
‘기선 제압인가.’
박문대는 별 감흥을 받진 않았으나, 어쨌든 휴가는 환영했다.
모두에게 휴식이 필요할 타이밍이었다.
* * *
“오랜만에 집 간다~”
“푹 쉬고 오자.”
“자주 안부 인사드리겠습니다.”
누가 보면 한 반년은 헤어지는 것처럼 요란한 인사 후에야 놈들은 숙소를 나갔다.
-괘, 괜찮으면… 놀러 올래?
-할머님께서 5월의 신랑을 감명 깊게 보셨다고 합니다.
-…엄마랑 이사 갈 집 알아볼 건데, 아니, 그, 너도 계획 있으면 공유하는 게 좋지 않나 해서!
몇 명 본인 집에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권유한 놈도 있었으나, 적당히 사양했다.
‘드디어 혼자다.’
나는 열흘간의 칩거 계획을 검토하며, 쾌재를 불렀다.
혹시라도 아플 때를 대비해서 회사와 비상 연락망도 잘 구축해 뒀고, 구급약도 잘 받아뒀다. 죽도 사뒀고.
‘몸살감기 정도야 뭐.’
혹시 걸려도 이젠 상관없었다. 열흘이나 되니, 한 사흘쯤 앓아도 일주일은 멀쩡한 정신으로 쉴 수 있겠지.
‘모니터링은 너무 자주하지 말자.’
웃기지만, 이번엔 차유진과의 충고를 한번 반영해 보기로 했다.
‘며칠 정도는 쉬어도 되겠지.’
이번 본부장은 테스타에 관심이 과하니, 분명 회사 내 인터넷 모니터링 작업도 강화했을 것이다.
혹시 문제가 터져도 연락이 올 기대가 생겼다는 뜻이다.
“좋아.”
스마트폰도 비상 연락을 제외하면 전부 무음으로 바꿔놨다. 심지어 답지 않게 상태 메시지까지 띄워 놓은 상태다.
-휴가. 확인 느립니다.
이렇게 말이다.
나는 재확인을 위해 스마트폰을 집어 들다가, 이미 화면이 켜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정말 안 반갑다.